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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연구복원 핵심은 토목..닥치고 땅 사라 가야사 연구 복원이 관련 전공 교수 몇 명 불러다 놓고 연구비 농가묵기하는 걸로 결판나서는 안 된다. 간단하다 이 사업은. 땅 사야 한다. 가야 유적이라 규정됐으면서도 지금 곳곳에 널부려져 도굴되고 농토로 갈이되는 곳들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야사 전공입네 하면서 논문 몇편 썼다 해서 그런 전력만으로 그들이 그 방향까지 정할 수는 없다. 이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며 고도의 행정 행위다. 제 아무리 연구 많이 해본들 그것이 작금 가야문화사 복원에 정작으로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가야사 연구 논문 백편 쓴다 해서 그것이 가야를 지켜주는 못한다. 이 따위 가야사 연구 복원하려면 집어쳐라. 가야사 연구 복원이 토목 사업으로 변질할 우려가 크다? 말한다. 지금 가야에 필.. 2018. 1. 20.
국감장을 방불하는 문화재위원회 자료 확보할 일이 있어 어제(14일)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더니, 문화재위 사적분과 회의가 마침 그곳에서 열리는 중이라, 이날 문화재위가 다루는 현안과 관련한 전국 지자체와 기관에서 속속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 회의장 앞 복도는 흡사 국회 국정감사를 방불한다. 모든 문화재위가 이런 풍광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혹은 연신 잘 부탁한다며 굽신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문화재위원이며, 문화재청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일도 자주하다 보면, 우쭐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풍광은 국회 국정감사장과 그리고 정부 예산과 인력을 쥔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말고는 거의 없다. 내가 요즘 들어 계속 말하듯이 문화재청은 이 점 하나로만 봐도 권력기관 맞다. 기다리는 사람들 초상권을 생각해서.. 2018. 1. 20.
한 명이 깽판치는 문화재위원회 문화재위는 현행 7인가 8개 분과로 구성되며 사안에 따라 합동분과가 있지만 대다수 안건은 분과별로 진행한다. 분과별로 전문위원 위원이 있지만 전문위원은 꿔다논 보릿자루다. 임명장 받을 때 한번 교육받는게 전부다. 분과별 위원 숫자는 내 기억에 세계유산분과가 7명으로 가장 적고 나머진 열 명 안팎이다. 위원 구성은 문화재청 꼴리는대로라, 성별 지역별 전공별 안배를 한다지만 내실을 보면 정치권 등에서의 낙하산이 많고, 분과 담당과 실무담당 직원이 의외로 지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 앉히는 일도 절대 과반이다. 그래서 "어? 저 사람이 왜 문화재위원이냐...문화재의 문자도 모르는 인간이 무슨 문화재위원이냐?" 해서 그 추천 내력을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빈발한다. 문화재 경력 전무에 가까운 놈도 어느.. 2018. 1. 20.
정비복원을 내세운 발굴, 하지만 실질은? "ㅇㅇㅇ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남문지~북문지 성벽 구간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성격 규명 등 정비·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함" 학술발굴은 거의 예외없이 이런 식으로 이유를 달아 발굴신청을 한다. 한데 그 상당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봉분이 있는 고분 발굴을 예로 들어보자. 발굴을 하건 말건, 어차피 정비 복원은 똑같다. 봉분 흙으로 덮어 봉긋하게 만들고 잔디 심는다. 유물 모조리 꺼내어 빈깡통 만든 다음 엎던 혹은 무너진 봉분 세우는 일이 발굴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성벽 복원 정비? 같잖아서 이건 말이 더 안나온다. 뭐? 정비복원을 위해 발굴해? 그래서 그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서 성벽 다시 쌓니? 그거랑 관계없이 아무렇게나 쌓자나? 뭐 그렇게 복원한 성벽이 삼국시대 성벽이라고 하면.. 2018. 1. 20.
