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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방은 도둑처럼 왔는가 해방에 대한 증언 중에 "도둑처럼 찾아왔다 (함석헌)" 던가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 (박헌영)" 이라던가 하는 표현이 있다. 해방이 불시에, 예측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찾아왔다는 뜻이 되겠다. 최근에는 이를 은유적인 표현이거나, 해방이 올 것은 알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올지 몰랐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보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럴 필요 없이 2차대전 당시 전황을 보면 알 일이라고 본다. 필자가 이전 2차대전 전황도에서 1942년 전황을 보여드렸었는데, 이 지도는 1943년에서 1944년의 전황을 모두 포함한 지도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미드웨이 해전 (1942년 6월) 이후, 과달카날 전역 (1942년 8월-1943년 2월)에서도 미 해군이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여전히 전선은 별 .. 2023. 6. 27.
부리다? 시키다? 어처구니 없는 해설 한문 “孔子下車而問其故”의 “下車而問其故”를 언해에 “술위 브리샤 무르신대”라고 하였는데, 저 ‘브리샤’를 해설자가 각주에 ‘부리시어, 시키시어’라고 하였다. ‘부리다.’ 이건 촌 사람들만 아는 낱말일까? 짐을 부리다. 짐을 내리다. 수레를 부리다. 수레를 멈추고 짐을 내리다. 여기서는, 수레를 세우고 내리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국어사전에 없다. *** 고전번역원 박헌순 선생 글이다. 해설자가 어처구니 없는 오역을 했다. 부리다는 내리다는 뜻이다. 경상도에선 일상어다. 2023. 6. 27.
사진 한 장이 응축한 6.25 이 사진 한 장이 6.25 참상을 응축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23. 6. 27.
당간을 어찌 볼 것인가? 당간지주. 당간은 절입구에 세워진게 아니라 경내에 세웠다. 절 입구에 세워 사찰의 경계나 법회 혹은 종파를 알리는 현수막이 아니라 도량을 장엄하는 용도였다. 축소된 폐사나 현재의 사찰 경내만 보고 절 입구에 세워졌다는 얘기는 전부 구라다.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 세운 경우도 있다. 바로 잡아야 될 당간지주의 설명들. 우리 세대에 올바른 사용처나 설명을 정립하지 않으면 당간지주는 영원히 현수막 게시대에 불과할 것이다. *** 이상은 송광사 성보박물관 김태형 선생 글이다. 나 역시 저런 식으로 설명하는 일이 많았다. 당간은 동남아에 남아 있는 일이 제법 있는데 한국의 당간과 위치상 차이는 있다. 동남아 당간은 사찰 중심 구역에 설치된다. 다만 한국의 당간은 그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지점에 서는 일이 많아 저.. 2023. 6. 27.
한반도 고대문화 키를 쥔 주사朱砂, 이를 모르고 역사한다는 말을 마라! 예외는 없지는 않으나, 붉은 색 안료 혹은 물감을 분석하면 두 가지로 대별하는데 하나는 사진에서 제시한 주사朱砂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산화철 계열이다. 이걸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은데 더 선명성을 띠는 선홍색 계열은 대개 주사인 경우가 많다. 둘을 놓고 비교하면 나는 대략 구별한다. 반면 산화철 계열은 거무틱틱한 색조가 많다. 저 주사는 주성분이 황화수은HgS라, 황[S]이건 수은[Hg]이건 둘 다 독극물 계통이라, 저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띤다. 주사는 저런 색깔 때문에 주사朱砂라 하고, 또 중국에서는 진辰이라는 지방에서 많이 난다 해서 진사辰砂라고도 하고, 또 같은 붉다는 계열로 丹이라는 글자가 있으므로, 단사丹砂라 하기도 한다. 저 주사를 지칭할 적에 붉을 적赤자를 쓰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했.. 2023. 6. 27.
정강이 뼈에 남은 칼질의 추억, 145만년 전에 식인 풍습이?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 그 조상으로 간주할 만한 약 150만년 전 인류족 뼈를 분석했더니 식인 습속이 있었다고 할 만한 흔적이 나타났다고 한다. 보통 이럴 때 고고학도나 고인류학도가 접근하는 방식은 생각보다는 간단해서 일단 뼈다구에서 칼질의 흔적을 찾는다. 물론 그때는 금속 칼이 없었으므로 석기로 썰어야 했다. 그런 흔적이 보이면 이것이 인위적인 것이냐 아니냐를 당연히 분석해야 한다. 이 또한 뭐 복잡한 것 같고 실제 그렇듯이 그네들이 설명하지만 뭐 내가 보기엔 그리 큰 기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암튼 미국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 브리아나 포비너 라는 사람이 팀을 꾸려서 케냐 나이로비 국립자연사박물관 Nairobi National Museum 이 소장한 저 시대 사람족 화석 정강이 뼈를 이리보고.. 2023. 6. 27.
