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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구석기조작은 아마추어 고고학도랑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양심의 문제이지 전공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후지무라 신이치에 의한 2000년 일본구석기조작 발각 사건을 다루면서 나는 이 사건이 발단한 원인으로 그가 아마추어 고고학도임을 지적하는 일이 천부당만부당함을 논했거니와 이 문제는 그만큼 중요한 까닭에 왜 그것이 천부당만부당한지를 다시금 상론하고자 한다.저 사건을 주도한 후지무라는 고교 학력으로 알며 대학에서는 정식으로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안다.그는 순전히 고고학이 좋아 고고학에 투신했으며, 마침내 정식고고학도가 되었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그렇게 대접받았다.그 과정이 무엇이었건 그가 정식으로 고고학을 전공했건 말건 그것이 조작사건을 일으킨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왜인가?그것 양심의 문제지 전공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물론 그가 다른 고고학도에 견주.. 2025. 6. 26.
화장묘와 시신묘를 함께 쓴 독일 로마 공동묘지 이 소식은 지난 1월 공개됐거니와, 이르기를 2024년 가을, 독일 하이델베르크-노이엔하임 Heidelberg-Neuenheim 로마 묘지에서 서기 1세기에서 3세기로 추정되는 화장 및 매장cremation and inhumation burials 17기와 말 매장 매장 1기가 발견됐다 한다.(cremation이란 화장한 인골을 매장했다는 뜻이요 inhumation 은 시신을 그대로 매장했다는 뜻이다.)베를리너 슈트라세Berliner Straße에 위치한 독일 암 연구 센터 German Cancer Research Center (DKFZ) 새 건물 건설에 앞서 진행된 발굴 작업에서 발견된 이들 유적은 해당 유적에 대한 기존 조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약 1,400기 매장지가 있는 이 묘지는 바덴뷔르템베.. 2025. 6. 25.
폴란드 남동부서 매머드 상아 발굴 폴란드 남동부 공공사업 현장에서 고대 매머드 상아와 매머드 또는 숲코끼리forest elephant 것으로 추정되는 골반뼈pelvis bone가 발견되었다. 이 희귀한 유해는 루벨스키Lubelskie 주 자모시Zamość 인근 라부니에Łabunie 마을에서 S17 고속도로 건설 중 발견되었으며, 현재 루블린Lublin에 있는 마리아 퀴리-스클로도프스카 대학교Maria Curie-Skłodowska University(UMCS) 전문가들이 이곳으로 옮겨 분석하고 있다.이 유해는 260만 년 전부터 1만 1,700년 전까지 지속된 플라이스토세 시대 Pleistocene era 것이다. 이 시대는 오늘날 폴란드를 포함한 지역을 덮은 거대한 빙하 때문에 빙하기Ice Age라고도 한다. TVN24와의 인터뷰에서 .. 2025. 6. 25.
발굴로 드러난 흑사병 이전 영국 중세 마을 풍경 노스 터든햄North Tuddenham과 이스턴Easton을 잇는 영국 노포크Norfolk A47 도로 개선 사업 일환으로 진행한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세 마을 유적에서부터 사냥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 면모를 드러내는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A47 복선화를 겨냥한 이번 도로 공사에 즈음한 조사 결과 사냥과 전투에 사용한 중세 시대 창촉, 마을 정착지 흔적, 그리고 이 지역 삶을 엿보게 하는 유물들이 발굴됐다.헤드랜드 고고학Headland Archaeology은 중장비와 전통 수공구를 함께 사용하여 발굴을 진행했다. 600개가 넘는 토양 샘플을 채취해 분석했고 도기, 금속 세공품, 조각된 돌, 동물 유해 등 30kg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다.발굴된 유물 중에는 뼈로 만든 피리와 장식용 버클과 같은 .. 2025. 6. 25.
오슈 후지와라 미라 (4): 아테루이 일본의 동북사 첫머 리를 장식하는 인물에 에미시蝦夷[에조라고도 한다] 대추장 아테루이라는 사람이 있다. 阿弖流為라 쓰고 アテルイ라 읽는다. 일본의 동북지역으로 야마토의 진출은 한국사의 북진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에미시를 여진족, 야마토를 한반도 국가로 치환하면 거의 성격이 비슷한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경우 북진은 항상 이 지역의 종주권을 주장하는 중국측의 간섭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일본의 경우 야마토 조정이 방해받는 바 없이 북쪽으로 진군해 들어갔다는 것만 다르다. 이 과정에서 에미시도 그냥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야마토 군을 크게 곤경에 빠뜨렸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테루이다. 일본의 수도를 쿄토로 옮긴 인물이 바로 간무 덴노桓武天皇[환무천황]인데,이 간무 덴노가 남긴 업적 중에 .. 2025. 6. 25.