말이산 고분군은 왜 발굴했는가? 심심해서 문화재청 홈피에서 문화재위 최근 회의록을 열람했다. 사적 분과를 골랐더니 최신판이 2017년도 문화재위원회 제5차 회의록이다. 이번 문화재위가 새로 선임되고 난 뒤의 첫 회의였다. 회의는 2017. 5. 24 (수요일), 14:00~19:50 원주 한솔오크밸리 리조트 퍼시몬홀에서 열렸다 하며, 출석위원은 이재범, 박광춘, 박소현, 유재춘, 이경찬, 이승용, 이영식, 이재운, 이종욱, 임승빈, 최성락, 한필원, 홍준형의 13명이라 하니, 거의 전원 참석인 듯하다. 역시 첨이라 출석률 좋구만. 그에서 다룬 네 번째 안건이 안건번호 사적 2017-05-004이니, 제목은 '함안 말이산 고분군 내 노출전시관 건립'이다. 우선 제목이 솔깃했다. 그러면서 회의록을 죽 내리면서 그 결정 사안을 보기도 전에 .. 2018. 1. 20.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은 공개되어야 한다 이 중요한 국가위원회가 설립 반세기가 넘도록 회의록이 없다. 요새는 녹취를 하지만, 공개되지는 않는다. 언제까지 익명성 뒤에 숨어 있으려는가? 실명을 밝히면 소신 있는 발언을 못한다는 이유로 회의록 공개를 막는다. 어떤 시대인데 이따위 구닥다리 논리를 내세우는가? 위원별 발언록 쏵 공개해야 한다. 2018. 1. 20.
문화재와 국민참여재판 Living with the Community. 문화재가 살 길이다. 공동체, 시민과 함께하지 않는 문화재는 설 땅이 없다. 하지만 이 말처럼 오해되는 말도 없다. 공동체와 함께한다 해서, 발굴현장 주민공개회가 그 일환인 줄로 착각하는 이가 천지다. 문화재가 시민 혹은 공동체와 함께하는 길은 고고학도들이 발굴해 놓은 현장을 와서 보고 즐기라는 것이 아니다. 그 현장 자체를 함께하는 것이다. 이 함께하는 행위에는 그 문화재현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하는 결정권에 시민과 공동체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쉽게 예를 든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문화재는 국민참여재판과 같다. 국민이 주체적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문화재는 국민참여재판과 같아야 한다. 우리의 문화재는 어떠한가? 문화재청, 문화.. 2018. 1. 20.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유리건판 사진 이영훈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직후 나는 카톡을 보냈다. 두 가지를 요청했다. 개중 하나가 유리건판 사진 고화질 제공이었다. 국박에는 식민지시대에 소위 고적조사사업을 벌이면서 생산한 적지 않은 유리건판 사진이 있다. 이런 유리건판 사진들 고화질로 무료 제공하면 그걸로도 적지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한 어떤 사업이 진행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내가 다시금 요청하기에는 사정이 마뜩치 않았고, 더구나 퇴임을 대비해 대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영훈 관장도 느닷없이 관장이 되었다가, 당초 예정 혹은 예상보다는 반년 이상 퇴임이 가까워졌기에 설혹 내가 요청한 사업에 관심이 있었더라도 그럴 만한 여유와 시간이 없었으리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박 관장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가 누.. 2018. 1. 20.
문화재행정 초토화한 설악산 케이블카 위태위태하게만 보이던 문화재 행정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태로 초토화에 직면했다. 중앙행심위는 지난 15일 위원회를 열어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이 내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 문화재현상변경허가 불허가 처분이 부당하다며 양양군이 제기한 행정심판에 대해 인용 처분을 내렸다. 행심위는 문화재청 행청 처분이 '문화재보호법의 입법취지상 보존·관리 외에도 활용까지 고려하도록 되어있는 바, 문화재청이 이 사건 처분을 함에 있어 보존과 관리 측면에 치중한 점이 있고, 문화향유권 등의 활용적 측면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으며, 사업으로 인한 환경훼손이 크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거부한 이 사건 처분은 재량을 잘못행사하여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당연히 문화재청은 당혹 일.. 2018. 1. 20.
국가의 간섭과 동북아역사지도 이를 두고, 특히 그 사업을 무산시킨 주범으로 지목된 도종환씨가 문체부 장관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이를 주도한 역사학계에서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사업에 관여했다가 그 된서리를 맞은 몇 분이 내 주변에 포진한다. 이를 빌미로 국가의 역사 간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은 것도 안다. 이를 추진한 역사학계는 정부나 국회는 지원만 하고, 간섭을 하지 말았으면 했겠지만, 이 사업은 원천에서 문제를 안았으니, 그것은 바로 그 재원이 국민세금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부 예산이 집행되는 모든 곳에는 그것을 집행 감독하는 정부기관과 국회의 간섭이 필연적이다.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도종환이 대표하는 국회가 간섭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역사학.. 2018. 1. 20.
