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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3): 발굴보고서는 빅데이터 필자가 기회가 닿으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발굴보고서를 빅데이터 삼아 최신 통계기법을 총동원해 한 번 돌려보는 것이었다. 결국 생각에만 그치고 고고학과 인연이 다하게 되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 떠나는 마당에 글을 남겨 둔다. 우리나라 발굴보고서-.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아마 최근 10년치만 모아놔도 전세계 고고학계의 전무후무한 빅데이터-. 현대 인문학의 팔만대장경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발굴 보고서는 조선시대로 친다면 史草다. 이 사초를 지금처럼 둬서는 안되고, 디지털화해서 데이터셋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이 보고서의 디지털화, DB화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전 세계가 경악할 만한 업적이 여기서 줄줄이 나올 것이다. 한국 고고학이 일약 세계 고고학계의 최선두로 나설 수 있.. 2023. 10. 8.
연합뉴스 기자보다 더한 감투 없었다 정권교체기마다, 또 인사철마다, 무슨 공직 하나 얻겠다고 이곳저곳 줄대고 나서서 기웃대는 놈들 역겹기 짝이 없다. 특히 그럴 듯한 대학에 교수라는 타이틀 쓰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 나은 감투 뭐가 더 있다고 무슨 자리 하나 더 보태겠다 해서 나대는 놈들 이런 행태가 나한테는 더 역겹기 짝이 없다. 그런 놈 중에 막상 그렇게 원하던 기관장 되어 잘하는 놈 단 한 놈도 못봤다. 왜인가? 오로지 그 감투가 목적인 까닭이며, 그런 감투는 오로지 제 사리사욕 채우거나 그걸로 제 똥폼 내는 데 쓸 뿐인 까닭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자리라고 기껏 길어봐야 2년짜리 임시 계약직에 불과한 놈들이 것도 알량한 권력이라고 휘두르는 꼴 역겹기 착이 없다. 떠나고 나면 다들 비웃지만 그 자리 있을 동안에도 다들 비웃는다. 그래봐.. 2023. 10. 7.
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2): 해외 연구는 개인별 베이스로 이건 고고학계에 반드시 드리고 싶은 조언인데, 요즘은 해외에 무더기로 몰려나가서 현지에 캠프치고 하는 그런 연구. 없다. 이런건 100년전 방식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식민지로 전락해 있을 무렵, 잘 살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학자들이 낙타에 장비싣고 현지인들을 포터삼아 데리고 가서 돈의 힘으로 발굴하고 거기서 나온 유물 보고하는-. 이런건 백년전에나 이렇게 한것이고, 요즘은 필자가 아는 한 이렇게 하는 곳은 없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 세계 4대 문명권에 현지인 학자가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학자들이 들어가 자리잡고 유적지 하나를 통으로 파제끼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 양반들 이름은 밝히기는 그렇지만 지금 전부 파리 날리고 있다. 왜? 현지 학자들이 그걸 이제 용납하지를 않는다. 이런게 아직 된다? .. 2023. 10. 7.
나는 무엇을 하려하는가? 연합뉴스를 그만둔다 동네방네 광고하고, 또 왜 그리해야 하는지까지 공개한 마당에 혹자는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럴 의무감 비슷한 게 없지는 않다 생각하거니와, 그것은 어쩌면 연합뉴스 기자로서의 김태식에는 연합뉴스 자체가 그런 특징도 있지만, 공적 기능 수행자로서의 역할도 없지는 않았다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연합뉴스 이후 김태식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1. 글쓰기 이건 계속한다. 이 블로그도 애초 김태식 개인으로 출발했지만, 또 필자마다 사정이 다 달라 일률적이지 아니해서 열성적인 분도 계시고, 또 이름만 올려놓은 사람, 과거에는 열성적이었다가 스스로 사라져간 사람, 또 얼굴을 내밀 때는 화려했지만, 중단한 사람, 또 비교적 열성인 사람 골고루 섞여있.. 2023. 10. 7.
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1) 필자가 이 블로그에 몇 번 썼지만 목하 지금까지의 연구를 정리 중이다. 그냥 정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후속 세대에 넘겨줄 것은 확실히 넘겨주고, 그동안 논문으로만 출판한 작업들을 단행본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미라와 인도 연구 관련한 작업들을 각각의 하나씩 영문 단행본으로 펴 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고 현재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의 결과로 펴내는 영문-일문 단행본이 계속 준비되어 있다. 내후년까지는 순차적으로 모두 출간될 것이다. 앞에서도 쓴 것 같지만, 필자는 현장 조사는 더 이상은 안할 것이다. 필드웍은 이제 젊은 이들의 몫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필드웍을 나가면 직접 무덤 속으로 뛰어 들어 내 손으로 인골을 수습했다. 더 이상의 현장 작업은 없다. 할 만큼 했으므로 미련은.. 2023. 10. 7.
