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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박경식] (3) 정영호 몰래 문을 연 한백문화재연구원 한백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 제공 정보를 따라 그 개원에 즈음한 주요한 움직임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먼저 2005년 12월 2일 창립발기인 대회를 하고, 같은 달 14일 창립총회 및 이사회의를 하고는 이사장과 이사, 감사 등 정관 심의를 진행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1월 6일 개원을 하고, 1월11일 설립 등기를 완료했으며 3월 3일 성수동에서 개원식을 공식으로 했다. 문화재청 발굴조사 승인은 2006년 4월 12일에 났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인데, 이걸 준비하느라 서영일과 방유리가 똥을 쌌다. 저 과정에서 박경식 형이 실은 나한테 이사로 들어와 주었으면 하고 의사타진을 했지만, 나는 현직 기자로서, 더구나 문화재 담당 기자로서 그건 곤란하다 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거 보면 나도 참 당시만 해도.. 2023. 6. 30.
‘국가유산기본법’은 이제 실행이 문제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의 의미와 정책과제’에 즈음해 김태식 연합뉴스 선임기자 문화재 존재 기반을 이루는 문화재보호법을 근간에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비판을 거듭한 나로서는 문화재청이 그에 부응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만, 나 좋은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번 국가유산기본접 시행을 앞두고 그에 대한 부응 혹은 호응이라 자화자찬하고 싶다. 이는 그만큼 이 문제가 다른 어떤 문화재 현안보다 절박했지만, 또 그런 절박성을 적어도 이 업계에서는 공감하는 문제였지만, 어느 누구도 성큼 시도하기는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새로운 법 제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유산을 보는 관점 제시를 나는 적극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물론 법률 제정이 곧바로 인식 전환까지 불러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발판으로 이.. 2023. 6. 30.
내셔널지오그래픽, 한 시대를 접는 또 하나의 시대 아이콘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잡지를 무척이나 흔하게 만난다. 어이한 셈인지, 헌책방에 이 잡지가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그 시절 정기구독이 그리 많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별호를 사는 일은 드물고, 거의 다 정기구독 형태가 아니었나 한다. 또 그만큼 영업활동도 활발해서,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정기구독을 판촉하는 영업사원을 드물지 않게 만났다고 기억한다. 대학가 정기구독 판촉을 이야기하니 그 시절 삼성출판사 세계문학 세계사상사 전집이 각중에 생각나기도 한다. 이 내셔널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공식 명칭이 The National Geographic Magazine인 잡지가 1888년 창간 이래 135년 만에 뿌리째 흔들리는 변화를 맞이했다는 소식이어.. 2023. 6. 30.
낙서, 콜로세움에 했다 해서 처벌 받는 아이러니 https://www.youtube.com/shorts/3ZAY08cVFkc 언뜻 해프닝으로 넘길 만한 일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사례야 한둘이리오? 오도방정하기는 예나 저기나 마찬가지라, 내 기억에 언제인가 일본 동대사 목조건물 난간인가 어딘가에다가 한국이 관람객이 글자를 썼다 말았다 해서 난리친 적 있으니 그 사건 결말이 어찌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만 저 콜로세움 낙서 사건은 저 동영상을 보니 여러 모로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을 법한데, 위선 발생 지점을 보니 내부 회랑식 벽돌 비름빡이라, 마침 그걸 찍은 다른 관람객을 보면서 씩 쪼개는 저 사람이야 크게 대수라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저걸 찍은 사람이 저걸 공개했다는 데서 문제가 커져버렸으니 이 일로 무슨 이태리 문화부장관까지 나선 일을 뭐 공직자로.. 2023. 6. 30.