느닷없는 가야사 보도에 의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근자 가야사 복원을 들고 나왔다. 이에 의하면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그는 “국정자문위원회가 지방정책 공약을 정리하고 있다”면서 “그 속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꼭 포함시켜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보도로 새어나온 그의 지시 사항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 고대사가 삼국사 중심으로 연구되다 보니 삼국사 이전의 고대사 연구가 안 된 측면이 있고 가야사는 신라사에 겹쳐서 제대로 연구가 안 됐다”고 했는가 하면 “가야사가 경남 중심으로 경북까지 미친 역사로 생각하는데 사실 더 넓다”거나 “섬진강 주변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가 맞물리는데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고 한다. 왜 가야사인가? 다시 보도를 보면 문 대.. 2018. 1. 20.
김태식의 考古野談 한겨울 한밤중에 맨손으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 김태식의 考古野談 한겨울 한밤중에 맨손으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 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6월 호 사비 도읍기 백제 왕가의 공동묘지로 지목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쪽 지점에 ‘능산리 고분군 전시관’이 있다. 모양이 조금은 독특해 전체로 보면 둔덕을 파고 들어간 땅굴 형식이다. 아마도 사비 시대 백제 무덤 전형이 주로 산기슭을 파고 들어가 그 안에다 돌을 쌓아 묘실(墓室)을 마련한 데서 착상한 디자인일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엔 능산리 고분군 중 유일한 벽화 고분인 소위 동하총(東下塚)에서 발견된 벽화 소재 중 연꽃과 구름무늬를 잔뜩 그려놓았다. 그 내부에는 부여 일대 지형도와 능산리 일대 지형도를 안치하고, 그 뒤 중앙에는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 .. 2018. 1. 20.
김태식의 考古野談 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 김태식의 考古野談 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5월 호 “황룡사도 우리가 도굴했다.” 1966년 석가탑 도굴 사건은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범행 대상이 국내 어느 문화재보다 상징성이 큰 데다, 그 수법이 대담했으며, 더구나 도굴단 뒤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친형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미친 여파가 자못 컸다. 한데 경찰이 막상 도굴단을 붙잡아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마수가 문화재 현장 곳곳에 뻗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관련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들은 1964년 이후 경주와 주변 지역 석탑과 사찰, 그리고 고분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범행 대상에 뜻밖에도 경주 황룡사지 구층목탑 사리장엄이.. 2018. 1. 20.
Seoak-dong Tumuli Seoak-dong Tumuli, Gyeongju, Korea慶州西岳洞古墳群 Photo by 오세윤 2018. 1. 20.
김태식의 考古野談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김태식의 考古野談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4월 호 이번 호부터 문화재 발굴 막전막후 비화를 소개하는 ‘김태식의 고고야담(考古野談)’을 연재합니다. 필자인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은 언론사에서 17년 이상 문화재 분야를 담당한 베테랑 언론인 출신입니다. 한국 문화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탄생했으며, 어떤 가치를 부여받아 오늘에 이르렀는지, 도굴과 발굴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갈라지는지, 익숙한 문화재에 얽힌 사건과 인물 비화 등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 보여줄 것입니다. “불국사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인 석가탑(일명 무영탑)이 지난 8월 29일에 있었던 지진으로 심한 균열이 생기고.. 2018. 1. 20.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김태식 |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3월 호 2001년 4월 28일 오후 KBS 역사스페셜 ‘최초 발굴, 신라 대왕암’ 편을 시청하다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대왕암을 발굴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방송사가 말이다. 물론 발굴 자격이 없는 방송사가, 그것도 신라 문무왕 수중릉이라 해서 1967년 5월 15일에 소위 ‘발견’되고 같은 해 7월 24일 국가사적 제158호로 이름을 올린 대왕암을 직접 발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방송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분명 발굴 시행처는 KBS였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사가 나서서 직접 발굴하는 일은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금시초문이.. 2018. 1. 20.
