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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찬가, 허공에 지른 헛소리 유럽이 특별히 좋아 찾겠는가? 피렌체에 내가 환장을 해서겠는가? 의무감이 더 강하다. 그렇다고 이것만 보고 죽어야 한다는 그런 일념도 아니다 그런대로 이런 덴 발이라도 디뎌봐얄 거 같고 이런 데는 눈대중만이라도 해둬얄 것 같은 강박이 작동했다 하고 싶다 이 유럽의 도시들. 관광과 연계한 문화재로 발전하면서 실은 도시는 생명을 잃어버리고 언제나 중세로 고정한 삶을 살아간다. 세계유산이 더욱 발전하면서 구심은 전부 박제화의 길을 걷는다. 주물한 이 도시들에 나는 금방 숨이 막힌다. 이 도시들을 볼수록 나는 매양 고즈넉한 우리네 산간 절간이 오버랩한다. 다녀보니 우리네 산하 같은 데가 없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한반도만이 선사하는 특혜다. 글타고 내가 우리를 새삼 발견하자고 해외를 싸돌지는 않는다. 뭐 그렇다.. 2023. 7. 25.
철삿줄 칭칭 동여맨 피렌체 좃또타워, 캐논을 엿먹이다 좃또 탑에서 좃댔다. 철창 찢어버리고 싶다. 이 무겁고 렌즈 큰 카메란 무용지물. 이건희가 맹근 갤럭시 카메라가 최고다. 화딱지 나서 갤럭시로 동영상 촬영하는 장면 아이폰으로 찍올린다. (2017. 7. 25) ***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간 저 Giotto Tower에서 뛰어내렸는지 정상에는 저리 촘촘한 철사줄로 칭칭 가두리 양식장을 삼아놨다. 카메라 촬영할 구멍은 내줘야 할 게 아닌가? 그리 안전이 중요하다면 아예 오르지 못해야지 않겠는가? 눈가린 아옹은 전지구적 병폐요 우주적 적폐다. 저 조또타워는 설계자가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요 미술가 Giotto 설계라 저리 부른다. 이태리는 복자음을 다 발음한다. 따라서 저 표기는 액면대로는 지옽토다. 이태리어 역시 한국어랑 마찬가지로 모음 연접에 .. 2023. 7. 25.
우피치 짓누르고 오른 조또타워 다 만족할 수 있겠는가? 주어진 시간에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피렌체대성당 일괄 관람과 우피치미술관 둘 중 하나는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우피치를 놨다. 우피치는 미술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저 포경 수술 안 한 친구 야외 전시물 구경한 걸로 종을 쳤다. 담을 기약해 본다. 좃또 나도 봤다 다음편은 파르테논이 될 것이기에 시간이 촉급하다. 한달...긴 듯하나 짧다. 젊은이들에게 부탁하노니 젊을 때 열라 싸질러 다녀라. 연골이 나갔는지 좃또 탑오르는데 숨이 매키고 연신 주저앉았다. (2017. 7. 25) #피렌체 #플로렌스 #우피치미술관 #조토탑 #피렌체대성당 #피렌체두오모 2023. 7. 25.
"이 분은 박물관 미술관은 관심없으실 테니" 피사에서 어느 한국 모녀를 만나 피렌체행 기차를 함께했다. 나는 로마서 피렌체로 가는 길이었고 모녀는 피렌체서 로마로 들어간다 했다. 피렌체 볼 만한 곳을 물었더니 엄마가 우피치미술관을 추천한다. 그랬더니 듣던 따님이 그런다. "이 선생님은 미술관 박물관 이런 건 관심없으실테니 그거 말구요 미켈란젤로 광장 가서 일몰 감상하세요." 음..내가 아직 안 알려진 듯 해서 더욱 분발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2017. 7. 25) *** 말이 씨가 되었는지 피렌체서 이틀인가 머물면서도 나는 우피치미술관을 가지 않았다. 유명한 작품은 모다 야외에 있어서였다. 진짜로 숙소에선 꽤 떨어진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일몰 보러 갔다. 일몰은 꽝이었다. 그날 따라 하늘이 변비가 걸렸는지 구름이 많이 껴서 꽝 났다. 대신 나는.. 2023. 7. 25.
