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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협만치(木劦滿致)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본기 : 21년(475)…이에 도림이 도망쳐 돌아와서 보고하니 장수왕이 기뻐하여 (백제를) 치려고 군사를 장수[帥臣]에게 내주었다. 근개루(近蓋婁)가 이를 듣고 아들 문주(文周)에게 말했다.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고 썼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백성은 쇠잔하고 군사는 약하니 비록 위태로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겠는가? 나는 마땅히 사직(社稷)을 위하여 죽겠지만 네가 이곳에서 함께 죽는 것은 유익함이 없다. 어찌 난을 피하여 나라의 계통[國系]을 잇지 않겠는가?” 문주는 이에 목협만치(木劦滿致)와 조미걸취(祖彌桀取) 와 함께 남쪽으로 갔다.
도림(道琳)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본기 : 21년(475)…앞서 고구려 장수왕이 몰래 백제를 도모하려 백제에서 간첩(間諜)할 만한 자를 구했다. 이 때 승려 도림(道琳)이 모집에 응하며 말했다. “어리석은 이 승려가 아직 도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생각합니다. 원컨대 대왕은 신(臣)을 어리석다 하지 마시고 지시하여 시키신다면 기약코 왕명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왕이 기뻐하여 비밀리에 백제를 속이게 하였다.이에 도림은 거짓으로 죄를 짓고 도망하여 온 것 같이 하여 백제로 들어왔다. 이 때에 백제 왕 근개루(近蓋婁)가 바둑과 장기[博]를 좋아하였다. 도림이 대궐 문에 나아가 고하였다. “신은 어려서 바둑을 배워 자못 신묘한 경지에 들었습니다. 원컨대 곁[左右]에서 알려 드리고..
비유왕(毗有王)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비유왕본기 : 비유왕(毗有王)은 구이신왕 맏아들이다. 용모가 아름답고 말재주가 있어 사람들이 떠받들고 존중히 여겼다. 구이신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년(428) 봄 2월에 왕이 4부(部)를 순행하여 위무하고, 가난한 자에게 곡식을 차등있게 주었다. 왜국의 사신이 이르렀는데 수행자가 50명이었다. 3년(429) 가을에 사신을 송(宋)나라에 보내 조공했다. 겨울 10월에 상좌평 여신(餘信)이 죽자 해수(解須)를 상좌평으로 삼았다. 11월에 지진이 일어났고 큰 바람이 불어 기와를 날렸다. 12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4년(430) 여름 4월에 송(宋)나라 문황제(文皇帝)는 왕이 다시 직공(職貢)을 닦았기 때문에 사신을 보내 선왕(先王) 영(映)의 작호로 책봉해 주었다. ..
해수(解須) 생몰년 미상. 백제인. 전지왕 3년(407)에 왕의 친척으로 내법좌평에 임명되었다가 비유왕 3년(429)에 상좌평 여신(餘信)이 죽자 그 후임이 됐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 3년(407) 봄 2월에 서제(庶弟) 여신(餘信)을 내신좌평으로 삼았고, 해수(解須)를 내법좌평(內法佐平)으로 삼았으며, 해구(解丘)를 병관좌평으로 삼으니 모두 왕의 친척이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비유왕본기 : 3년(429) 겨울 10월에 상좌평 여신(餘信)이 죽자 해수(解須)를 상좌평으로 삼았다.
부여신(扶餘信) 백제인. ?~429(비유왕 3년). 제18대 전지왕 서제로서 동왕 3년(407)에 좌평이 되었으며 이후 언제인가 상좌평에 승진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비유왕 3년(429)에 상좌평으로 죽음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 3년(407) 봄 2월에 서제(庶弟) 여신(餘信)을 내신좌평으로 삼았고, 해수(解須)를 내법좌평(內法佐平)으로 삼았으며, 해구(解丘)를 병관좌평으로 삼으니 모두 왕의 친척이다. 4년(408) 봄 정월에 여신(餘信)을 상좌평(上佐平)으로 삼고 군무와 정사를 맡겼다. 상좌평의 직은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지금[고려]의 총재(=宰)와 같았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비유왕본기 : 3년(429) 겨울 10월에 상좌평 여신(餘信)이 죽자 해수..
여신(餘信) ☞부여신(扶餘信)
해충(解忠)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 2년(406) 가을 9월에 해충(解忠)을 달솔(達率)로 삼고 한성(漢城)의 조(租) 1천 섬을 주었다.
구이신왕(久尒辛王)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즉위년 : 전지왕(腆支王)은 양서(梁書)에는 이름을 영(映)이라고 했다. 아신(阿莘)의 맏아들이다. 아신이 재위 제3년에 태자로 삼았고, 6년에 왜국에 볼모로 보냈다. 14년에 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訓解)가 정사를 대리하면서[攝政] 태자의 환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혈례(蝶禮)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전지가 왜국에서 부음(訃音)을 듣고 소리내어 울며 귀국하기를 청하니 왜왕이 병사 100명으로써 호위해 보냈다. [전지가] 국경에 이르자 한성 사람 해충(解忠)이 와서 고하였다. “대왕이 죽자 왕의 동생 혈례가 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태자는 경솔히 들어가지 마십시오.” 전지는 왜인(倭人)을 머물러 두어 자기를 호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