부석사 관음보살상 설사 약탈당했더라도 또다른 ‘약탈’로 돌려받는 게 정당한가 부석사 관음보살상 설사 약탈당했더라도 또다른 ‘약탈’로 돌려받는 게 정당한가 [중앙선데이] 입력 2017.02.12 00:00 수정 2017.02.12 04:35 | 518호 26면 입춘이던 지난 4일, 충남 서산 비봉산 기슭부석사(浮石寺)는 유난히 부산했다. 입춘 삼재풀이 행사가 겹쳐 액운을 쫓으려 태운 종이 부적 재가 눈처럼 흩날린다. 서해와 산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공교롭게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한 경북 영주 부석사와 이름이 같기 때문인지 창건주를 의상으로 삼는다. 또한 경내 곳곳에는 의상과 선묘라는 여인에 얽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선전하는 안내판이 있다. 고색 완연한 건축물로는 지금 종무소로 쓰는 건물과 그 전면 안양루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워낙 전망이 좋다 2013년 절도로 돌아온.. 2018. 1. 20.
설립 40주년 맞은 온양민속박물관 주말인 오늘 현충사에 볼 일이 있어 들른 김에 온양민속박물관으로 행차했다. 여러번 들린 곳이나 기왕 바람이나 쐬자 해서 상경하는 길에 찾아 혹이나 해서 문칸에서 신탁근 선생 계시냐 했더니 출근하셨단다. 선생은 이 박물관 산증인이다. 박물관 창업주인 계몽사 선대 회장 뜻을 받들어 사십년 전 개관을 준비하고, 지금은 비록 관장직을 놓고는 고문이란 직함으로 물러 앉았으나 여전히 왕성히 활동 중이다. 오천원짜리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 석물들을 어루만지며 박물관으로 가노라니 그 정문 소나무 가지치기가 한창이라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선생이 반가이 맞는다. 뭐하시냐 했더니 뜻 있는 지역 조경업자가 일주일째 무료 조경공사를 해주고 있단다. 설립자 막내따님인 관장은 출근안하셨단다. 듣자니 박물관이 올해 시월로 설립 사십주..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3-] 도미 부인의 기지 정절 탐하는 개로왕에게 월경 핑계 대고 도망쳐 [중앙선데이] 입력 2017.06.04 01:44 수정 2017.06.04 16:23 | 534호 23면 서기 475년. 이 해는 백제 제21대 개로왕(蓋然性鹵王) 재위 21년째요, 고구려는 100세 장수를 누린 장수왕 재위 63년째가 되는 해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본기를 보면 “(가을 9월에) 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백제를 들이쳐 그 왕이 도읍한 한성(漢城)을 함몰하고 백제왕 부여경(扶餘慶)을 죽이고 남녀 8000명을 포로로 삼아 돌아왔다”고 돼 있다. 백제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까닭에 왕족은 부여를 성씨로 삼았다. 부여경이란 개로왕의 이름이다. 500년 사직이 거의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백제는 신라의 도움을 얻어 허겁지겁 남쪽..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2-] 왕위 계승전쟁과 협치 정신 원성왕, 경쟁자가 폭우에 발 묶인 틈타 대권 차지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7.05.07 02:44 | 530호 23면 대권(大權)은 우연의 소산일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일까? 혹은 하늘의 의지일까? 이런 물음에 전근대 동아시아 이데올로그들은 언제나 천명(天命)을 거론했다. 실제로 천명이 작동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론 그러했다. 하지만 추잡한 권력투쟁을 천명이란 이름을 빌려 포장한 데 지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선덕왕 후계 언급 없이 타계하자 김경신·김주원 치열한 왕권 경쟁 김주원, 큰 비 내려 건너 오지 못해 하늘의 뜻이라며 김경신 왕위 계승 김주원을 명주군의 왕에 책봉 신라는 일통삼한(一統三韓) 전쟁과 그에 따른 세계 제국 당(唐)과의 일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절대 번영..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1-] 이세민-김춘추 외교 밀약 문무왕, 초강대국 唐에 당당히 맞서 한민족 토대 마련[중앙선데이] 입력 2017.04.02 02:39 수정 2017.04.02 03:47 | 525호 23면 신라가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위해 국운을 건 전쟁에 나섰을 때, 당(唐)은 유일한 세계제국이었다. 당시 당은 냉전시대 동서 양쪽을 양분한 맹주들인 미국과 구소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비축한 세계제국이었다. 혼자 힘으론 숙적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하기 버거웠던 신라는 이 세계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일통삼한 전쟁으로 나아가기로 하고, 이를 위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당과 연합한 신라는 660년 백제를 정복하고, 668년에는 마침내 고구려마저 쓰러뜨림으로써 통일을 달성한다.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신라 차지’밀약 깨고 야욕 드러낸 당에 맞서..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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