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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쌍둥이 왕궁과 왕릉 왕릉은 왕궁이다. 왕궁을 왕릉에 투사하면 둘은 오버랩한다. 둘은 서로에 대한 피사체다. 이 평범하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키워드 하나가 너무도 쉽사리 무시되곤 했다. 그랜드디자인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2014. 5. 31) 왜 투사하는가? 같은 집이기 때문이다.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이 집이라는 특성이 너무 쉽게 망각되곤 한다. 고고학은 무덤을 파면서도 집을 판다는 생각을 못한다. 내가 보는 거의 모든 고고학도가 그렇다. 이 집을 이해해야 무덤을 더 깊이 파고든다. 물으면 그걸 누가 모르냐 하는 헛소리를 자주 듣는데 그 무덤을 생전의 집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무덤 정의만 해도 입이 아프게 떠들었더니 이제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많은.. 2023. 5. 31.
공주 석장리서 중기구석기시대 뗀석기 70점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남한 최초로 확인한 석장리 유적을 낀 충남 공주시가 그 일원 3만 2,095㎡에다가 오는 2026년까지 168억원을 투입해 세계구석기공원을 만들기로 했으니, 구체로는 구석기교육원, 세계구석기체험공원, 구석기전망대 등과 같은 시설을 넣는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선 그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어야 할 터. 그래서 어느 발굴조사단에다가 이걸 맡길까 하다가 입찰인지 제안서 형태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겨레문화재연구원이라는 데를 조사기관으로 고르고는 거기다가 너희가 알아서 파 봐라 한 모양이라 단, 저 넓은 지역을 다 파제낄 수는 없으니 2020년 11월 시굴조사에서 문화층이 드러난 석장리동 124-1번지 일원 1,420㎡만을 대상으로 정밀 조사를 벌이게끔 했다. 그 결과 뗀석기를 비롯..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5] 백선엽 장군 본관 수원인 백선엽白善燁 (1920. 11. 23 ~ 2020. 7. 10) 장군은 위키에는 프로필이 이렇게 되어 있다. 평안남도 강서 약송소학교- 평양사범 (5년제) - 만주봉천군관학교 (2년제) - (해방후) 군사영어학교 1기 백 장군은 박정희 (1917~1979) 전 대통령과 프로필이 아주 비슷하고 두 사람은 집안 살림이 넉넉치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시기에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공부를 제대로 못할 상황인 사람이 공부를 공짜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범학교 진학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범학교 진학을 하게 되면 학비무료는 물론 매월 생활 보조금도 지급되었다는 증언이 있으므로 집안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교육기회였다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의 사범학교는 소학교를 졸업.. 2023. 5. 31.
그간 사모은 비싼 책 자랑질(1) 죽은 남편한테 보내는 편지 by 유성환 2017년 저는 《서양고대사연구》 제48집에 ‘ – 위작 역사기술 및 신화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저는 《카이로 사발》(Cairo Bowl: CG 25375)이라는 텍스트를 인용했습니다.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데디Dedi가 이우나크트Iunakht의 소생이자 신관인 인테프Intef에게 보냄 : 병이 난 이 여종 이미우Imiu와 관련하여, 당신은 왜 그녀를 해코지하는 모든 남자(영혼)와 모든 여자(영혼)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습니까? 왜 당신의 대문이 황량하기를 바랍니까? 오늘 그녀를 위해 새롭게 싸우시오. 그리하면 그녀의 집이 다시 일어날 것이며 당신에게는 물이 따라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집은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2023. 5. 31.
300년전 담당 공무원이 증언하는 어살 고기잡이의 고통 병술년 (1706, 숙종 32년 2월 26일) ○ 수부壽夫 외숙부께서 오셨다. 지금 기로소耆老所 어살의 감관監官으로 계신데, 어살이 있는 곳은 인천이다. 어부들의 고기 잡느라 고생하는 실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바닷가의 조수가 물러나면 바닷물과 물가 언덕의 거리가 수십 리나 되는데 어살은 그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조수가 밀려와 물과 언덕이 모두 평탄해지면 어살은 까마득히 멀고 드넓은 곳에 잠겨있어 식별할 수 없다. 조수가 물러날 때는 너무나 빨라 순식간에 바로 다 없어지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다가 모두 어살 안에 걸려든다. 그러면 곧 감관이 격군을 인솔하여 어살로 들어가 거두이 나오니, 세속에서는 이를 '관수觀水'라고 한다. 하루 중에 두 번 조수가 일어나는데, 조수가 밤이나 새벽에 .. 2023. 5. 31.