갑갑하기 짝이 없는 밀양, 하지만 장대하기 짝이 없는 영남루 밀양은 좀 더 다녀봐야 좀 더 확실해지겠지만 그 시내 중심은 강이 관통하나 갑갑하기 짝이 없어 왜 이곳이 대구를 제끼고 대한민국 제일의 불가마로 등극하는지 알 만하다. 북쪽으로는 영남알프스에 막히고 남쪽으로도 뚫린 구석이라고는 없어 딱 멜팅 팟 melting pot 그것이라 한여름 언제나 최고 기온은 밀양 차지라 그런 보도에 밀양 현지는 경기를 일으키니 손님 떨어진다 해서다. 밀양을 이전엔 밀성密城이라 해서 연원이 아주 깊은 고을인데 어쩌다 나랑은 인연이 없어 이참에 한 번 밟아봤다. 시내 중심 강변 높은 지점을 정좌한 영남루嶺南樓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별칭이 허언이 아님을 웅변한다. 밀양은 공부 좀 해봐야겠다. 아무래도 이 쪽 키워드는 영남알프스다. 이걸 고려하지 않는 밀양은 말짱도루묵이다. ***.. 2023. 10. 7.
표충사表忠寺의 아이러니, 중이 충성을 드러내면 그게 중인가? 중이, 절이 충忠을 표방하면 첫째 절이 아니며 둘째 중이 아니다. 출가는 충과 효를 뛰어넘는 일이다. 한국불교 역설은 불교 스스로가 불교를 버렸다는 데 있다. 충과 효는 세속을 옥죄는 양대 족쇄라 출가는 그것을 끊어버림을 말한다. 더 문제는 그것을 포장한 불교사. 한국불교를 호국불교로 만들고 그리하여 중들이 죽창 들고 일어나 임금과 왕실과 국가를 위해 봉헌한 일을 대서특필하며 그것으로써 세속을 향해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나아가 보상을 요구하니 이것이 어찌 불교리오? 중은 중다워야 하고 절은 절다워야 한다. 임금을 향한 충을 드러내고 표상한다는 뜻을 품은 표충사는 가장 반불교적 이름이다. 임금이 아닌 대중을 갖다놓아야 한다. 사명당이 구제한 이는 임금이 아닌 고통받는 사부대중이어야 한다. 2023. 10. 7.
역사학만의 평행세계는 따로 있는가 한국 역사학의 근현대사-. 이것은 실제 벌어진 현대사의 평행세계인가. 한국역사학만의 한국근현대사 따로 있는 것인가. 한국 역사학이 서술한 한국 근현대사는 실제 벌어진 사건들인가 아니면 한국역사학의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평행세계의 이야기인가. 한국 역사학의 근현대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역사적 당위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 벌어진 사건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 사건을 역사로 재교육하면서 그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우기는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배짱인가. 2023. 10. 7.
문화재 기자들은 누구랑 무엇으로 싸우는가? 외부? 생각보다 기자가 외부랑 부닥치는 일은 별것 아니다. 이건 비단 기자사회에만 국한하지는 않지만 그 투쟁 절대다수가 내부와의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재 기자의 그것은 독특한 대목이 있다. 앞서 말한 문화재기자 원년 멤버들의 경우 전문성이 다 있다. 조선 신형준 동아 이광표 문화 최영창은 아예 대학 전공이 사학이라 개중 형준 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광표 영창은 당시 대학원 재학 중이거나 박사수료 상태였고 여타 기자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저런 전문성에다 현장을 가미했다. 이런 기자들을 부장이랍시며 차장이랍시며 국장이랍시며 아는 체 하며 이거 쓰라 저거 쓰라 하면 짜증이 안 나겠는가? 저긴 저런 기사 났는데 넌 머하냐? 말이 안 되는 기삽니다. 그럼 저쪽은 바보냐? 얘기 안 되는 건 안 .. 2023. 10. 7.
독립운동과는 분리해서 봐야 하는 민주주의 한국은 독립운동사에 민주주의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김에 그 독립지사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이들이 해방 후 한국에 민주주의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한국 민주주의 성장사는 민족독립운동사에 곁방살이를 해야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별개의 성장사를 가지고 있다. 이 한국민주주의가 해방이후 남한에 싹을 틔워 발전한 최종결과가 2023년현재의 한국이다. 우리는 독립지사들이 민주주의자였을 것이라고 다들 믿는다.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에 봉사해야 한다고도 믿는다. 과연 그런가? 독립지사들 중에는 좌파, 우파 계열 파시스트들도 있었고, 해방 후 민주주의자 중에는 일제 말 친일파도 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장사는 민족해방운동과는 그 성장사가 다르다. 이제 민주주의 .. 2023. 10. 7.
