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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한에 대하여 한국은 과거제가 천년을 간 나라다. 이 부분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데, 고려사절요만 봐도, 고려시대부터 이미 식년시는 정례화해 있었다. 3년에 한번씩 고려시대에는 34명 (조선시대와 달리 33명이 아니다) 꼬박 꼬박 급제자가 나왔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3년에 한번씩 34명씩 뽑아 올려도 3년 후에 다시 뽑아 올릴 인재풀이 있다는 소리니까. 고려도경을 봐도 고려시대는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 사회로 이러한 전통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갔다. 일제시대, 식민지조선이 다른 식민지와 달랐던 점은 배워야 한다는 점을 식민지 조선인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하면 출세한다는 것을 조선인들은 다 알았다. 돈이 없고 학교가 없어 못 갔을 뿐이다. 돈이 없어 학교를 못갔으니 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23. 6. 18.
민립대 설립운동을 다시 본다 우리나라 일제 식민지사에서 민립대 설립운동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 그 중요성에 비해 현재까지 이 운동의 시작과 실패는 조선인이 대학을 만들려고 했는데 일제가 방해해서 실패했다. 끝. 이 정도 설명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대학의 문제가 조선과 일본의 30년대 이후 차별화의 모든 근간이나 다름없다. 차별은 개인의 편견에 의해 주어 질때는 그다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차별이 구조화해서 재생산 되게 되어 있을 때가 무서운 것이다. 일제시대 후반부의 조선인 차별은 그런 식으로 구조화했기 때문에 무서운것 인데 그 구조화의 바닥에는 조선땅의 고등교육의 부재가 있었다. 이 부분을 재검토하여 전모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설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연희전문의 대학승격이 이루어졌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 2023. 6. 18.
사이비논쟁에 부쳐, 역사논쟁은 무식하다는 전제에서 비롯한다 바로 앞에서 나는 소설 코너로 간 정사 삼국지를 거론했다. 이걸 두고 어느 저명한 역사학도는 무식한 서점 직원이라 낄낄 거렸다.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 곧 삼국지의연의도 구별하지 못한 서점 직원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라고 낄낄 거렸다. 이 사례는 왜 한국사회에서 툭하면 터지는 사이비역사논쟁을 성찰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무식하다? 천만의 말씀. 그들은 이른바 정통역사학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며 그 꼭대기에 올라가 있음을 망각한 처사다. 그 서점 직원은 누구보다 정사 삼국지가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소설 삼국지를 찾는 독자들이 정사 삼국지 또한 같이 찾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으며, 그런 까닭에 소설 코너에다가 정사 삼국지를 당당히 진열한 것이다. 왜? 정사, 곧 정통 역사학은 소설 삼.. 2023. 6. 18.
일제시대 연희전문의 대학승격 앞에도 썼지만 1920년대, 조선인의 대학을 세운다면 대학령에 따라 연희전문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게 가장 현실성 있는 안이었다. 3.1운동 이후 민립대학운동은 전국적으로 모금하여 조선인의 대학을 세운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맨바닥에서 대학을 새로 세우는 일은 일본땅에서도 힘들었다. 일본이 대학령 발효후 제국대학 외에 대학이 된 곳은 거의 모두 기존에 전문학교였던 곳이었다. 특히 의전이 대학으로 바뀐 곳이 많았는데, 1920년대 당시 연전은 대학승격한 도시샤대학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잘 준비된 경우가 아닐까 (학과의 수는 오히려 연전이 많고 당시 연전은 4년제였다). 만약 연전이 세브란스와 합쳐져 대학 승격을 요구했다면 일제는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의 전문학교가 대학승격을 요구하면 일본 본.. 2023. 6. 18.
일제시대의 지식인: [31] 정지용 시인 정지용鄭芝溶(1902~1950)은 선생에 대해 쓴다. 그의 프로필은 다른 데는 소략하고 한글 위키에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다. 요약하면, 옥천보통학교 (1914) -- 휘문고보 (1918-1922) -- 도시샤대 영문과 (1923-1929) 선생의 휘문고보 재학 기간이 4년인데, 1922년부터 조선의 고보는 5년제로 바뀐다. 따라서 선생이 졸업한 1922년 당시 휘문고보는 4년제 맞다. 정지용은 일본 도시샤대(동지사대)에는 6년을 재학하였다는데, 예과 (혹은 전문과) 3년, 본과 3년으로 보면 딱 맞아 떨어진다. 다시 확인해 보니 도시샤대에는 전문부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예과는 확실히 존재했으므로, 정지용은 도일 당시 중학졸업 학력이므로 도시샤대 예과로 진학하여 3년과정을 마치고 본과에서 영문.. 2023. 6. 18.