"집을 지어라" 건축재상 남구만 (병술년, 1706, 숙종 32년 2월) 25일 주동 남 참판 어르신이 견여를 타고 아버지(엄집) 찾아와 밤을 새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셨다. 남 참판 어르신은 영사 남구만의 9촌 아저씨이다. 남구만 재상의 일에 대하여 남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남구만 재상은 집 짓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 도처에 집을 지었네. 결성結城(충청 홍성)은 대대로 살던 곳으로 큰 집이 있는데, 구성駒城(경기 용인)의 묘소 아래에도 큰 집을 지었네. 비파담琵潭潭(경기 용인)에도 집이 있는데 물가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싫어하여 물가와 거리가 조금 먼 곳에 새로 집을 짓기 시작하였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원에도 민가를 사서 종을 두어 지키게 하고, 경성 동쪽 박 사인朴舍人의 골짜기에도 그곳의 수석水石을 좋아하여 초.. 2023. 5. 31.
왕궁 왕릉 종묘 사찰을 하나로 묶는 그랜드디자인 왕릉에 대한 이해의 출발은 왕궁이다. 왕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왕릉이 안보인다. 둘은 왕이 거주하는 집이다. 나와바리가 다를 뿐이다. 왕궁은 살아있는 왕의 독점적 구역이요 왕릉은 죽은 왕들의 조차지다. 이 둘이 만나는 접점이 종묘다. 종묘는 두 가지를 한 군데로 봉합한다. 이런 이해는 사찰에 대한 그것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사찰은 부처님의 집이다. 그 집은 불교 도입 초창기엔 생전의 집(대웅전)과 사후의 집(탑파)가 착종하다 고려시대 이후엔 급속도로 대웅전 중심으로 재편한다. 탑은 사라졌는가? 대웅전으로 통합됐을 뿐이다. 탑이 애초에 중국에 상륙했을 적에 그것을 원묘圓廟와 같은 용어로 번역하곤 했으니, 이는 탑파가 지닌 원초적 의미가 추모에 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廟로서의 탑파가 훗날 대웅전 하나..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연재에 붙이는 말 사실 이 연재는 목적이 일제시대 사셨던 분 학력 검증이 목적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 이 작업을 온라인에 올라있는 정보를 토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오류가 나올 가능성이 몇 가지 있다. 1. 첫째는 고인의 프로필을 올리는 측에서 일제시대 구제교육 시스템을 잘 모르고 올리는 경우. 이런 대표적인 예가 전술한 바와 같이 고보의 문제이다. 많은 기록에서 고보를 고등학교로 착각하는데 당시 살던 분들은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제시대 고보가 대전 말기에 중학교가 되었다가 해방이후 고등학교로 승격되는데 이렇게 이름이 자꾸 바뀐 것도 혼란의 이유가 된다. 이를 정확히 알고 기록을 유지하면 별문제 없을 텐데 온라인상의 기록 상당수가 이 부분에 둔감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2. 둘째는 온라인 정보 자체..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4] 양주동 선생 일제시대 프로필을 보면, 그 시대 구제교육제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정리해 놓은 것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서, 앞에 이병철 선생의 경우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조선의 고보를 졸업한 경우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으로는 바로 진학이 안 된다. 중졸 학력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그 다음 프로필에 대학이라고 써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 전문부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 전문부를 나오면 고등학교 학력이 되므로 그 다음에는 물론 대학으로 진학이 가능했다. 이 경우 일본의 대학 전문부였다면 대학본과 진학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선의 고보를 나온 후 바로 대학이 나와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고보를 우리가 고등학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앞에서 여러 번 썼지만 고보와 대학 사이에는 고등학교가 .. 2023. 5. 30.