가을 향해 달려가는 황룡사 저 극성에서 가을을 읽어낸다.황룡사지 중에서도 대따시 부처 장륙존상이 있었다는 금당이 있던 자리다.가운데 장륙존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새끼 보살들이 포진했을 것이다. 무성한 잡초 아마 조만간 베어내지 않을까 싶다만 폐허가 잡초를 건너뛸 수는 없다.극에 이르면 내리막길이라는 노자의 갈파는 언제나 옳다.다만 그 극성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다.하지만 계절 혹은 시간은 달라 저 극성이 지면 무엇이 온다는 걸 우리는 안다.포토바이오가 여전히 심란한지 심란한 황룡사들을 투척한다. 2025. 6. 25.
오슈 후지와라 미라 (3): 야마토의 북진 일본사에서는 7세기 중반까지도 지금의 동북지역은 야마토의 판도가 아니었다. 사실 이 지점 정도가 당시 일본의 벼농사, 도작의 북방한계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지점을 경계로 남쪽의 벼농사=야마토와 북쪽의 수렵채집 종족=에미시가 대립하고 있던 형국이었다. 위 그림에서 빨간선이 대체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서기 7세기 후반, 북방과의 경계선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신기하게도 한반도는 대략 저 붉은 선 경계쯤에서 통일신라와 그 이북의 국경선이 그어지고, 동 시기 일본에서는 거의 비슷한 위도에서 야마토와 동북지역의 경계가 지어져 있었다는 말이다. 통일신라와 야마토의 북방 경계선이 결국 당시의 벼농사와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어진 것을 알 수 있겠다. 각설하고-. 야마토 정권은 서기 7 세기 후반부터 .. 2025. 6. 25.
볼리비아에서 잃어버린 티와나쿠 문명 사원 단지 발굴 남미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고대 문화 중 하나로 간주하는 티와나쿠 문명Tiwanaku civilization에 속하면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원 단지가 볼리비아에서 발굴됐다.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 근처 티와나쿠Tiwanaku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약 215km(130마일) 떨어진 카라콜로 Caracollo 지역 한 언덕에 지은 이 사원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인류학과 부교수인 호세 카프릴레스José Capriles가 이끄는 연구팀이 볼리비아 연구진과 공동으로 최근 발굴했다. 현지 원주민 지역 이름을 딴 팔라스파타Palaspata라고 이름 붙은 이 사원 단지는 수십 년 동안 지역 농부들에게 친숙했지만, 이전에는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연구팀은 위성 사진, 드론 항공 사진, 사진.. 2025. 6. 25.
언어로 볼 때 ​​훈족은 투르크계가 아닌 고대 시베리아가 뿌리 새롭게 발표된 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이전에는 투르크계Turkic origins로 여겨진 유럽 훈족European Huns이 고대 내아시아 흉노Inner Asian Xiongnu와 공통된 고시베리아어Paleo-Siberian language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쾰른 대학교 스벤야 본만Svenja Bonmann 박사와 옥스퍼드 대학교 사이먼 프라이스Simon Fries 박사가 수행한 이 연구는 두 집단 모두 예니세이어족Yeniseian language family에 속하는 멸종된 언어인 고대 아린어Old Arin를 사용했다는 강력한 언어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언어학회지(Transactions of the Philological Society)에 게재된 이 연구는 언어학적 증거와 기존의 고고학적,.. 2025. 6. 25.
오슈 후지와라 미라 (2): 모노노케 히메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이다. 이 천하의 명문을 보면 어디 북해도쯤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이 소설 배경은 니가타다.(니가타는 행정구역상 중부에 속하지만 역사적으로 동북지역과 동기화의 정도가 높았다)동북지역, 하면 일본에서는 이처럼 추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평균 기온이 그다지 낮은 지역은 아니다. 산간 지역을 제외하면 연평균 기온이 한반도 남부 지역 정도는 되는 곳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넘어온 도작이 동진하다가 일본열도가 북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지점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머물렀는데 대략 이 지점이 서쪽의 야마토와 동쪽의 에미시가 대치한 .. 2025. 6. 25.
어미 젖이 내장에 남은 시베리아 아기 털매머드 디마 1977년, 소련 과학자들이 동시베리아 얼음 땅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바로 얼어붙은 아기 털매머드woolly mammoth 사체를 발견한 것이다.이 매머드는 나중에 디마Dima라는 이름을 얻었다.디마는 약 3만 9천 년 전에 사망했다.생후 7~8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익사했거나 진흙에 갇혔을 가능성이 높다.영구 동토층 영하 온도 덕분에 디마 사체는 매우 잘 보존되었다.피부, 몸통, 작은 상아, 심지어 내장까지도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 이 발견에서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디마 뱃속에서 어미 젖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이는 디마가 사망 당시에도 여전히 젖을 먹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이 작은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어린 매머드의 생활 방식, 먹이, 성장 과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오.. 2025. 6. 24.