독毒과 약藥은 동전의 양면 독성이 강할수록 약성이 뛰어나다. 동양의학에서 주로 나오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만국 의학에 공통한다고 나는 본다. 독극물 아닌 약물 있던가? 그래서 같은 물질인데 잘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네 일상에서 그 대표가 실은 아편이다. 이 아편은 내가 어릴 적 고향만 해도 거개 몰래 농사를 지어 비상약으로 썼다. 지금도 이런 일이 드물지 않게 아파트 안에서 몰래 키우다 걸렸네 마네 하는 뉴스가 보이는 것을 보면, 그 재배 욕망이 어쩌면 인간 본능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새 한창 사회문제화하는 펜타닐[fentanyl 또는 fentanil로 쓰는 모양]은 흔히 하는 사전식 설명으로 오피오이드계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효과는 같은 오피오이드계 모르핀보다 100배 이상.. 2023. 6. 27.
춘배의 고백 [단상] 또 일 년의 절반을 맞으며 제가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으로 부임한 2020년 9월 16일 이래 특별전과 기획전을 매해 3~5건 씩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째 올해는 고궁박이 조용하다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네. 실제 올 전반기 특별전은 없었습니다. 2022년 말 선보인 과학실을 본격 가동하고 계획에 없던 환수되어 온 대동여지도 특별 공개전을 연 외에 별다른 전시 이슈가 없었습니다. 물론 올 9월 중순에는 세상에 다시 없는 아름다운 옷을 가지고 대규모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 정말 엄청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어쨌건 전시 자체는 좀 줄었어요. 왜냐면 고궁박물관의 인지도 상승을 위해 냅다 달린 지난 2년도 중요했지만 이제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차분히 근본.. 2023. 6. 27.
건준의 문제는 왜 발생했는가 한국의 좌파 진영에서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문제를 보는 시각은 비교적 간단하다. 해방 후 건준이 총독부로 부터 치안 유지권을 인계받아 "건국을 준비하였으며" 9월 초에는 이를 "인민공화국"으로 발전시켜 국가로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준의 "법통"을 부여하기 위해 이 건준이라는 것은 사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해방 1년 전부터 여운형呂運亨(1886~1947. 7. 19)은 이 전국적으로 조직한 "비밀조직"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방후 스토리를 써 내려가면 당연히 9월 초에나 들어와 총독부로부터 정권을 인수인계받은 미군정은 "불청객"이 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건준이 이렇게 한달 조금 못되는 기간 동안 해프닝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이 일본 본.. 2023. 6. 27.
동경제국대 학생의 한달 경비 1938년 한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통학하는 동경제국대 학생은 한 달에 평균 27엔을 지출하는데 책에 10엔을 썼고, 하숙집에서 다니는 동경제대 학생은 한 달에 52엔을 쓰는데 책에 11엔을 지출했다고 한다. 생활비 20~30%를 책 사는 데 던진 셈. 어지간한 연활자본 책이 3엔 하던 시절, 10엔 11엔이라고 해봤자 서너 권 사면 끝이다. 거기에 펜이나 잉크, 공책 같은 문구류도 사야 했을 테니. 식비가 각각 4엔, 17엔이었다는데 이건 술값을 포함한 걸까? *** 이는 아마노 이쿠오 지음, 박광현·정종현 옮김, 《제국대학 -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 도서출판 산처럼, 2002. 140쪽에 기초한다. *** Editor's Note *** 조선인 유학생의 경우는 어땠을까? 제대로 된 증언을 .. 2023. 6. 26.
화가 오타 기지로한테 쌩까임 당한 후지다 료사쿠 일본 근대 고고학 1세대로, 1921년 경주 금관총을 발굴해 우리에게도 유명한 고고학자 하마다 고사쿠 빈전경작 濱田耕作 (1881~1938)가 1924년 조선 땅을 다시 다녀간다. 그때 그와 함께 다닌 화가 오타 기지로 태전희이랑 太田喜二郞(1883~1951)가 하마다 행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 그림 두루마리(에마키)로 만들었다. 그걸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41년에 사진으로 찍어갔다. 그 마지막 장면인데,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후지타 료사쿠(1892-1960)가 하마다에게 이렇게 권한 모양이다. "센세이! 벚꽃 보러 안 가시렵니까?" 근데 뭐가 뜻대로 안되었는지, "밤벚꽃놀이 결의안"이 철회되고 만다. 이에 후지타군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가로등 아래 벚꽃이 흩날리는데, 손을 .. 2023. 6. 26.
