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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淵蓋蘇文 고구려 말 실권자. 스스로 연못에서 태어났다 해서 성을 '淵'으로 삼았다 했으니, 당 고조 李淵과 휘가 같다해서 주로 중국기록에서는 뜻이 같은 '泉'으로 성씨를 바꿔쓰는 일이 많다. 《일본서기》에는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는 표기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동부대인 대대로였다. 그 직을 물려받지 못하자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그 동생 고장을 세우고는 죽을 때까지 정권을 오로지 했다. (설명보강) 삼국사기 권제49 (열전 제9) 연개소문 열전 : 개소문(蓋蘇文)은 성은 연(淵)씨인데 스스로 말하기를 물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대중을 현혹시켰다. 생김새가 씩씩하고 뛰어났으며, 의지와 기개가 커서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 아버지는 동부대인(東部大人) 대대로(大對盧)로 죽으니 개소문.. 2018. 3. 21.
개소문(蓋蘇文) ☞연개소문(淵蓋蘇文) 2018. 3. 21.
천개소문(泉蓋蘇文) ☞연개소문(淵蓋蘇文)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개금(蓋金) 2018. 3. 21.
용수(龍樹) ☞김룡수(金龍樹) 2018. 3. 21.
김용수(金龍樹) ☞김룡수(金龍樹) 2018. 3. 21.
김룡수(金龍樹) 진지왕 큰아들이며 김춘추 생부(生父)다. 룡춘(龍椿)의 형이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 :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둥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일찍이 왕 7년에 대궁(大宮), 양궁(梁宮), 사량궁(沙梁宮) 세 곳에 각각 사신(私臣)을 두었는데, 이때 이르러 내성사신 한 사람을 두어 세 궁(宮)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도록 하였다.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4년(635) 당이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에 책봉해 아버지 봉작(封爵)을 잇게 했다. 영묘사(靈廟寺)가 완성됐다. 겨울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룡수(龍樹).룡춘이라고도 한다)를 보내 주·현을.. 2018. 3. 21.
천명(天明) 신라 진평왕 딸로서 훗날 왕이 된 선덕의 언니로서, 룡수(龍樹)와 혼인해 김춘추를 낳았다. 남편 사후엔 룡수 동생 룡춘(龍春)과 살았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 아들인 이찬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 딸이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은 이름이 춘추(春秋)이니 김씨다. 진지왕(眞智王) 아들인 룡춘(龍春) 탁문흥갈문왕(卓文興葛文王) 아들이다. 룡춘(龍春)은 룡수(龍樹)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니 시호가 문정태후(文貞太后)이니, 진평왕 딸이다. 동경잡기(東京雜記) 간오(刊誤) : 선덕왕 남편은 갈문왕(葛文王) 김인평(金仁平)이고, .. 2018. 3. 21.
김용춘(金龍春) ☞김룡춘(金龍春) 2018. 3. 21.
룡춘(龍春) ☞김룡춘(金龍春) 2018. 3. 21.
김룡춘(金龍春) 신라 진지왕 아들이며, 룡수(龍樹) 동생이다. 형이 죽자 그 아들 김춘추를 양자로 거두어 돌보았다. 죽은 뒤 문흥대왕에 추봉됐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 :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룡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했다. 고구려인이 성을 나와 진을 벌려 치니 군세가 매우 성해 우리군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 싸울 마음이 전혀 없었다. 유신이 말했다. "제가 듣건대 ‘옷깃을 잡고 흔들면 가죽옷이 바로 펴지고 벼리를 끌어당기면 그물이 펼쳐진다’ 했습니다. 제가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 이에 말을 타고 칼을 빼들고는 적진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옴에 매번 들어갈 때마다 장수 목을 베고 혹은 깃발을 뽑.. 2018. 3. 21.
선덕대왕(善德大王) 신라 제28대 선덕왕을 높여 일컫는 말.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하였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선덕왕(善德王) 2018. 3. 21.