일제시대의 지식인: [3] 이병철 (ft: 데츠카 오사무) 삼성 창업자 이병철(1910~1987)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한글 위키에 의하면 선생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한학 수학을 인정받아 진주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20년 11살에 지수공립보통학교 4학년 당시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경성의 수송공립보통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심한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경성 지역 학생들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곧 학교 생활에 적응, 중동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학습진도가 올라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에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이병철은 공부에 열중하고 스스로 충실하게 생활했으나, 1학년 때 건강 악화로 쉽게 지치고 조금만 책을 읽어도.. 2023. 5. 30.
[Discover Korea] Gift from sea to pine forest As the sea fog enters the east coast of Gangwon-do, a pine field in Songjeong-dong, Gangneung-si, creates a dreamy scene. Photos by Yoo Hyung-jae [Yoo Hyung-jae, who took these pictures, is a photo reporter at Yonhap News Agency who specializes in the ecological field.] 2023. 5. 30.
[Discover Korea] Cock pheasant's runaway A cock pheasant strolls in a field in Gangneung, 163 kilometers east of Seoul, on May 30, 2023. Photos by Yoo Hyung-jae [Yoo Hyung-jae, who took these pictures, is a photo reporter at Yonhap News Agency who specializes in the ecological field.] 2023. 5. 30.
성균관대박물관이 풀어헤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근묵槿墨 위창 오세창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말년 제자이기도 한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아들이다. 본관은 해주로, 5대에 걸쳐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특성상 서울 중부 시동時洞(지금의 청계천 2가) 집에는 당대 명성이 있던 학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오세창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가학을 전수받고, 최고의 인사들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7세가 되던 1880년, 사역원 시험에 합격하여 대를 이어 역관이 되었고, 이후 188년 박문국 주사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정3품에 올라 우정국 통신국장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8년(35세) 개화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6년(43세) 손병희 등과 귀국하여 만세보.. 2023. 5. 30.
상주 복룡동 유적의 미스터리 납석 유물 명문 납석제품 銘文蠟石製品 Agalmatolite with Inscription 상주 복룡동 256번지 유적 B6G 수혈 1호 통일신라시대 Unifed Silla period 통일신라시대 / 상주 복룡동 256번지 유적 B-6G 수혈 1호 출토 / (재)영남문화재연구원 현재 상주박물관이 소장 전시 중인 이 유물은 무엇보다 용도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덧붙여 그에는 못 같은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긁어쓴 인명이 다수 확인된다는 점에서 일찍이 주시하던 바라 문제는 기능과 인명이 서로에 대해 존재를 규정하는가이거니와 이 문제는 저 글자들이 정확히 어찌 판정되고 해석되느냐로 판가름날 수도 있다. 문제는 글자 하는 넘들은 글자만, 유물 만지는 넘은 유물만 관심이 쏠린다는 점이다. 내가 이 유물에 한참 혼을 뺐다가 일단은.. 2023. 5. 30.
광화문 앞 광장 월대 자리를 파제꼈더니... 4대문 안 발굴 양상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어 무엇보다 조선왕조가 건국하고 직후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문화층이 확인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니 이를 통해서 보면 경복궁을 포함한 주요 왕궁시설과 관련 도시시설 기반은 조선왕조 개창 이래 형성된 왕경 신도시라는 사실이 확실하다. 물론 그 이전, 예컨대 고려시대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나, 도시시설이라 할 만한 흔적은 여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해도 청자 쪼가리 몇 개를 건지는데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현재까지 고고학이 드러낸 양상은 조선도읍 한양은 철저한 신도시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 이 사대문 안은 홍수와 범람 피해가 극심해서 비만 왔다 하면 해발 고도 낮은 곳은 걸핏하면 물이 들이쳐 그 퇴적 양상이 조선건국을 기준으로 하면 그 역.. 2023. 5. 30.
일제시대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기대하며 필자가 이제 망 60이 연배가 되어 느끼는 것은 이것이다. 세상 사람들 다 비슷하고 나라나 민족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러니까 못 살지라는 말보다 못 사니까 이렇게 살지라는 말이 진리더라는 말이다. 나쁜 놈 좋은 놈은 어느 나라건 골고루 비슷하더라는 말이다. 이건 한국에도 적용되고, 일본에도, 인도에도, 미국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필자도 일본에 좋은 친구가 있다. 싸가지 없는 일본인도 봤다. 그렇다고 쳐도 그 어느쪽을 일본인이라는 사람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일제시대를 바라볼 때 일본인은 나쁜 사람들이라던가, 일제시대는 이렇게 포악했다던가, 이런 쪽으로 촛점을 맞춰서는 백년이 지나도 우리는 일제시대가 왜 문제였는지, 왜 해방되는 순간 조선인들은 기뻐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게 될 것이다. 일본은 식민.. 2023. 5. 30.