소설 코너로 간 정사 삼국지 지금도 사정이 그런지 모르겠다. 교보문고를 기준으로 얘기하겠다. 정사 삼국지 완역판을 표방한 출판물이 내 기억으로는 김원중씨가 옮긴 전7권짜리가 몇년전까지 유일했다. 지금은 사정이 일변해서 그 개정판도 나오고 다른 사람 완역본도 있으며 그에 더해 그 방대한 자치통감 중에서도 삼국시대 부분만 번역한 것이 한두종 있다. 근자에는 그런 중국 정사 완역 바람이 사기로 몰아쳐 너도나도 정사 완역, 제대로된 번역을 표방한 것이 서너종 쏟아져나왔다. 근자엔 한서도 완역본을 준비 중인 곳이 있는 줄로 안다. 각설하고 정사 삼국지 번역본은 중국역사코너가 아니라 소설 코너에 진열했다. 이걸 보고 어떤 역사연구가연 하는 사람이 이르기를..서점 직원들이 무식해서 말이야. 정사 삼국지하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도 구분못해서 .. 2023. 6. 17.
우리나라 현판과 잘쓴 글씨 일반화는 그렇지만, 잘쓴 글씨 맞나? 싶은 글씨들이 있다. 아무리 봐도 좌우 정렬도 안 된 글씨를 극찬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것은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이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필자는 솔직히 서예는 잘 모르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상찬하는 글씨를 보면 이거 어째 글씨가 저러냐 갸윳한 적은 별로 없다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상찬하는 글씨, 현판을 보면 가로세로도 안 맞고 글씨 크기도 안 맞고, 아무리 명필이라도 가로세로 글씨 크기는 맞춰야 하는거 아님? 서예에 도통하면 고졸해진다고 한다면 할 말 없다. 2023. 6. 17.
아파트가 퇴출한 평면 지향 ㅁ자형 한옥 건축 종로구 안국동과 가회동 경계를 이루는 윤보선가尹潽善家 전면 한옥채들이다. 첫 사진 뒤쪽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헌법재판소라 저 언저리가 연암 박지원 손자 박규수가 살던 집이다. 현재 보는 건물들이야 지붕 담장 쏵 개비했지만 저 면모가 조선후기 그 면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보아 대과가 없다. 윤보선가야 말할 것도 없다. 이 일대는 창덕궁과 경복궁에 낀 지점이고 무엇보다 북악 언저리라 언덕배기라 홍수에 따른 침수 우려가 거의 없는 지역이며 무엇보다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 휘몰아치는 광화문 일대와는 달랐으니 그런 까닭에 날고 긴다는 사람들만 사는 부촌이었다. 저거 발굴해 보나마나 저 골목길 건물 구조 마당 등등 고스란히 지금 모습이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 그대로다. 조선시대 날고긴다는 사람들이 산 기와집은 예외없.. 2023. 6. 17.
현판으로는 꽝인 추사 글씨 첫째 추사체는 현판이나 편액 글씨로는 꽝이다. 둘째 七十一果病中作이 71세 과천 노인이 병중에 쓰다 인가? 추사가 말년에 사는 곳 과천을 빌려 스스로를 果라 했다는데 글쎄 좀 미심쩍다. 첨엔 累病이라 읽었는데 모르겠다. 죽기 직전 저걸 썼다는데 오늘내일 하는 뇐네가 殿板 글자 大筆을 갈길 힘이 있었는가? 낙관엔 완당阮堂이라 썼는데 진짜 김정희 낙관인가? 강남 봉은사서 剡溪 초하다. 2023. 6. 17.