조건이 결정하는 논문, 강단을 먹여살리는 사이비역사 식민성 여부를 떠나 고조선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남한 강단역사학계서는 식민지시대 이래 눈꼽만큼도 새로울 순 없어 조선왕조를 이성계 일파가 세웠다는 주장이랑 진배없으니 이런 말을 담은 글은 적어도 논문이라는 형태로 실릴 수는 없다. 한데 이 철 지난 주장을 시종일관 내세우는 글이 논문이라 해서 버젓이, 것도 집중으로 실리는 시대가 불과 5~6년 전에 있었으니 백주대낮 날강도 같은 이런 일은 어찌해서 가능했던가? 당시 동북아역사지도니 해서 이른바 역사왜곡 사태에 즈음해 이른바 사이비역사학 혹은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재야사학계 공격에 시달리던 강단사학자들이 저런 주장을 담은 글들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집중으로 투고하는 호시절이 있었더랬다. 왜 호시절이라 하는가? 표절이 합법화했고 결.. 2023. 6. 30.
여자만 수십명 떼로 묻은 2천500년 전 이스라엘 사막 무덤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nigmatic 2,500-year-old Burials in the Desert Dozens of people, possibly all female, were found in an elaborate tomb in the middle of the Negev desert, nowhere near any ancient settlements. Was the goddess of crossroads involved?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nigmatic 2,500-year-old burials in the desert***www.haaretz.com 저 Haaretz라는 이스라엘 언론은 그 지역 발굴소식을 집중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 2023. 6. 30.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3) 출세의 시작, 권적과 권정평 1 12세기에 들어서면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개경에 올라 벼슬을 살던 안동권씨가 사료史料에 나타난다. 권적(權適, 1094~1146)과 권정평(權正平, 1085~1160)이라는 인물이 그들이다. 둘 다 묘지명이 현재 전해지고 있어 가계와 생애를 어느 정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데, 와 에 모두 등장하는 권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의종毅宗 2년(1148) 작성된 「권적 묘지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는 권적의 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이다. 증조할아버지[曾王父]는 호장戶長 배융교위陪戎校尉인 휘諱 균한이고, 할아버지[大王父]는 정조正朝에 추봉된 휘 좌섬佐暹이며, 아버지[王父]는 검교태자첨사檢校大子詹事인 휘 덕여德輿이다. 권적의 증조부 권균한은 에 권행의 증손이자 우일품별장右一品別將.. 2023. 6. 29.
번역과 반역 번역은 반역이다. 번역은 매양 그 너머를 미지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불경佛經. 우리가 아는 불경은 번역이 누층한 결과물이다. 이른바 원전은 팔리어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다. 이를 구마라집과 현장 등의 무수한 역경승들의 간난을 거쳐 외국어인 한문으로 태어났다. 이 땅 한반도는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한다. 중역을 넘어 삼역이다. 이런 고통에 불면의 밤을 지새운던 자 중에 일부가 괘나리 봇짐 싸들고 인도로, 인도로 갔다. 거기엔 번역 넘어 오리지널이 있으리란 확신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그리 애타게 찾은 부처님 목소리는 결국은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한 이가 원효다. 원효는 행복했을까? 죽는 날까지 그는 천축을 바라보며 절규했으리라. 부디 다음 세상엔 개돼지도 좋으니 천축에서.. 2023. 6. 29.
초거대 사찰 옆에 있어 억울한 미탄사, 누군가 저택을 희사했다? 미탄사味呑寺라는 사찰은 꼴랑 한 번 모습을 들이밀고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것도 역사상 저명한 인물을 소개하는 자리에 곁다리로 잠깐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말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1편, 신라시조 혁거세왕 이야기에 이르기를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그가 살던 집] 옛 터가 있다. 이것이 최후崔候(최 문창후-최치원)의 옛집이 분명하다.’ 이것이 전부다. 실제 미탄사 자리가 어딘지는 실상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황룡사 남쪽이라 했고, 또 그 남쪽 인접 지점 드넓은 경주평야 한가운데 누가 봐도 신라시대 흔적인 삼층석탑이 우람하게 있어 이곳이 미탄사 터일 것이라는 심증만 있었다. 그런 심증은 이후 이 일대에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포착됨으로써 .. 2023. 6. 29.
