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9912 이인직, 언어의 마술사 서창에 지는 해가 눈이 부시도록 비추는데 창밖에 지나가는 그림자는 날아드는 저녁 까치라, 서창을 마주앉아 꼬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주동이를 딱딱 벌리면서 깟깟, 깟깟깟 짖기를 구기拘忌 잘하기로는 장안 여편네 중 제일 가는 김승지의 부인 시앗이니 무엇이니 하고 지향指向을 못하는 중에 저녁 까치 소리를 듣고 근심이 버썩 늘었더라... 인간에 새벽되는 소식을 전하려고 부상 삼백척에 꼬키오 우는 것은 듣기좋은 수닭소리라. 그 소리에 인간에 있는 닭이 낱낱이 운다. 아시아 큰 육지에 쑥 내민 반도국이 동편으로 머리를 들고 부상을 바라보고 세상밝은 기운을 기다리고 있는 백두산이 이리 굼틀저리굼틀 삼천리를 내려가다 중심에 머리를 다시 들어 삼각산 문필봉이 생겼는데 그 밑에는 황궁국도에 만호장안이 되었으니 종명정식하.. 2023. 6. 11. 1876-1945: 계속 표변한 일본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이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1876-1945년까지의 일본의 국력과 실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시종일관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적 수준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의 수준을 달리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 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한국사에서 보는 일본은 주구장창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1876년 조선의 개항당시 일본의 국력은 제국주의와는 당연히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당시 수준이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2023. 6. 11.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필자의 글도 이제 중반을 넘어선다. 여기서 지금까지 쓴 글에 비추어 잠시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보통학교 입학률과 경제성장률로 일제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일제시대 말로 갈수록 더 커지는 고등 교육수준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대에 상당수 일본인이 조선땅의 경제활동 상층부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조선인의 성장을 반영한다 할 수 있는가? 만약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은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 것인가? 통계학에는 심슨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2023. 6. 10. 식민지시대 : 대학령은 왜 중요한가 앞에 글에서 식민지시대 조선과 일본을 결정해 버린 것은 대학령이라 했다. 물론 조선의 교육 문제는 대학수만 적다는 데 있지 않다. 전문학교와 고등학교수도 문제였고 특히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의 대학예과 역할을 하던 시대에 대학이 없으니 고등학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수가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는 일본의 기업들이 고도화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도 서구제국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못 미치던 일본 기업들이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해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학력에 따라 승진의 한계가 정해지는 일종의 "기업골품제"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1905.. 2023. 6. 10. 조선과 일본- 양자간 차이를 결정해 버린 대학령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법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령을 들겠다. 이 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 외에도 다수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학력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 대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1945년 일본이 망할 때까지 조선땅에는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유일한 대학 경성제대는 "대학령"이 아니라 "제국대학령"에 따라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령에 의해 다수의 대학이 만들어진 일본 땅에는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대학령이 발효된 1919년 이후 일본에는 대학 수가 급증했다. 대학령 발효 후 불과 6년 만인 1925년이 되면 5년 전에 비해 대학수와 학생수가 모두 두 배가 불었다. 이로부터 다시 5년 .. 2023. 6. 10. 