80년대 사회과학 출판물과 종로서적 앞선 글 종로서적에 대한 글에서 판금물에 대한 기억을 조금 적어둔다. 이 글에서는 4.19부터 90년대까지의 기억이 혼재하여 있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전시된 책은 필자 눈에도 익은데 주로 80년대에 읽힌 책으로 기억한다. 공산주의운동사나 러시아철학사 같은 건 80년대에는 "사회과학서적"이라 불렀는데, 이때쯤 되면 이미 필자 기억으론 종로서적에서는 판금서적은 안 팔았다. 종로서적은 필자가 대학생이던 80년대 중반에는 이미 "금지도서 판매업"에서 손 씻고 양지에만 있지 않았나 싶다. 일단 80년대 중반까지도 전경들이 수시로 가방을 열어 검문을 했기 때문에 종로바닥까지 저런 책을 사러 나갈 리도 없고, 내 기억으론 사회과학서적들은 각 대학마다 이런 책만 전문으로 파는 책방들이 있었다. 이런 책방은 필자 또.. 2023. 7. 24.
2천년 묵은 낙랑 목관으로 판 후지츠카 장서인藏書印 앞서 나는 추사학를 개척한 원훈대신 후지츠카 치카시 등총린 藤塚隣 소장품으로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평양 일대 낙랑 무덤에서 수습한 목관 조각을 이용해 인장 하나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 아래가 그것이라. 낙랑 목관으로 제작한 후지츠카 도장 낙랑 목관으로 제작한 후지츠카 도장과천 추사박물관이 개최 중인 후지츠카藤塚와 난학蘭學 특별전 출품작 중에는 추사학을 개척한 원훈대신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유품으로 다량의 인장印章 도장이 인장함과 함께 선보이거니historylibrary.net 이 인장은 그것을 담은 그릇인 인장함과 더불어 지금 추사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후지츠카와 난학蘭學' 특별전에 선보이고 있거니와, 다만 여러 제약으로 문제의 도장을 제대로 촬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그리하.. 2023. 7. 24.
이상한 1970년 모파상전집 번역물 앞서 나는 60년대 말~70년대 초반 세계문학 전집 발간 붐이라는 소식을 정리했거니와 개중 하나의 실례로써 거론한 것이 이 모파상전집이라 모파상전집이 저 시대에 이미 저런 모습의 번역본으로 선보였다는 사실이 놀랍기 짝이 없거니와 한데.. 그 서지사항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나로서는 허심히 넘긴 이 대목은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 예리하게 지적한 것인데 1970년 유문有文출판사라는 데서 초판이 나왔다는 저 전집 편집위원 명단을 보니 작위하는 냄새가 아주 짙어 김수국金修國 유문출판사 수석 번역워원 김재천金齋天 유문출판사 번역위원 김가평金家平 박재천朴齋天 이며 역자는 이제천李齋天 이라, 이는 누가 봐도 수신제가친국평천하修身濟家治國平天下라는 유가의 절대 이상을 단순무식하게 응용한 인위의 작명이다. 濟라는.. 2023. 7. 24.
한국의 사적 기록 말살의 역사 한국은 유구한 지적 전통이 있는 나라다. 문자 사용의 흔적만 해도 한반도에서만 2000년이 넘고 과거제를 천년이나 시행할 저력이 있었고 엄청난 양의 불교 목판 대장경을 여러 차례 조판하고 또 조선시대에는 실록, 승정원일기등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는 또한 유구한 사적기록말살의 역사이기도 하다. 실록작성의 종료와 함께 이루어졌던 세초는 필화를 막고 종이를 절약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실은 방대한 사적 기록의 말살이기도 하다. 당대에 사찬하여 남긴 수많은 개인의 역사 기록들은 자가검열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런 전통이 축적되고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기록의 차이다. 일본은 육국사 이후 관찬서가 없다. 모두 사찬서이다. 그리고 역사기록은 개인기록이 풍부하게 이용된다. 많은 .. 2023. 7. 24.
김재근에서 맥아더까지, 헌책방서 낚아챈 회고록과 회고록들 어제 이만 팔천원에 어느 헌책방 뒤져서 긁어다 놓은 회고록들이다. 회고록은 실록이다. 특히 국가에 의한 관찬사서 편찬이 폐지된 근현대에 저런 회고록은 중대성을 더한다. 이것이 회고록 첫번째 특징이다 장점이다. 회고록은 제아무리 객관을 가장한다 해도 변명과 자랑으로 흐르는 숙명이 있다. 이 지점에서 회고록은 이른바 사료비판이 끼어들 여지를 필요조건으로 제시한다. 거기엔 과장과 거짓과 왜곡이 혼재 탑재한다 실상 광개토왕비도 장수왕의 지 애비 회고록이다. 진짜로 솔직한 회고록은 읽기가 거북하기 짝이 없다. 카사노바 회고록이 그렇다. 이것이 회고록이 주는 두번째 매력이다. 회고록은 관찬사서의 생략을 벌충한다. 나아가 법과 제도가 실제로는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통용했는지 그 생생한 목격담이다. 이것이 세번째 매력.. 2023. 7. 24.