기록으로만 남은 삼일고가도로 삼일(3.1)고가도로 완성, 1969 The Opening of Sami|(3.1) Elevated Motorway 삼일(3.1)고가도로 개통식, 1969 The Opening Ceremony of Sami|(3. 1) Elevated Motorway 고가도로 교량의 구조 Structure of Motorway Bridge Piers 高架路析梁的结构 高架道路橋梁の構造 청계고가도로는 콘크리트 거데(girder) 대신 거더와 상판 모두 철강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이는 한국에서 최초로 건설되는 형태의 다리였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기술을 도입하고, 일본에서 수입한 철강으로 상판을 만들었다. The Cheonggye Elevated Motorway was constructed using steel girders .. 2023. 6. 17.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5) 미스터리 국정자문위원 렴장廉長 김유신-흠순 형제가 한창 주가를 날리던 시대, 신라에서 돈과 권력으로 정계를 주무른 이로 렴장廉長이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염장은 미스터리다. 그건 다른 무엇보다 꼴랑 한 군데 고개를 내밀고는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꼴랑 한 번 고개를 들이민 사람이 대단했을 것임을 우리는 어찌 아는가? 이를 위해 위선 우리는 그 꼴랑 한 번하는 장면을 음미해야 한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진덕왕眞德王 이라는 제하 이야기에 보이는 대목이다. “(진덕여)왕이 즉위한 시대에 알천공閼川公·림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자장慈藏의 아버지다)·렴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다. 이들은 남산南山 우지암亏知巖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했다.” 간단히 말해 왕은 꿔다논 보릿자루였고, 실제는 이들 여섯 분이서 나라일을.. 2023. 6. 17.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2) 산악 정상 암반을 뚫은 지하궁전 두 무덤은 비슷한 시대에 만들었으며, 더구나 부부를 매장했으니 대체로 비슷한 구조였다. 간단히 말해 산 정상 암반을 가로로 뚫고 들어가 死者들이 생전에 常居한 생활공간을 그대로 흉내 내 묘실을 만든 지하궁전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이 휴전선 근처에 팠다는 땅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부는 암벽 동굴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이를 ‘애묘崖墓’, 즉 암반 절벽을 파고 들어가 만든 무덤의 일종으로 간주하지만, 이들 무덤이 조성되던 비슷한 시기에 주로 지금의 중국 사천성 일대에 유행하는 전형적인 崖墓와는 격을 현격히 달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후대 불교 도입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석굴石窟에 가까우니, 적절한 비교 사례가 될지 자신.. 2023. 6. 17.
학력고사의 부활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87314?cds=news_edit 尹 '공정'으로 수능도 때렸다 "부모 경제력 따른 교육격차 안돼"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통신과 금융업계의 독과점을 비판하며 언급한 ‘공정’과 ‘카르텔 해소’를 교육 개혁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사교육과 수능을 우선 개혁 대상으로 올 n.news.naver.com 학교에서 가르친 데서 내는데 변별력은 있게. 부모경제력 따른 교육의 차이 없이 하고 사교육은 봉쇄. 대통령 말이 옳고 틀리고를 떠나 결국 80년대 학력고사로 가자는 이야기. 당시 교육방송 강의를 듣고 수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교과서 안에서만 나왔지만, 학력고사 만점이 전국에 단 한 명도 안 나왔지. 대학에 들.. 2023. 6. 16.
한국사 교과서의 그림 이야기 이 지도는 필자가 고등학교 때부터 들어가 있던 그림인데, 그 당시에는 동이족의 분포 어쩌고 하는 부분 표시가 있었는데 그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싶었는지 그건 빠진 것 같고, 나머지 탁자식 고인돌, 비파형동검 분포 지역까지는 좋은데, "고조선 관련 문화범위"라고 하고 만주 일대와 북한지역을 포괄하여 거의 고구려 땅 만하게 그려 놓은 저 빨간색 부분은 비파형동검의 분포도 아니고,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도 아니며 세형동검의 분포도 아니고 그 어떤 토기유형의 분포와 맞지도 않고, 역사기록하고도 잘 안맞아서 도대체 저 그림에서 "고조선관련문화의 범위"라는게 뭘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도 안간다. 예전에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별문제 없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듯. 2023. 6. 16.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사 교육 최근 우연찮은 기회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보게 되었는데 전체 3/4 정도가 근현대사에 할당되어 있었고 소위 말하는 현대사가 전체 절반은 되어 보였다. 고대에서 중세사가 1/4밖에 안 되는 셈인데, 왜 이럴까 이것 저것 찾아보니, 고대사는 중학교 때까지 배우고 고등학교부터 분량을 줄인다는 것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는데, 역사를 이렇게 가르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지 싶다. 학문적인 객관성과 깊이가 예전 교과서 보다도 못해 보였다. 2023. 6. 16.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4) 지방 떠돌며 전쟁만 기다리는 동생 낭비대첩을 대승으로 이끌고 화려하게 귀환한 형과 아버지를 한없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분을 삭이지 못한 흠순은 춘추의 뒤를 이어 대권을 거머쥐어 제19대 화랑이 되긴 했지만, 의욕상실증에 걸리고 말았으니, 낭정郎政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교단 운영은 패대기치고는 짐을 싸고는 부모 형님, 그리고 그 절세가인 마누라한테 빠이빠이 나 댕기온데이, 오데 가는지는 묻지 마레이, 서늘해지마 돌아오겠구마 하는 말을 남기고는 표연히 길을 나섰으니, 그렇다고 그가 따로 갈 데를 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런 점에서 그는 방랑객 김삿갓 대선배이기도 했다. 마침 그때가 한반도는 전쟁의 시대라,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들도 전장에서 공을 세우기 좋아하는 시대 흐름이었으니 그 현상을 흠순공 전은 이렇게 말한다. “대개 .. 2023. 6. 16.