언덕위의 구름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郎(1923~1996)은의 언덕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이라는 역사소설이 있다. 국내에도 몇 번 번역되어 나왔다고 아는데, 의외로 이 책이 국내에는 일본 극우들의 일제찬양서 정도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글쎄.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여기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 앞머리에 1897년 이전까지의 일본의 교육제도 발전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 책 주인공은 둘이다. 후일 일본육군 장성이 된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る(1959~1930)와 해군 제독이 된 그의 동생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真之(1868~1918)다. 이들의 소년시절부터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학교를 어떻게 들어갔는지, 메이지시대 초기 일본 교육제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었는지 흥미.. 2023. 6. 10. 민립대 설립운동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 현행 교과서에는 1919년 이후 민립대 설립운동은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이후 민립대를 조선인들 손으로 세우려 했는데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대개 요지는 그것인데. 틀린 논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민립대 설립운동의 배경은 필자의 글에서 몇번 지적했지만, 대학령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는 제국대학 이외에는 대학을 둘 수 없었는데 대학령이 발표되면서 사립대학 등의 설립이 허가되어 대학교와 대학생 수가 크게 늘게 되었다. 대학령으로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는 것보다 기존의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학령에 따라 조선에도 사립대학을 두자-. 그것이 민립대 설립운동이다. 그 내역에 대해서는 필자 글에서 몇 번 쓴 것 같으므로 부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 이 민립.. 2023. 6. 10. 개관 이튿날 문을 닫아버린 계양산성박물관(1) 개관을 기념한 저 표석은 살피니 2020년 5월 28일이라 세운 주체는 당시 인천 계양구청장 박형우. 역대 계양구청장을 살피니 박형우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하고는 그 다음 2014년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그리고 그 다음 2018년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내리 3선 연임에 성공하고는 2022년 명예퇴임했다. 지금 구청장은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윤환. 계양구가 민주당 성향이 더 강한 지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 역대 구청장 내력을 간단히 살핀 까닭은 저 박물관을 밀어부치고, 나아가 그 기반이 된 계양산성 발굴을 추진한 주역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볼짝없이 계양산성박물관은 박형우 작품이다. 계양구립 공립박물관으로 출발한 저 박물관 불행.. 2023. 6. 10. '사랑의 불시착'이 실어 나른 곱지 않은 스위스행 관광열차 오버투어리즘 '사랑의 불시착' 촬영 스위스 마을, 관광객에 몸살…통행료 물려 송고시간 2023-06-09 16:10 인구 400명 호수 마을에 팬들 몰리며 교통체증 등 혼잡…7천원 요금 징수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주요 촬영장소 중 하나였던 스위스의 호수 마을이 드라마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AFP통신은 9일(현지시간)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 장소였던 인구 400명의 작은 호수 마을 이젤트발트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민들이 통행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사랑의 불시착' 촬영 스위스 마을, 관광객에 몸살…통행료 물려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주요 촬영장소 중 하나였던 스위스의 호수 마.. 2023. 6. 10. 춘천 중도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고구려(2015) 2015.06.03 10:16:26 춘천 중도에서 고구려 귀고리 출토(종합) 삼국시대 석곽묘서 발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레고랜드 예정지인 춘천 중도에서 고구려 금귀고리 1점이 발견됐다. 중도 유적 5개 합동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중 한 곳인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은 중도 유적에 대한 2차 조사에서 삼국 시대 소형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를 확인하고, 이에서 금제 굵은고리 귀고리(金製太環耳飾) 1점을 수습했다고 3일 밝혔다. 