손대지 말란 건 모름지기 손을 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 문화재를 망치는 대표적 고질로 실체도 없는 원형 고수 뒷다리 잡기와 더불어 신주단지 애물주의 를 매양 꼽거니와, 특히 후자와 관련해선 매양 반문하거니와 손 대면 어때서? 하거니와 저 걸상 의자만 해도 그렇다. 저것이 어찌하여 백년이 지난 지금도 불쏘시개로 가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경외는 한다만 만지지 마시오 Please do not touch 라는 경고문이 놓여 있길래 보자마자 짜증나서 치워버렸다. 묻는다. 만지면 어때서? 치워 버리고 맘대로 어루만지며 사진 맘대로 찍었다. 물론 저 경고가 표방하는 정신 자체까지 내가 폄훼하고픈 생각은 없다만 그렇다고 만지지 않는 데서 없던 경외심이 생긴단 말인가? 사진 찍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붙일 필요도 없다. 또 붙이려거든 관람에 방해하지 않는 데 두든 .. 2023. 6. 29.
파전 들고 서빙 나선 폼페이 고고학은 홍보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학문이라, 시대 변화에 맞는 홍보 맞춤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변신을 꾀했으니, 그런 홍보에 이 폼페이 Pompeii 유적 만큼 최적화한 데가 있겠는가? 폼페이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 발굴이 언제 완료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수백년은 너끈히 해 먹을 만한 데라 종래엔 전통매체 기자님들 모셔다가 블라블라했지만, 요샌 그런 전통시대 매체는 캐털이라, 직접 기자님 되어 각종 sns 활용해 대중을 접촉한다. 이번엔 뭘 들고 나왔나 하니 살피니 파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3Ml4lJNH8 이 분이 폼페이 유적을 전담하는 Director라시는데 성함이 가가멜 쭈그리? Gabriel Zuchtrigel 라 신다. 폼페이 유적은 이를 조사하는 .. 2023. 6. 29.
명태, 명천 사는 태씨가 잡은 물고기라 해서 얻은 이름? 조선 후기 학도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손 가는 대로 써내려간 글 모음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7권 / 춘명일사春明逸史에 보이는 일화다. 미리 말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명태明太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漁父 중에 태씨太氏 성을 지닌 이가 있어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廚房 일을 보는 아전을 통해 도백道伯께 드리니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다 해서 물고기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고 다만 “태 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옵니다”고 할 뿐이었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했다. 이로부터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북어北魚라 불렀다.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300년 뒤에는 .. 2023. 6. 28.
원조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이 60년대라고 70년대라고 변화가 있었겠는가? 돈만 준다면 쌀만 준다면 전쟁터 총알받이도 해야 했고 탄광으로도 가야 했으며 해외 원정 간호사라도 해야했다. 그래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남미행 이민 배를 탔다. 국가는 그렇게 폐허와 가난을 자양분 삼아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다. 미국의 구호원조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사대고 친미고 매판이고 나발이고 먹고 살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살아 있음이 하나하나 기적인 시대였다. #원조물자 #구호물자 #국가재건 #미국원조 2023. 6. 28.
1953. 7. 27 정전협정 조인식과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식이 열린 판문점 | 1953년 7월 27일 I 국가기록원 정전협정 조인식 | 1953년 7월 27일 | 서울역사박물관 그 역사적 중요성에 견주어 그 현장은 막상 적막하기만 하다. 2023. 6. 28.
부채 든 목 길쭉이 여인, 스페인독감이 느닷없이 앗아간 클림트 최후의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생몰 연대가 1862~1918년이라, 죽은지 대략 백년이요, 이승을 누린 기간이라 해 봐야 쉰여섯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뭐 고흐가 오래살았는가? 그에 견주면 대략 동시대를 살다간 피카소(1881~1973)는 천수를 누리고도 덤을 더 살았고, 그의 라이벌 마티스(1869~1954) 역시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장수를 했다 봐야 한다. 이를 보면 예술세계에서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갔다 해서 반드시 그 상품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가 싶다. 흔히 클림트를 일러 오스트리아 태생 상징주의 화가라 하며 근대 미술계에서는 꽤나 영향력을 발휘한 소위 빈 분리파 운동Vienna Secession movement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한다만, 우리한테 각인한 클림트는 실상 아.. 2023. 6. 28.