6월의 어느 날, 용인 할미산성에서 장마가 올라오기 전, 습하고 더운 6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할미산성에 올랐다. 용인에서 학예연구사로 살아오면서 처음 만난 유적이 할미산성이었다. 토지매입, 발굴조사, 정비공사, 학술대회, 발굴도록 제작, 사적지정 신청까지….용인에 있는 이 작은 산성을 전국에 알리고자 노력했던 지난 13년의 시간이 스쳐간다. 이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누가 이 산성에 오를까 생각하지만, 여기에 앉아서 바라보는 석성산의 자태는 보는 맛이 있다. 2년 전 심어 놓은 억새가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다. 가을 억새 명소가 되길 바래본다. 용인 할미산성 - https://taeshik-kim.tistory.com/m/entry/%EC%9A%A9%EC%9D%B8-%ED%95%A0%EB%AF%B8%EC%82%B0%EC%84%B1 .. 2023. 6. 26.
상주 외답동 산24-1번지 발굴조사 보고(상보) 상주 외답동 산24-1번지 내 유적 문화재 학술발굴조사 조사개요 1. 조 사 명 : 상주 외답동 산24-1번지 내 유적 문화재 학술 발굴(정밀)조사 2. 조사유형 : 정밀발굴조사 3. 조사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동 산24-1번지 일원 4. 조사면적 : 223㎡(1구역 : 132㎡, 2구역 : 91㎡) 5. 허가번호 : 제2023-0497호 6. 조사기간 : 2023.05.15.~2023.6.26.(현재 진행중) 7. 조사목적 및 경과 ○ 조사목적 상주지역에는 병성동 고분군을 비롯해 청리 고분군, 신흥리 고분군 등 삼국시대 상주의 역사·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고분 유적이 다수 조사되었다. 하지만 고대 정치체 근간이 되는 초기철기시대 및 원삼국시대 유적 조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상주의 .. 2023. 6. 26.
일본의 항복에서 미군정까지 알다시피 일본의 항복은 1945년 8월 15일에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에 군정이 시작될 떄까지의 사건을 요약해 본다. 여운형의 건준의 활동은 초록색으로 표시하였다. 이들의 활동이 정상적인 활동이었는지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1945. 8.11-8.15일 사이: 조선총독이 여운형에게 인수인계를 제의 했다고 주장 1945. 8. 15 일본의 무조건 항복 조선총독이 여운형에게 행정권과 치안권을 이양했다고 주장.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가동. 1945. 8. 17 미국정부에 의한 군정명령 1호를 발효 (일본에 대해). 그 내용을 보면 미국은 일본에 대해 (조선, 대만 포함) 아래와 같이 해당 지역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It instructed Japanese forces to su.. 2023. 6. 26.
상주 외답동 산24-1번지 유적 발굴성과(상주시 공식 보도자료) 상주 외답동 산24-1번지 유적 현장 공개설명회 개최 “상주의 고대국가 사벌국의 제사유적 확인” 상주박물관(관장 윤호필, 이하 박물관)은 6월 23일(금) 상주 외답동 산24-1번지 유적에 대한 현장 공개설명회를 개최하였다. 박물관은 지난 5월 15일부터 ‘외답동 유물산포지’에 해당하는 외답동 산24-1번지 일원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상주지역의 고대 국가인 사벌국 단계(3~4세기)의 집자리와 불을 지핀 도랑형태의 유구, 원형의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초기철기시대를 비롯하여 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는 많은 토기편들과 호형대구, 검자루끝장식, 세형동검편 등의 청동유물이 출토되었고, 유적의 층위에서 인위적으로 흙을 매립한 퇴적양상과 기반층을 절토하여 단이 형성되어 있는 점 등이.. 2023. 6. 26.
태평양전쟁: 일본의 의도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의 의도. 파란색으로 표시된 선 안의 지역이 소위 "남방작전"의 핵심 구역으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원인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봉쇄로 부족해진 원자재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으로 실제로 일본의 태평양전쟁은 이 지역의 이해를 지키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이 싸운 이유는 바로 파란 선 안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나머지 또 하나의 목적은 중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손에 넣어 중국을 연합국에서 고립시키는 의도가 있었다. 어느 것도 동남아시아는 반드시 일본이 손에 넣어야 달성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이 개전 초 차지한 동남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태평양 섬들에서 서진하는 미해군과 싸운 것이 바로 태평양전쟁이다. 이것이 당초 일본의.. 2023. 6. 26.