오슈 후지와라 미라 (1): 굶는 게 일이었던 일본 동북의 번 일본에는 앞서 설명한 슈겐도 승려 미라 말고도 오슈 후지와라奧州藤原 집안 일족 3대 미라가 있다. 이 미라는 성립기반과 담고 있는 스토리가 슈겐도 미라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무대는 일본 동북지역이다. ---------------일본 동북지역은 에도시대까지도 벼농사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이 때문에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면 벼가 냉해를 입어 그 일대 여러 번 전체가 기근에 빠졌다. 에도시대는 물론 19세기 초 중반 막말幕末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어 동북지역 번은 주기적으로 냉해, 흉년, 기근에 밥 굶고 가족을 내다 파는 게 일이었다. 이 동북지역 번과 같은 위도가 우리나라 평안북도, 함경남도 일대다. 조선 전기에 개척된 육진 위도를 보라.조선의 육진이 정말.. 2025. 6. 24.
아마추어 소행으로 몰아간 2000년 일본 구석기 날조 사건 이제 이 일도 당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가 많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거니와 상기하지 않을 수 없는 고고학 치욕 사건이다.일본에서는 旧石器捏造事件[구석기날조사건]이라 흔히 표현하며, 영어로는 Japanese Paleolithic hoax라는 식으로 표현하거니와 그에 대해서는 위피피디아 일본어 항목 旧石器捏造事件(きゅうせっきねつぞうじけん)으로 잘 정리되어 있거니와, 이를 전문 옮기는 일로 그 일을 정리하고자 한다.이 사건은 일본 전기·중기 구석기시대 유물(석기)이나 유적으로 여겨졌던 것이, 이러한 발굴조사에 종사하고 있던 아마추어 고고학 연구가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사전에 매설해둔 석기를 스스로 파냄으로써 발견한 것처럼 보이게 한 자작극으로 들통나고 그 일이 2000년(헤이세이 12년) 11월에 마이.. 2025. 6. 24.
조작 사태에 따른 그로키 일본구석기의 기지개? 중기 이전 쏵 비활성화, 히로시마서 4만2천년 전 유적 출현 지난달 25일 NHK 보도라, 이르기를 히로시마현 하쓰카이치시[廿日市市]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약 4만 2000년 전 석기를 발굴했다고 나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했다 하거니와이들 석기는 그 특징이나 지층 연대 등에서 이른바 유적 발굴의 「조작 문제ねつ造問題」로 재검토가 요구된 후기 구석기 시대보다 이전 시대의 것일 가능성이 있어, 일본 열도에 인류가 도달한 시기를 생각할 때 귀중한 발견으로서 주목된다 한다. 이는 25일 이바라키현茨城県 쓰쿠바시つくば市에서 열린 일본고고학협日本考古学協会회 연구발표회에서 나라문화재연구소 고쿠부 사다카쓰国武貞克 선임연구원 등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히로시마현広島県 관 유적冠遺跡[간무라이세키]에서 지난.. 2025. 6. 24.
하트셉수트 여왕 석상 파괴 이유 마침내 드러나 정치보복보다는 고대 이집트 "의식적 비활성화" 일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일부 여성 파라오 석상이 "의식적으로 비활성화ritually deactivated"했다고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이집트학자들은 강력한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Hatshepsut가 사망하자 그녀의 조카이자 후계자가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석상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대중의 기억에서 그녀를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많은 하트셉수트 석상이 의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파괴 이유는 그녀의 성별이나 그녀의 존재 자체를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이집트학자는 말한다.6월 24일 화요일, 고대(Antiquity)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하트셉수트 석상은 "비활성화"해서 초자연적 힘을 .. 2025. 6. 24.
헝가리 정복의 시대, 그 전사들은? 카로스-에페르예스쇠크(Karos-Eperjesszög)에 있는 헝가리 정복 시대 묘지 11호 무덤 매장 양상과 그것을 토대로 하는 복원도다.헝가리 북동부 보드로그쾨즈(Bodrogköz) 지역에 자리 잡은 이 무덤은 10세기 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헝가리 정복자들이 카르파티아 분지Carpathian Basin에 정착한 시기에 속한다.다른 두 묘지와 나란히 낮은 모래언덕에 자리 잡은 11번 무덤은 중세 초기 헝가리의 관습과 사회 구조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저와 같은 매장 양태 복원은 파지리크 인포마티카이 크프트(Pazirik Informatikai Kft)가 담당했으며, 미슈콜츠(Miskolc)에 있는 헤르만 오토 박물관(Herman Ottó Museum)에서 열린 "엘리트 알라쿨라.. 2025. 6. 24.