조선 서학은 순교사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조선서학사를 순교사관에 따라 해석하니 실체가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다. 조선 서학자들이 어제까지 성리학을 믿다가 오늘 서학서를 읽고 하루 아침에 정통 기독교신자로 홀라당 바뀌었으리라 보는가? 실상은 그와 달랐을 것이다. 조선서학사를 천주교 순교사에서 해방하여 한국철학사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특히 서학을 유교사의 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서학을 순교사관에 묶어두니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종교의 영역에 역사가 머물고, 그 안에 존재했을 다양한 유학과 서학의 대화와 갈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학은 종교사가 아니다. 천주교의 전유물로 놔둬서도 안된다. 인간사를 종교사의 영역으로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을 왜곡이라 부른다. 선교사가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감화.. 2023. 7. 23.
조선후기, 서학은 "이단 유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 2023. 7. 23.
60년대에 이미 헤밍웨이 괴테 모파상을 전집으로 씹어돌린 대한민국 책에 주려 있던 나는 대학 진학과 더불어 게걸스레 채치우기 시작했으니 연전에 말한 대로 내가 그 생활을 시작한 부천 송내 막내 누님 집에는 내가 뚜렷이 기억하기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로 저명한 레마르크 전집과 삼포능자(미우라 아야코) 전집, 그리고 이상하지만 괴테 전집 세 종류가 있었다. 단칸방 전세인 누님 집 책이라고는 그 뿐이었으니 괴테 전집 말고는 다 뽀갰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요상한 점이 1986년 그때 출판 서지사항을 기억할 순 없으나 그 꽤죄죄한 몰골을 보면 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저들 전집이 나왔음은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먹고 살 궁리도 막막한 그때 저런 전집이 나왔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조금 전까지 어느 헌책방에서 노닥거리다 그 무렵 다른 전집 몇 종에 눈에 띈다. 첫째 모파상 전집.. 2023. 7. 23.
우즈벡 답사기(5):부하라(라비하우스, 이스마일 사마일 묘,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 부하라 둘째 날이 밝았다. 첫날은 여행 기간 중 처음으로 흐린 날씨였지만, 다시 햇빛이 쨍쨍한 한여름 날씨로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모든 일정은 걸어서 소화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라비하우스(Labi Hauz)다. 하우스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오아시스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는 연못 100여 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주변으로 수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연못들을 연결하는 수로망이 오래전부터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연못 주변에는 여러 마드라사 건물이 있는데 모든 건물을 소개하기는 어렵고, 가장 잘 알려진 건물인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Nodir Devonbegi Madrasah)만 소개하겠다. 17세기(1622-1623)에 지은 건물로 여행자 숙소 목적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마드라사로 개조되.. 2023. 7. 23.
조선유학의 전성기는 16세기 말 조선이 건국된 후 발전한 유학의 성장은 눈부신 바가 있다. 조선의 16세기 말, 임란 이전의 유학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이미 이 당시 중국유학, 중국성리학이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문제의식과 현실참여는 조선에서 구현되었다고 본다. 임란이후의 조선유학은 쇠퇴의 역사다. 예학은 좋게 보면 근대적 논리학의 편린을 볼 수 있고 조선유학의 독특한 부문을 형성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학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리철학 자체도 16세기 보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런 철학적 논쟁이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사실 16세기 말 조선유학이 발전하여 이룩해야 될 다음 단계는 엉뚱하게도 조선땅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17-18세기에 벌어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리학 극성기의 다음 단계는 내부.. 2023. 7. 23.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정약용은 저작의 양이 많기 때문에 필자도 전부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서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한계는 인정하고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다만 그의 "논어고금주"에 대해서는 필자도 할 말은 있다. 논어고금주는 예전에 논어 사서집주 윤독 때 필자는 이를 매장 윤독때마다 정약용의 해당 기술을 대조하며 읽었다. 그래서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에 대해서는 나름 할 말이 있고 또 크게 실상과 다르지 않으리라 자부한다. 나무위키에는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써 있다. 정약용은 유학자 중에서도 주자의 사서집주를 주체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여 보통 실학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성리학을 근본으로 부정한 인물은 아니다. 다산의 저서의 내용 자체가 성리학의 기본적인 전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참고로 다산이 가장 .. 2023. 7. 23.
부위별 소고기 명칭으로 본 동물차별 문제 볼수록 오묘한 게 이거다. 혀끝이 다 다르니 말이다. 불러본다. 목심 등심 채끝 우둔 설도 사태 갈비살 양지 앞다리 내장 쪽으로 건너가면 더 다양해지는 것으로 안다만 돼지는 돼지대로 따로 있으니 한데 왜 닭 오리는 저리 구분하지 아니하고 닭이라면 오로지 똥집이랑 닭발 밖엔 없단 말인가? 닭은 왜 사태 등심이 없는가? 각중에 고기가 땡긴다. 2023. 7. 23.