1943년까지 2차대전 전황과 조선의 상황 1942년 중반까지 일본의 태평양전쟁 최대판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 (1942년 6월)의 승전으로 미국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일본 해군은 여전히 건재했다. 이 시기에 조선에서는-. 3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미국, 영국, 소련 측에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 일제, 일반 가정의 금속 공출 시작. 4월 18일 - 미국 육군 항공대 소속 지미 둘리틀 중령의 지휘하에 16대의 미국 B-25 폭격기 16대가 일본의 주요도시를 폭격한 이른바 둘리틀 공습(Doolittle raid)이 실행됨. 5월 - 잡지 가 로 제호를 바꾸고 민족지에서 친일지로 전향 조선어학회 잡지 이 통권 93호로 폐간 5월 8일 - 일제, 조선에 징병제 실시 결정 5월 15일 -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원봉의 조선.. 2023. 6. 26.
세계사와 한국사 동 시대 세계사 전개를 모르면서 이해 가능한 한국사란 하나도 없다. 일본이 어떻게 제국을 운영했는지 모르면서 조선의 30년대를 알 수 있을까 태평양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무시하면서 해방전후사를 논할수 있을까 아니 인도사를 모르면서 왕오천축국전을 어떻게 이야기 하겠느냔 말이다. 전 세계 전염병 발생현황을 모르면서 조선의 역병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애초에 "한국사"만 떼어 가르친다는거 자체가 무리에 억지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사의 수준은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2023. 6. 26.
석촌동 고분의 백댄서 롯데월드몰 저 친구가 한창 공사 중일 때, 그리하여 한참 공중을 향해 부양할 때 나는 저 친구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재 관람대가 될 것이라 예언했거니와 저 꼭대기서 사방을 조망하며 무엇보다 석촌동 방이동고분군 풍납토성 몽촌토성을 한 눈에 조망하는 경관적 위압성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제 송파구문화재야행이 있었으니 메인 무대가 저 거대한 고층건물을 백댄스 삼고는 석촌동 3호분 앞에다 메인무대를 꾸몄으니 실로 기묘한 연출을 빚었다. 제2롯데월드, 작금 공식 명칭은 롯데월드몰 Lotte World Mall인 저 친구가 주변 문화재엔 괴물일까? 빛나는 조연일까? 저 위대한 건물도 이제는 21세기 문화재라는 관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문화재는 고물 구닥다리만 부둥켜 안고선 신주단지 삼아야겠는가? 2023. 6. 25.
시간이 약이더라. 나를 키워준 곳,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곳, 동시에 정말 즐거웠던 곳!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꼬꼬마 얼라였고, 내 그릇의 크기가 함지박만큼은 되겠지 생각했지만, 째깐한 간장종지였고, 내 마음은 번철 만큼 단단하겠지 싶었는데, 달궈진 번철 위 돼지비계같이 흐물흐물 거렸다. 지금은 좀 달라졌나 물어보신다면? 놉! ㅎㅎㅎㅎㅎㅎㅎ 여전히 똑같다. 아예 아무렇지 않을 수 없겠지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 시간이 약인 것 같다. 여전히 박물관은 긴 세월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2023. 6. 25.
[내가 본 박경식] (2) 한백문화재연구원 출범과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해체 이번에 박경식 퇴임 기념논총이라 해서 나온 제1권 《한국 석조미술 연구》를 보면 그의 업적이라 해서 오만 잡가지가 나열되는 모습을 보는데 개중 하나가 보고서라 해서, 그가 직간접으로 간여한 문화재 조사 관련 보고서-말할 것도 없어 발굴보고서가 주류를 이루지만-도 망라했으니, 그 보고서는 다시 간행기관별로 크게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와 한백문화재연구원으로 대별함을 본다. 두 기관은 모두 그가 창립을 주도하고 그 오야붕적 자리를 차지한 까닭에 그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한, 모든 보고서 작성자 명단 맨 꼭대기엔 항상 그의 이름이 올라가기 마련이라, 저 많은 보고서를 실제로 그가 작성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기관은 성격이 판이하지만 계승적 관계다. 다시 말해 단국대학교라는 사립대학 부설기관으로 출범한 매장..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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