Paldang Lake where my memories have been laid down There was a time when many things had to be submerged there. There must have been a list of submersion, but ten years later, I was reflecting on it again The submerged things crept up and built their nests and laid their youngs. What was it? Should I call it a pain? It was a question of why I live. Should I say it or not? 2023. 5. 30.
고고학의 축복 2100년 뒤엔 고고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때 저땅을 파는 자들은 뭐라 할까? 21세기 서울은 미국 식민지였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러면서 저 기와집은 재지세력이라 하겠지? 저 콘크리트는 미국 주둔군 사령부라 하고? 작금 고고학이 구축한 역사상을 당대를 살던 사람들이 환생한다면 뭐라 할까? 나는 몹시도 이 점이 궁금하다만 이 하나는 분명하다. 귀신 씻나락 까묵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고고학이 천만다행인 점은 환생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사흘만에 잠깐 깨났다가 기자들 안보여서 다시 가신 이후 환생한 사람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고고학의 축복이다. 2023. 5. 30.
두부공장, 살아남기 위한 불교의 선택 한 사람이 돌리기엔 좀 거북하게 덩치가 큰 맷돌이다. 본래 자리는 아닐 것이며 또 기계 가공흔적이 없으니 근대 이전이리라. 혹 모를 일이다. 남한산성 성벽 쌓기 노가다 동원된 스님들이랑 그 인부들 먹이겠다고 두부를 만든 그 맷돌인지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어떤 글에서도 노가다꾼 위해 콩 갈았다는 기록은 본 적이 없다. 절간에서 두부를 만들어 대령했다는 기록은 적지 않게 남았지만 거의가 개인 집안 공장으로서의 그것이다. 조선왕조가 특정한 잠깐 시기를 빼고선 불교를 시종 억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직면해 생존위기에 처한 절간도 응전하게 되는데 첫째 고시원 제공 둘째 등산하는 유력자들 산길 업어주기 셋째 제지출판공장 겸업 넷째 두부 만들기다. 두부공장으로서의 사찰은 추후 별도 자리를 마련한다... 2023. 5. 30.
단재의 글에 진짜 이 내용이 있는지 조선민족혁명당의 기관지 이란 잡지가 있는데, 아마 여기서 단재 신채호의 (?)를 연재한 모양이다. 그 중 1945년 3월 1일자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는데... ▪ 朝鮮史(6) 丹齋 申采浩 遺稿 ... 그러나 僧軍이 무엇이냐? 하면 徐兢의 高麗圖經에 말하대 ‘在家和尙은 袈裟도 입지 않으며 戒律도 行치 않으며 皂帛으로 腰를 束하고 徒跣하야 걸으며 妻를 娶하며 子를 饕하며 器用의 負載와 道路의 揥除와 溝洫의 開治와 城室의 修築 等 公事에 服役하며 邊陲에 賊警이 있으면 스사로 團結하야 赴戰하는대 中間에 契丹도 此棐에 敗하니 其實은 刑餘의 役人인대 夷人이 그 顔髮을 髠削한 故로 和尙이라 名함이라’ 하니 이에서 僧軍의 面目을 대강 알 수 있으나 그러나 그 來歷이 어데서 始하였느냐?의 疑問이 없지 않다. 이에서 通典.. 2023. 5. 30.
팔기 위해 책을 찍은 에도시대 출판물 1. 에도시대 일본 고서들을 보면, 정말 이것은 팔기 위해 만든 책이구나 하는 점이 느껴진다. 압권은 책 표지 안쪽에 붙은 광고. 무예서나 온갖 잡학서들은 물론이고, 사서오경이나 탁본 법첩, 소설도 취급한다. 2. 개중에는 남효온의 이나 이황의 처럼 조선 사람의 작품도 끼어 있다. 이쯤 되니 그 책들이 얼마나 팔렸을지 궁금.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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