이 무덤은 주축 방향을 북동-남서쪽으로 두었다. 마와 같은 땅을 깊이 가는 작물 재배 영향으로 덮개돌과 상단 벽석 일부가 교란돼 제위치를 잃었지만 시신과 부장품을 넣는 공간인 묘광(墓壙)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조사 결과 묘광은 길이 320㎝, 너비 260.. 2023. 6. 10. 춘천 중도가 출토한 고구려 금귀고리? 춘천 중도 출토 이른바 고구려계 금귀걸이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 유물들이다. 보다시피 이상하리만치 이른바 고구려 무덤에는 한짝씩만 나온다. 그에 견주어 신라무덤인 황남대총에서는 쌍이다. 문제의 귀걸이가 출토된 곳은 사진에서 보는 석곽묘 바닥 비닐봉다리로 표시한 곳이다. 저 곳을 귀걸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본다. 모르겠다. 귀걸이라면 고구려 여인들은 성인은 쌍으로 걸고, 미성년은 외짝을 걸었는지도. (2015. 6. 10) *** related article *** 중도 출토 귀걸이는 귀걸이? 목걸이 펜던트? 중도 출토 귀걸이는 귀걸이? 목걸이 펜던트? 춘천 중도 유적 석곽묘 출토 귀걸이. 이른바 고구려 귀걸이라 해서 화제인 바, 이런 소위 고구려 귀걸이는 한결같이 한짝만 출토한다. 나는 귀걸이를 의심한다... 2023. 6. 10. 돌칼과 돌화살촉, 청동기물을 대체한 무덤의 장식물 중도 레고랜드 부지 6호 분묘(청동기시대 지석묘) 출토 돌칼이다. 바닥에 깔린 돌화살촉도 같은 무덤 일괄 출토품이다. 저 석기는 구석기 이래 석기가 자체 변형한 역사를 담은 몰골이 아니다. 눈치 깠는가? 동종 청동기물 번안품이다. 간단히 말해 청동 칼과 청동 화살촉을 그대로 본을 떠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저 돌칼과 돌화살촉과 그 모델인 청동칼과 청동화살촉의 관계는 이른바 방제경과 그 모델인 중국제 수입산 청동거울의 그것과 같다. 이 심각성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저런 돌칼과 돌화살촉은 명기明器다! 2023. 6. 10. 일제시대 지식인: [26] 이강국과 [27] 김태준 해방 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한 두 사람에 대해 한꺼번에 살펴본다. 이강국李康國(1906~1957?)은 해방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월북, 미국의 간첩혐의로 그곳에서 처형된다. 보성고보 (1925) -- 경성제대 예과 (1927) --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 (1930) -- 경성제대 법문학부 연구실 조수 (1930-1932) 경성제대 조수 경력 뒤에는 독일 유학 경력까지 있다. 최근 이강국은 남로당 계열을 숙청하기 위한 북한의 조작이 아니라 정말 미국에 고용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전문적인 스파이로 활동해야만 먹고 살 만한 경력은 아니다. 당시로서는 조선인 중 최고 수준 프로필이고 경성제대 조수를 마칠 때까지 단 1년의 공백도 없었다. 해방 이전 저명한 국문학자로 진단.. 2023. 6. 10. [Discover Korea] Happy afternoon for Eastern Spot-Billed Duck family In a stream in Gangneung, Gangwon Province, a female eastern spot-billed duck and its young are having a happy time. Photos by Yoo Hyung-jae [Yoo Hyung-jae, who took these pictures, is a photo reporter at Yonhap News Agency who specializes in the ecological field.] 2023. 6. 10. 일제시대 조선의 교육제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일제시대 조선의 교육제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것이다. "조선이 1910년 당시 가진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빈약한 교육제도를 만드는 데도 36년이 걸렸다." 과연 그럴까? 없었기는 해방이후 한국이나 일제시대 조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수립후 36이 지난 시점의 84년의 한국 교육제도와 식민지를 경과한 일제시대의 교육제도의 변화를 비교해 보자.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경우 아래에 첨부한 그림은 1872-1880년 연간의 교육제도이다. 뭔가 굉장한 것이 있는것 같지만, 당시 일본에 소학교와 중학교는 이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였고 대학, 고등학교는 없었다. 각종학교가 이제 막 생겨 응시자에게 간단한 시험을 보고 학교 입학을 허가하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일본도 1872-1880년 사이에는 아무.. 2023. 6. 10. 교육제도의 완성 우리는 오늘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진학을 당연히 생각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대학교에 순차적으로 진학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보는 시대에 산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 특히 근대화가 외부에서 이식된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교육제도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여러 종류의 학교가 세워지지만 서로 아무 상관도 없이 존재하는 그런 시대가 처음에 있었고, 그런 시대가 가면 비로소 초등교육에서 중등, 고등교육이 연결되어 십 수년간을 연속적으로 교육 받는 시스템이 완성된다. 