늑대도 짖는가? https://youtube.com/shorts/X0kmBzglplU?feature=share 물론이다. 늑대도 짖는다. 그러면 개는 늑대처럼 howling 하는가? https://youtube.com/shorts/SCHhLtNFQq4?feature=share 물론이다. 개도 howling한다. 개와 늑대는 아직도 같은 종이다. 수만 년 전에 분기했는데도 그렇다. 아직도 둘 사이에는 생식능력이 있는 후손이 난다. 늑대는 생각보다 훨씬 "개"다. 2023. 7. 23.
금지도서로 호황을 구가한 군사정부 시절 출판계 오히려 출판계가 호황일 때가 언제냐 하면 군사정부 시대였어요. 4.19 나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책, 번역서가 많이 나왔는데, 이런 책은 금방 판금(판매금지) 되잖아요. 벌써 '새 책이 나왔다' 그러면 암암리에 출판사가 이미 책 판권에는 발행일을 15일 정도 나중으로 찍어놓고 대형서점에다가 쫙 뿌려요. 경찰이나 공무원들이 맨날 와서 단속하는 게 아니니까. 종로서적은 이중 서가라서 문을 열면 거기 책이 또 있었어. 판매서가 뒤편에 또 재고 보관하는 서가가 있었거든. 거기다가 책을 감춰놓고 팔아요. 그리고 그 팔지 말라는 책 목록을 제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봐서 눈치가 이상한 사람한테는 안 팔거든. 그 시점에 책이 이미 몇천 권씩 막 나갔어요. 전 종로서적 사장 이철지 증언이다. 이는 역사를 바라.. 2023. 7. 23.
인정하기 힘든 다산에 대한 찬상 김단장께서 쓰신 다산에 대한 글에 대해 덧붙이자면-. 다산에 대한 글은 대부분 찬상 일변도인데 대부분의 이러한 다산에 대한 고평가는 쉽게 인정하기 힘들다. 태반은 다산이 이전의 유학자들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정확히 모르면서 다산의 글 내용만 정리하여 쓴 내용이거나 아니면 주변국가의 동시기 동향에도 눈을 질끈 감고 오로지 다산만 보고 쓴 글이 대부분이어서 인정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다산의 근대성인데, 다산의 어떤 부분이 근대적이라는 것인지 참 동의하기 힘들다. 다산경학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다산의 논어고금주 하나만 읽어봤다만, 이전에 조선땅에서는 보기 힘든 주를 폭넓게 인용해 책을 지은것 하나는 높게 평가하겠다만, 다산경학은 어디까지나 성리학, 그것도 정통성리학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 2023. 7. 23.
다산학과 당파성의 문제 내가 일전에 임진왜란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각본으로 삼는 절대 근거가 류성룡의 징비록과 이순신의 난중일기 두 가지라 했거니와, 이에서 비롯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들 두 저술이 철저히 당파성에 뿌리를 박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를 토대로 하는 드라마 영화는 철저히 류성룡과 이순신을 절대 善으로 그리며, 정치상에서 이들과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악인의 화신처럼 그리기 마련이다. 다산 정약용. 이 문제에서도 이와 똑같은 문제가 빈발한다. 다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모든 드라마나 책, 심지어 학술서적이라는 것도 볼짝시면 열에 아홉이 철저히 다산 중심주의로 일관한다. 이런 글을 보면 정조에게는 마치 믿을 만한 신하라고는 정약용 뿐인 듯하며 나머지 우수마발은 개xx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 .. 2023. 7. 23.
핍박받은 지식인의 표상 다산 정약용 지금 우리한테 익숙한 다산이라는 상품을 만든 일등공신은 박석무 선생이다. 요즘도 메일링 서비스를 하시는지 모르나 이 양반은 다산에 미쳐서 사시는 분이다. 다산에 대한 각종 글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그것을 각종 매체를 동원해 효율적으로 전파한다. 다산 제일의 전도사인 셈이다. 한데 이런 그가 다산에 경도된 계기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다름 아닌 광주민주화운동과 밀접하다는 점이다. 박석무 선생은 익히 알려졌듯이 이 운동의 기획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한동안 도피생활을 한다. 이 도피생활 와중에 다산에 더욱 침잠하게 되는데 당시를 회상한 각종 글을 보면 다산의 처지에 자신을 투영했음을 볼 수 있다. 이때의 작업들은 창작과비평을 통해 공간되기에 이른다. 박석무 선생 사례를 일반화하기엔 위험성..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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