고타소(古陀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신라 김춘추 딸이다. 대야성 군주로 임명된 남편 김품석을 따라 임지에 있다가 백제군에 성이 함락될 때 피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의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춘추가) 막 떠나려 할 때 유신에게 말했다. “나는 공과 한 몸이고 나라의 팔다리입니다. 지금 내가 만약 저 곳에 들어가 해를 당하면, 공은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유신이 말했다.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백제 두 임금의 뜰을 짓밟을 것이오. 진실로 그.. 2018. 3. 21.
고타소랑(古陀炤娘) 고타소(古陀炤)라는 여자를 높여 일컫는 말인 듯 ☞고타소(古陀炤) 2018. 3. 21.
김품석(金品釋)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사위로서 선덕왕 11년(642), 이찬이자 대야성 도독으로 있다가 백제군 침략에 성은 함락되고 그 자신도 부인 고타소와 함께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에서의 .. 2018. 3. 21.
훈신(訓信) 생몰년 미상. 신라인. 선덕왕 11년(642) 김춘추가 고구려에 청병하러 사신으로 갈 때 수행했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1) 김유신上 : 나중에 유신은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가 되었다. 춘추가 사간(沙干) 훈신(訓信)과 함께 고구려에 예방하러 갈 때 대매현(代買縣)에 이르니 고을 사람 사간 두사지(豆斯支)가 청포(靑布) 300보(步)를 주었다. 2018. 3. 21.
개금(蓋金) 고구려말 대막리지 연개소문을 줄여 일컫는 말이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1) 김유신 상 : 뒤에 유신은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가 되었다. 춘추가 사간(沙干) 훈신(訓信)과 함께 고구려에 예방하러 갈 때 대매현(代買縣)에 이르니 고을 사람 사간 두사지(豆斯支)가 청포(靑布) 300보(步)를 주었다. [고구려] 경내에 들어가니, 고구려 왕이 태대대로(太大對盧) 개금(蓋金)을 보내 객사를 정해주고 잔치를 베풀어 우대하였다. 일본서기 권제27 천지천황(天智天皇) : (3년...10월) 이 달에 고구려 대신(大臣) 개금(蓋金)이 그 나라에서 죽었다. 여러 자식에게 유언하기를 “너희 형제는 고기와 물과 같이 화합하여 작위를 다투는 일은 하지 마라.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이웃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 2018. 3. 21.
덕창(德昌) 삼국사기 열전...보강요 2018. 3. 21.
염종(廉宗) ☞렴종(廉宗) 2018. 3. 21.
비녕자(丕寧子) 신라 진덕왕 원년, 무산성과 감물성, 그리고 동잠성 세 성 공략에 나선 백제군에 맞선 김유신 휘하에 배속되어 아들 거진, 가노 합진과 함께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원년(647)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무산성(茂山城), 감물성(甘勿城), 동잠성(桐岑城)의 세 성을 에워쌌으므로, 왕이 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고전(苦戰)하여 기운이 다 빠졌는데, 유신의 부하 비녕자(丕寧子)와 그의 아들 거진(擧眞)이 적진에 들어가 급히 공격하다가 죽으니, 무리들이 모두 분발하여 쳐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비녕자 : 비녕자(丕寧子)는 출신 지역과 성씨를 알 수 없다. 진덕왕 원년 정미(647) 백제가 .. 2018. 3. 21.
비령자(丕寧子) ☞비녕자(丕寧子) 2018. 3. 21.
거진(擧眞) 신라 진덕왕 원년, 무산성과 감물성, 그리고 동잠성 세 성 공략에 나선 백제군에 맞선 김유신 휘하에 아버지 비녕자와 함께 배속되어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원년(647)...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무산성(茂山城), 감물성(甘勿城), 동잠성(桐岑城) 세 성을 에워쌌으므로, 왕이 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고전(苦戰)하여 기운이 다 빠졌는데, 유신의 부하 비령자(丕寧子)와 그의 아들 거진(擧眞)이 적진에 들어가 급히 공격하다가 죽으니, 무리들이 모두 분발하여 쳐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 비녕자傳 : 비녕자(丕寧子)는 출신 지역과 성씨를 알 수 없다. 진덕왕 원년 정미(647) 백제가 많은 군사..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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