[왜?-2] 한국 잡곡농경이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 도작 농경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 있는 우리나라에선 도작 도입 이전 농경이 부진을 면치 못한데 대해선왜 그럴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수 있을까? 도작이 아니니까, 라고 답이 돌아올 것인가? 하지만 도작이 아닌 잡곡기반 황하문명은 잘도 아시아 굴지의 문명을 이루어냈다. 요는 한반도가 도작 이전에 농경의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는 그것이 잡곡농경이었던 것이 이유가 아니란 뜻이다.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우리는 찾아야 하겠다. 필자가 생각한 바 황하유역과 한반도 잡곡농경 차이는 주기적 범람이다. 주기적 범람으로 특별히 시비법 없이도 정착농경이 안정적이었던데 반해 한반도의 경우 우기는 범람이 주는 비옥함을 낳은 게 아니라 그나마 있던 토양내 양분과 표토를 씻어 내버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필자가 예전에 벼.. 2025. 6. 24.
운석철을 칼로 만든 히타이트 인류가 철을 이용한 역사를 살피면 현재 드러난 고고학적 자료를 기초할 때 대략 기원전 2천년대 무렵 유럽이나 근동 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하지만 이 초기 철검은 공통하는 특징이 있어 철광석을 캐서 제련한 결과물이 아니라 운석을 활용한 대목이 그것이다.이 유명한 히타이트 철검도 그러해서 외계가 준 철로 만든 것이다.아나톨리아 문명을 선도한 히타이트가 제철 부문 선두주자임은 널리 알려졌거니와 그 문화권에 포섭된 알라카회위크Alacahöyük 유적 발굴과정에서 저 요상한 단검 하나가 발굴됐으니 황금 거죽을 입힌 상태였다. 히타이트 수도 하투사Hattusa와 마찬가지로 알라카회위크는 초룸Çorum의 알라카회위크 마을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히타이트 이전,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닌 곳.. 2025. 6. 24.
제주 조천공동묘지에 만난 김시숙과 김형식 근대 제주 사회의 '거물'이자 항일운동가, 교육자였던 두 인물을 제주 조천공동묘지에서 만났다. 장마가 가까워서 수풀이 우거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긁히고 넘어져 자빠지기도 했지만, 간 보람은 있었다. "진정한 열부라면 충실한 반역자 무리일 것"이란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비명을 읽어보는 경험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 분, 김시숙의 산소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그 앞 소나무가 너무나 굵고 커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그 옆 김형식(김시숙에겐 사촌동생)의 산소는 후손이 벌초를 다녀갔는지 제법 멀쑤룩하였다.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시문으로 이름났던 지식인인 그는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해, 그 동생 송산 김명식(1891-1943)이 기자와 주필을 지내며 항일적 활동을 하는 등 워낙 잘 알려져 가.. 2025. 6. 24.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마련한 기이한 특별전 독일인이 수집하고 안봉근이 정리한 제주민속자료들 서울에서, 용인에서, 도쿄에서 거대한 특별전들이 여럿 열리고 있습니다. 거기 다녀온 분들 글도 적잖이 올라옵니다. 당연히 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날을 잡지 않으면 육지 나들이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육지에서 제주로 오시기도 어렵죠. 특히나 이런 장마철에는요.앞으로도 썩 보기 드문 전시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다녀왔습니다. 독일 동남부 작센 지역 드레스덴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제주 민속품이 근 100년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그래서 특별전 제목도 입니다.19세기 말~20세기 초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 인류학자나 민속학자에겐 황금의 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눈과 손으로, 아시아 사람들의 전통적 생활문화유산이 바.. 2025. 6. 24.
왜? (1): 한국과 일본의 다른 맛 한국 음식은 맵다. 일본 음식은 달다. 원래 이렇게 달랐을까. 일단 고추나 단맛이 최근에 와서야 흔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수백년 전에는 두 나라 음식맛이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필자는 양국 음식맛이 달라진 이유가, 역시 단맛을 얼마나 쉽게 내는가에 달린 것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에는 단맛을 꿀로 냈다. 쇄미록 등을 보면 각종 단 음식에 꿀을 치는 기록이 나온다. 임란 이후 일본은 단맛을 얻기가 우리보다 훨씬 쉬웠다. 무역을 통해 설탕이 들어온 덕분이다. 이 때문에 통신사로 일본에 간 조선의 일행은 일본에서 과자 상자를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단맛이 그쪽이 더 흔했던 때문일 터다. 조선은 단맛 대신 매운 맛을 그래서 선택한 것 아닐까 한다. 단맛과 매운맛 둘 다 한번 중..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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