황당사건이 이끈 경주행, 분노의 월정교 폰카질 내가 정신이 없어 전화로 일정을 통보받고는 일정표에 적어둔 저 경주문화재야행은 이번 주말이었다. 나는 그 평가단이라 현장을 실사하고서 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패착은 경주행을 결행하면서 내가 장소만 확인했다는 데 있다. 시간은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장소는 교촌이라 했다. 서울서 차를 몰고 아침에 룰루랄라 하며 길을 나섰다. 한데 알고 보니 저랬다. 눈을 비벼야 소용없다. 이달 말이랜다. 어째 조창현 선생이 올린 신라문화축제인지가 께름칙하기는 했다. 그게 이번 주말이라 요샌 겹쳐하는가 했더랬는데 더 확인 안한 내 패착이다. 암튼 경주까지 좀 거리가 되니 한두 군데 들르는 코스를 선택하자 해서 그리 했으니 먼저 경기도자박물관을 갔다. 이곳은 출발전 점찍은 곳. 내가 명색이 이곳 운영위원인데 이곳 신양제기.. 2023. 10. 7.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 이런 글을 적어놓으면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제목 그대로 한국민주주의의 기원이다. 우리나라는 근현대사의 인식에서, 민족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등 온갖 좋은 것은 한쪽 편에 다 몰아 놓고 이와 대척점에 선 것은 또 반대쪽에 몰아 놓아 천사와 악마의 대결로 현대사를 보는 시각이 있다. 실상은 이와 다르다.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 민족주의와는 별 상관이 없다.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는 기원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왜 해방이후 민주주의는 한민당 계열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지금 40년대 친일파 혐의의 딱지가 붙어 있는 사람들은 반민족주의자에 반민주주의, 파시스트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의외로 일제시대 .. 2023. 10. 7.
원형 훼손 타령 짓밟아버리고 명물이 된 경주 월정교 이 월정교 복원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었는지 모른다. 다 날아가 버리고 교각 아래만 겨우 남은 데다 그 모습을 추론할만한 문헌도, 그림자료도 전연 없었다. 결국 중국과 일본 자료로 보완해 그걸 바탕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었으니 이 과정에서 그 괴물 같은 원형이란 망령이 어김없이 나타났으니 꼭 그렇다고만 할 수 없으나 대체로 건축 쪽에서는 하자! 흐름이었고 입만 열면 원형 타령인 고고학도들은 길길이 반대했으니 암튼 논란 끝에 하기로 확정 공포되고 기초공사에 들어갔다. 이때 고고학주의자로 국립박물관장 출신인 이건무가 문화재청장이 되면서 상황이 일변했으니 이건무는 이를 끌어엎고 없던 일로 하고자 자신이 가진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이건무는 결국 꺾이고 말았다. 이미 배가 떠난지 한참이.. 2023. 10. 6.
문화재보호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오늘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됐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의 염원과 노력덕분입니다!!! 전국학예연구회가 출범한지 4년이 조금 못되었는데, 기다림의 시간 끝에 드디어 작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지자체에 문화유산 전담인력 배치를 위한 시행령이 잘 제정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학예연구직 처우 개선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많은 참여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3. 10. 6.
해직에서 비롯한 문화부장이라는 자리 여러 번 얘기했듯이 해직 무렵 문화부 문화재 담당기자라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전국부로 발령나면서 가뜩이나 기자질에 환멸이 일면서, 그리고 복직소송을 진행하면서 다시는 내가 현장 기자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스스로 다짐했거니와 그런 내가 막상 2년 만에 복직이 되어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전문기자를 나는 허울뿐이라고 계속 말하는데 막상 그 허울을 벗고나면 진짜로 갈 데가 없다. 용처가 하나로 고정되는 까닭이다. 현장 기자는 안 한다 했지, 또 복직한 마당에 정권도 바뀌고 나를 쫓아낸 경영진도 물갈이가 된 마당에 회사로서도 나를 배려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배려가 거창한 것도 아니어서 너 어디 가고 싶으냐 해서 들어보고 웬간하면 들어주는 일을 말한다. 내가 딱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어찌했으면 좋겠냐 물어왔으니.. 2023. 10. 6.