보스만 판결과 메이저리그 총파업 남들 눈엔 기자로서의 김태식이라고 하면, 대뜸 문화재를 떠올리겠지만, 23년에 이르는 기자 생활 기간 중 문화재 기자 생활은 17년에 지나지 않는다.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하는 나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98년 12월 1일 문화부로 발령났다. 문화부 이전 나는 부산지사와 체육부, 그리고 사회부를 거쳤다. 체육부는 내 기억에 정확치는 않으나, 94년 7월 1일에 발령나서 96년 11월 30일까지 일했을 것이다. 대략 2년 반이라 치자. 이후 나는 사회부로 갔으니깐. 체육부에서는 제대로 해 본 것 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야구와 축구도 해 봤다. 당시만 해도 외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체육 관련 외신은 국제부가 아니라 체육부에서 별도로 처리했다. .. 2023. 6. 28.
Tank sounding like milestone The Korean War and Seoul "At the time of the Korean War, I was living in between Euljiro 3-ga and the Chieongyecheon Streom. Hearing something that sounded like a turning milestone, all the neighborhood ran out into Euljiro Street. It was the sound of a tank. We were all seeing a tank for the first time. "6.25전쟁 때 제가 을지로3가하고 청계천 사이에서 살았는데 밤에 맷돌 가는 소리가 들려서 동네사람들이 다 올지로로 뛰어나갔조 그게 탱크 들어오는 소리인데, 저희는.. 2023. 6. 28.
석가모니 고향 룸비니에서 기원전 6세기 불교 유적 출현 불교를 개창한 고마타 싯타르타는 정확한 출생 시기가 논란이 극심하다. 기원전 6세기를 기점으로 삼는 불기佛紀가 공식화했다 할 수 있지만, 이는 연대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작 혐의가 있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활동 연대가 가장 확실한 고대 인도 제왕 아쇼카를 기준으로 백년 전에 태어났다는 기록 혹은 증언이 있음을 무기로 아예 부처 활동 연대는 기원전 300년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 또한 주로 일본 불교학계를 중심으로 삼기는 하지만 상당한 설득력을 구비한 채 유통한다. (덮어놓고 연대 끌어내리기는 일본 친구들 주특기다. 왜? 그래야 과학인 것처럼 가장하기 때문이다. 이 짓거리를 심국사기에다 그대로 갖다 놓았다.) 도대체 부처는 언제쯤 태어나 활동했을까? 영국 더럼 대학 Universit.. 2023. 6. 28.
블로그 이름 교체, The HERITAGE로 재탄생 임시방편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기존 이름 HISTORYLIBRARY 역사문화라이브러리 가 영 길고 거추장스러웠다. 몇 분께 자문을 구한 결과 블로그 성격에 맞게, 또 깐쫑하면서도 한층 명료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간판으로 The HERITAGE 를 선택했다. 누적 방문객도 334만을 돌파했다. 간판 교체가 익숙함의 포기일 수도 있어 고민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더 늦기 전에 결단해야 했다 말해둔다. 2023. 6. 28 편집자 김태식 드림 2023. 6. 28.
쑥대밭 재동국민학교와 명동, 6.25가 남긴 상흔 폐허로 변한 명동. 1952. 임인식 촬영 쑥대밭 재동초등학교. 1953. 임인식 촬영 한국전쟁 서울 피해상황 이런 데서 일어난 나라는 기적이라 불러야 한다. 예수도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어벤져스 군단도 이룩할 수 없던 일이었다. 기적 그 이상의 기적이다. 2023. 6. 27.
6.25 난리통에 불타버린 보신각 이 보신각 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있다. 이걸 왜 제자리 돌리지 않는지도 수수께끼다. 또 하나 1950년 6.25 난리통에 보신각이 불탔는데도 어찌하여 살아남았는지도 불가사의하다. 동이 아니란 말인가? 화력이 세지 않았다는 말인가? 임인식 촬영으로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된 상태다.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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