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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충(志忠)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성왕 : 원년(523) 가을 8월에 고구려 군사가 패수(浿水)에 이르렀다. 왕이 좌장(左將) 지충(志忠)에게 명해 보병과 기병[步騎] 1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싸우게 해서 이를 물리쳤다.
사오(沙烏) 무령왕 23년, 한강 북쪽에 백제가 쌍현성을 쌓을 적에 그 공사를 감독한 백제 관료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23년(523) 봄 2월에 왕이 한성(漢城)으로 행차해 좌평 인우(因友)와 달솔 사오(沙烏) 등에게 명해 한강 북쪽[漢北] 주·군(州郡) 백성 중 나이 15세 이상 된 자를 뽑아 쌍현성(雙峴城)을 쌓게 했다.
인우(因友) 무령왕 23년, 한강 북쪽에 백제가 쌍현성을 쌓을 적에 그 공사를 감독한 백제 관료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23년(523) 봄 2월에 왕이 한성(漢城)으로 행차해 좌평 인우(因友)와 달솔 사오(沙烏) 등에게 명해 한강 북쪽[漢北] 주·군(州郡) 백성 중 나이 15세 이상 된 자를 뽑아 쌍현성(雙峴城)을 쌓게 했다.
여륭(餘隆) ☞부여륭(扶餘隆)
부여륭(扶餘隆) 백제 무령왕을 성과 이름을 다 일컬어 이리 말하기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21년(521) 겨울 11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했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에게 격파당하여 쇠약해진지가 여러 해였다. 이때에 이르러 표를 올려 “여러 차례 고구려를 깨뜨려 비로소 우호를 통하였으며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일컬었다. 12월에 고조(高祖)가 조서를 내려 왕을 책봉하며 말했다. “행도독백제제군사(行都督百濟諸軍事)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 백제왕(百濟王) 여륭(餘隆)은 해외에서 번방(藩方)을 지키고 멀리서 공물[貢職]을 보내 그 정성이 이르니 짐은 가상히 여기는도다. 마땅히 옛 법을 좇아 이 영예로운 책명(冊命)을 주니 사지절(使持節)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 영동대장군(寧東大..
부여융(扶餘隆) ☞부여륭(扶餘隆)
고로(高老) 무령왕 7년(507), 백제 한성을 공격한 고구려 장수. 高가 고구려 왕족 성씨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7년(507) 겨울 10월에 고구려 장수 고로(高老)가 말갈과 함께 한성(漢城)을 공격하고자 해서 횡악(橫岳) 아래로 진군해 주둔했다. 왕이 군사를 보내 싸워 이를 물리쳤다.
해명(解明)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원년(501) 봄 정월에 좌평 백가(苩加)가 가림성(加林城)을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牛頭城)에 이르러 한솔(扞率) 해명(解明)에게 명해 토벌케 했다. 백가가 나와 항복하자 왕은 그의 목을 베어 백강(白江)에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