구석기 그 효용을 묻는 광주삼리구석기유적 한국 구석기유적은 일부 동굴 유적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장이 이런 난관에 봉착하다. 구상화가 불가능하다. 눈으로는 볼 게 없고 귀로는 들을 게 없으며 손으로는 만질 게 없다. 이곳이 열라 중요한 유적이라는 강박 가득한 안내판 하나랑 족보도 없는 조형물 몇 개, 그리고 잡풀 들판이 전부다. 개중엔 전곡리며 석장리 같은 데 박물관이 있어 구상화를 꾀하지만 그런 데서도 막상 그 현장 어디에도 구석기 체취는 없다. 이곳 광주 삼리 구석기 유적 또한 그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어 이럴 거 뭐하러 보존하는가를 묻게 된다. 구석기 구상화는 한국문화재학이 봉착한 가장 큰 난관이다. 현지 입간판 설명은 아래와 같다. 광주 삼리 구석기 유적 廣州三里舊石器遺蹟 Paleolithic Site in Sam-ri, Gwangju 경.. 2023. 10. 6.
자혜병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제시대에 자혜병원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 기원 자체는 국치 이전 대한제국 말기에 계획은 세워졌다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설립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우리가 잘 아는 소록도병원도 자혜병원에 속한다. 원래 이 병원은 총독부 직속이었다가 나중에 도립으로 모두 이관된 것으로 안다. 해방 이후에는 이 자혜병원이 지방의 대학병원이 되거나아니면 의료원으로 바뀌었다. 지방 의료제도 골격을 이루었다 할 것이다. 이 자혜병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사실 식민지근대화론과 짝을 이루는 한쌍이다. 자혜병원은 조선 의료제도의 발전인가 아닌가. 이를 극도로 부정하다 보면 자혜병원은 식민지 조선인을 갈취하는 기구에 인권탄압이나 하던 곳으로 폄하되게 된다. 과연 그런가. 반대로 이를 극도로 긍정하면 한국의 보건제도의 기원은 자혜병원이.. 2023. 10. 6.
여행길이 폭로하는 조선의 이른바 선물경제 '선물경제'라는 말이 있다. 조선 후기, 17-18세기 경제가 화폐경제가 아니라 사대부들 사이의 선물 증여와 수수로 이루어진 선물경제더라, 이런 이야기인데 실제로 이 당시 조선시대 일기를 읽어보면 돈을 주고 필수품을 조달한 것보다는 집안마다 선물을 주고 받아 충족한 현상이 뚜렷이 보인다. 일종의 물물교환이라 하겠지만 선비들끼리인지 예의를 갖추어 물물교환한다. 그것이 선물경제이지 뭐 딴 것 없을 것 같다. 이 선물경제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은 조선시대 여행길이다. 부북일기 같은 당시 여행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한 기록을 보면, 경상도에서 함경도까지 부방하러 가는 군관이 여행길에서 지급한 것은 돈이 아니다. 현물이다. 그리고 여로에는 상업적으로 발달한 숙소가 없다. 때로는 그 동네 사대부의 집에서 묵기도 하.. 2023. 10. 6.
타도 조명치 기치 내건 전곡선사박물관 특별전 고기 전곡선사박물관이 타도 조명치라는 기치를 높이 빼어들고는 고기 라는 깃발을 펄럭이기 시작했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해서 특별전 주제로 를 잡고는 그 수괴 털보 관장 이한용이 프로모션에 나섰다. 그 특별전 포스터다. 전시는 10월20일 개막이라고. #전곡선사박물관 #특별전고기 2023. 10. 6.
장수 삼봉리산성은 어떤 곳? 학술대회 by 이현석 서울에 남산이 있듯이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도 남산마을이 있어요~^^ 그 남산마을 뒷산에 산성이 자리하며 이 산성에서 가야토기를 비롯해 도량의 증거인 저울 관련 유물 등이 출토되어 학계의 넘치는 관심이 있던 곳이죠 앞마당에 삼봉리 고분군이 자리하고요 ~^^ 이것을 담아 보려 학술회의를 개최합니다 . 관심있는 분들의 지나친 관심과 참여부탁드려요~^^ 2023. 10. 6.
문화재 언론계 맹주들이 다 사라지고 홀로 남은 지정생존자 내가 사회부에 있다 문화부 문화재 학술 담당 기자로 전근한 1998년 12월 당시 다른 언론사 문화재 분야 기자들을 보면 조선일보 신형준 한국일보 서사봉 경향신문 최정훈 동아일보 이광표 문화일보 최영창 이 형들이 매일 박터지는 특종 싸움을 벌일 때라 나이 여부와는 상관없이 언론계 경력으로 보면 1년 후배인 광표 형을 제외하고는 나보다 1-2년 정도 선배였으니 다 동년배로 보아 대과는 없다. 순서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최정훈 형이 가장 먼저 언론계를 떠나 한창 뜨기 시작한 포털 다음으로 가지 않았나 싶은데 그 비슷한 시기에 서사봉 형도 아예 언론계를 떠나 출판사를 차렸으니 이 두 형은 극심한 기자생활이 초래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아주 망치다시피 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하며 이어 아마도 신형준 형이 ..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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