진경대사 보월의 절대 나와바리, 뭔가 아리숑숑한 창원 봉림사터 경남 창원시가 봉림동 165번지 일원 1,860㎡(발굴조사 1,200㎡, 시굴조사 660㎡) 봉림사지(도기념물 제127호) 7차 발굴조사를 벌인 모양이라, 실제 조사는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라는 데서 맡았으니 조사기간은 2023. 01. 16. ~ 2023. 07. 14인데 실조사일수가 29일이라는 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곡절이 있지 않나 한다. 봉림사는 라말여초 불교계를 장악한 선종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림산선문 본거지인 사찰로 그 원수에 해당하는 대경대사 보월의 능공탑(보물)과 그 탑비(보물)가 현재 느닷없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있는가 하면,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은 창원시 상북초등학교에 이전되어 있는 상황이라, 어쩌다 이 모양인지 알 수는 없거니와 그런 봉림사에 대한 탐.. 2023. 6. 16.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애국시가 맞는가 전술한 문학의 정치성, 명분, 도덕성에 대한 집착은 기존의 감성적 시에 대한 애국시 덧칠로 발전하였으니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애국시가 맞는가? 설사 그가 그렇게 직접 자신의 입으로 풀었다 하더라도 그 시를 쓸때 순간의 심리는 시인 자신도 모를 것이 시 아니겠는가. 시에, 소설에 뭔가 이데올로기가 들어가고 정치가 들어가고 명분이, 도덕이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감은 한국사에서 최소한 천년간은 문인 심리를 짓눌렀으니 아직도 그 해독이 남아서 무릇 문학이란 참된 정파성과 이데올로기, 민족과 민주주의 없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글을 짓고 있는 경우도 많다. 동문선을 보라. 조선시대 그 수많은 문집을 보라. 시 한 편 기억나는 게 있는가? 이를 단지 가르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면 왜 정태춘 옹의 노래.. 2023. 6. 16.
2022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2022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이 발간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미 한강 이남의 핫플이었던 천호동은 ‘원조 강남’이라 칭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 천호동 텍사스(성매매 집결지), 8개 전통시장, 강동구 유일의 백화점이 천호동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제는 강남 4구(강동, 송파, 강남, 서초) 중 가장 소외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1963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서울시 성동구로 편입된 후 천호동의 시간, 공간, 사람을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열람은 가까운 도서관, 서울역사박물관 자료실 구입은 서울책방(서울시청 B1),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샵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museum.seoul.go.kr) 학술/자료>발간도서 에 pdf도 공개.. 2023. 6. 16.
조선시대 문학은 프로문학, KAPF다 문학은 명분에 봉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조선시대 문학은 일제시대 프로문학, 그 시대의 문학가는 KAPF 맹원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의 고문운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쯤에 해당한다. ***Editor's Note *** 뭐 우리 문학이야 亦君恩(역군은)이샷다 로 끝난다. 심지어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하다가도 결론은 역군은이라 임금님 은혜 타령하다 볼짱 다 봤다. 2023. 6. 16.
시인의 마을 정태춘 선생은 시인의 마을, 촛불, 북한강에서 등과 같은 주옥과 같은 명곡을 남겼다. 그리고 필자가 알기로 어느 순간, 이 전까지의 곡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감상적 곡으로 보다 현실 참여의 곡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작품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나는 이러한 예술가, 문학가의 현실참여 의식은 예술과 문학의 성장에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 문학에 중국의 당시, 일본의 와카와 같이 감성을 건드리는 절묘한 작품이 거의 남지 않은 것도 현실참여 의식 때문이다. 현실참여 의식이 상상을 가로막고 감성을 통제하며 이성이 문학을 농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의 그 수많은 문인이 어마어마한 작품을 남겼지만, 그 안에서 우리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은 몇 안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정태춘 선..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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