일본의 경우에 이런 교육제도가 완성된 시기가 언제였을 것 같은지? 일본의 교육제도가 완성된 시기는 1897-1908년 연간이다. 이 시기에 일본은 초등교육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연결되어 초등교육에서 대학까지 끊김없이 공부하는 .. 2023. 6. 9. 개관 앞둔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이달 28일 개관을 앞두고 오늘 그 건립추진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했다. 공동위원장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김종규 박물관협회 고문 이하 건립위원들이 수고했다 덕담하고 전시실을 둘러봤으며 인근 식당에서 해단식을 겸한 오찬을 했다. 나는 그 건립위 2기 위원으로 들어가 그것이 개관하기까지 중하반기를 지켜봤으며 나로서는 무척이나 애정을 쏟은 데라는 말을 두어 번 한 적 있으니 그에서 더 보탤 건 없다. 2기에서 그렇게 서둘지 않았더래면 그 진전이 어디에 와 있을지 모르겠다. 혹 그래서 부족한 점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예까지 왔노라 적어둔다. 개관 특별전도 당연히 준비 중인데 외람하게도 그 자문에 내 이름이 올랐으니, 기획전 주제 제안과 중간 진행 과정 점검 등등에 조금은 .. 2023. 6. 9. 용인 보라산 백제고분 발굴조사 현장공개 엊그제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로 인해 언론보도 된 용인 보라산(보라동 산62-2번지) 백제고분 유적 발굴조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발굴조사 성과는 아래 참조.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용인 보라동에 보라산 이라 일컫는 야산이 있다. 산이라 하지만 해발 215m라, moutain이라기 보다는 hill에 가까운 작은 산이다. 그 기슭으로 근자 단독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모양이라, 그에 맞추historylibrary.net 용인 보라산 백제고분 발굴성과(추보)앞서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실시한 용인 보라동 산 62-2번지 백제고분 발굴성과 소식을 전했으니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historylibrary.net.. 2023. 6. 9. 풍질로 주저앉은 총사령관 김유신 감국監國이란 글자 그대로는 나라를 돌본다는 뜻이니, 이는 비상시에 군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을 대리하는 일을 말한다. 보통은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나 태자가 하지만, 그가 어리거나 병들거나 했을 적에는 중신(重臣) 중에서 명망이 높인 이를 골라 맡기기도 한다. 명망이 높아야 하는 까닭은 그래야 비상사태에 반란을 억누를 수 있는 권위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이런 감국이 흔했을 것이나, 역사에서 확인하는 실례는 거의 없으니, 이는 기록의 소략함에서 기인한다. 그런 가운데서 역시나 김유신이 감국을 한 일을 발견할 수 있으니, 668년 고구려 정벌 전쟁에서 그가 수도 계림(혹은 금성이라도 했다)에 남아 감국을 했음이 확실하다. 문무왕 김법민은 아들을 늦게 본 듯하다. 삼국사기 문무왕본기 5.. 2023. 6. 9. 나라를 비운 왕과 태자, 감국監國하는 김유신 문무왕본기엔 대 고구려 정벌 전쟁에 김유신이 풍질로 직접 참가치는 못했다 하지만 같은 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3 김유신 하에는 그와는 언뜻 다른 듯한 사정이 거론됐으니, 병이 아니라 문무왕의 뜻에 따라 수도에 머물렀다 한다. 간단히 추리자면 나까지 수도를 비웠다가 수도에 무슨 일이 생기는 비상사태에 대처할 인물로는 김유신 밖에 없으니 그래서 문무왕이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감국의 역할을 김유신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열전에 보이는 다음 기술, 그러니깐 출정에 앞서 김유신을 대신하여 총사령관 역할을 대신할 장군 김흠순과 김인문을 불러 문무왕이 하는 다음 언급에서 명확하다. “공들 세 신하는 나라의 보배이니, 만약 한꺼번에 적의 땅으로 갔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 돌아오지 못한다면.. 2023. 6. 9. 일제시대 지식인: [24] 이관술과 [25] 이재유 30년대 경성트로이카, 반제동맹사건의 좌파 지식인 이관술李觀述(1902~1950), 이재유李載裕(1905~1944) 선생이다. 이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로 활동 내역도 서로 얽혀 있다. 먼저 이관술은 보통학교 -- 중동학교 (1925) -- 동경고등사범학교 (1929) 이다. 중동학교였으므로 아마 전문학교 검정시험을 봤을 것 같고, 중동졸업 후 동경고등사범 졸업까지 4년인 것을 보면 1년의 누락 없이 동경고등사범학교까지 졸업한 것이다. 대단한 수재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일제시대 동경고등사범은 동경대보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학교였다. 육사와 같은 4년제이고 학비 없이 보조금까지 있어 일본 전국의 수재가 많이 몰렸다. 전술한 최규하, 함석헌 양 선생도 이 학교 출신이다. 한편 이재유는:.. 2023. 6. 9. 이전 1 ··· 405 406 407 408 409 410 411 ··· 94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