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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3) 너무 다른 형제 잘난 형한테서 동생이 살아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선호한 방식이 다르게 가기다.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형을 둔 김흠순이 딱 이랬다. 아, 이를 보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사안이 있다. 동생이 형을 어찌 생각했느냐다. 나는 앞서 누차에 걸쳐 내가 친한 영웅은 없다는 말 입이 아프도록 했으며, 그 대표가 예수였다는 말도 지겹게 했다. 내가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어찌 나한테 영웅일 수 있겠는가? 볼 거 안볼 거 다 본 처지에 나랑 똑같은 그가 어찌 나를 이끄는 영웅이 되겠는가? 화랑세기 흠순공 전에 보이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모두 유신공을 두려워하고 공경했지만 공만은 홀로 그러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어리석은 형이 무에 두려운가?’” 어때? 내 말이 딱 맞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흠순은 .. 2023. 6. 16.
[낙서하도洛書河圖](아청阿城 지음,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3. 06) by 김영문 * 8년이 넘게 걸려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번역할 때 너무 재미 있어서 번역은 내버려두고 중국어 원서를 이틀만에 독파한 기억이 난다. 그만큼 지적 자극이 강했던 책이다. 지금 뒤적여보니 그 때 열정이 새삼 떠오른다. 그 느낌을 [옮긴이의 말]에 적어두었으므로 여기에 주요 대목을 가져와서 페친 여러분께 소개한다.(아직 서점 배본 전임.) 2 아청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북극성 중심의 천극신 신앙 체계를 바탕으로 중국 선진철학의 논리와 특징까지 규명해내려 하고 있다. 아청의 설명은 이렇다. 상나라는 천극신 신앙을 신봉한 모권(母權) 사회다. 그러나 주나라에 이르면 상나라의 천극신 신앙은 계승했지만 부권(父權)이 모든 권력의 중심에 놓인 사회가 된다. 역(易)도 상나라는 곤(坤)을 중시하는 『귀장』을 썼.. 2023. 6. 16.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1) 내가 만성한묘를 찾기는 2010년 10월 10일이다. 고고학계 인사 3명과 북경을 찾은 나는 그곳 북경 수도박물관에서 막바지에 이른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성립 60주년 성과 특별전을 관람하다가 모형으로 전시한 만성한묘滿城漢墓를 보고는 하도 독특한 데다 마침 북경에서 그리 멀지 않아 현장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일행 중에 이곳을 다녀온 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쪽 지리에 밝은 것도 아니어서 일반 관광객을 상대하며 생계를 꾸리는 조선족 운전사가 만성한묘를 들어봤을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지도에만 의지해 만성한묘를 찾아나섰다. 이렇게 해서 북경과 중국 남부 대도시들인 광주廣州와 주해珠海를 연결하는 경주고속도로京珠高速公路를 달려 만성한묘를 찾아 나섰다.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죽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 2023. 6. 16.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4) 마왕퇴에서 생각한 위만의 무덤 2006년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봉직하던 최몽룡에게는 회갑인 해였다. 그는 본교 제자도 많았지만, 고고학 전담 교수가 없는 다른 대학에서도 지도한 외곽 제자도 만만치 않았으니, 백제를 필두로 하는 역사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주류성 사장 최병식도 그런 사람에 해당한다. 백제에 미쳐, 특히나 그 마지막 왕 의자의 신이 강림했다고 믿는 최병식은 형제들이 모두 박사학위가 있는데 장남인 자신만은 없다는 점을 못내 한스러워해 50대 늦깎기로 두 대학에 석박사로 등록해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이 과정에서 불과 5살 정도 많을 뿐인 최몽룡의 제자 그룹에 들어간다. 최몽룡이 환갑을 맞은 그해 9월, 최병식은 선생의 환갑 선물로 중국 여행을 준비한다. 기간은 대략 4박5일 정도 되었다고 기억하.. 2023. 6. 15.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3) 위만은 산중에 묻혔다 광동성 광주에서 내가 남월국을 통해 투영한 위만조선은 다음과 같다. 아니 다음과 같아야 한다. 이는 언명이다. 첫째, 완연한 중국풍이다. 둘째, 위만을 비롯한 지배층 무덤은 산중山中이다. 광주 일대에서 출현한 남월국 궁서 유지와 조타의 아들인가 손자인 2대 문제 무덤, 그리고 광명시장 지하에 출현한 수갑 유적 등을 종합하건데, 이들은 주인공이 남월국이라는 증거가 없었으면 모조리 진한대 유적 유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남월국 문화 곳곳에는 낙양과 장안 중심 중국 문화가 짙게 침투해 있었다. 만세萬歲 와당? 장안長安에 갖다 놓으면 그대로 진한대 유물이다. 곡수연曲水宴? 이게 남월국 궁서 유지 한복판에서 출현했다. 문제文帝 무덤? 전실前室 후실後室 이실耳室 갖춤 기본 구조는 동시대 중원이랑 다를 바 없.. 2023. 6. 15.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2) 상처가 된 낭비대첩 7세기 한반도는 사생결단하는 전쟁의 시대였다. 삼국이 서로, 혹은 밀착하고선 그 외부 세계까지 끌어들여 어느 하나를 종말하고자 하는 시대였으며, 그 궁극하는 귀결이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백제 함몰이 있기 전 신라는 고구려와 대판하는 전쟁에 돌입하곤 했으니, 7세기 전반기 낭비 대전娘臂大戰은 개중에서도 양국이 전력을 투입한 총력전이었다. 이 전쟁은 신라에 의한 도발이었다. 즉위 50주년을 몇 년 앞둔 건복建福 46년, 서기 629년 스산한 가을 기운이 한반도를 감돌기 시작한 그해 8월, 이 작전을 치밀하게 준비한 신라왕 김진평은 마침내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발동한다. 신라가 이 전쟁을 어찌 생각했는지는 그 화려한 수뇌부 진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총사령관에는 이찬.. 2023. 6. 15.
쉬 썩어 문드러지는 목판에 문헌은 사라지고 [매직아이?]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서 찍는 목판인쇄는 활자와 달리 한 번 만들어두면 계속 그것만 찍어낼 수 있다. 하지만 재료가 나무인지라 마모되고 상하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 새로 판을 만들어 보충해야 하지만, 그때도 그게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귀찮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문드러진 목판을 그대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 어떻게 읽으셨을는지. *** Editor's Note *** 목판은 보통 판대기 하나에다 텍스트를 다 쑤셔박는다. 그것이 요새 개념으로는 1쪽 1페이지가 된다. 활자는 글자 하나씩 만들어 그 한 글자씩 텍스트 순서에 따라 틀에다 넣고 배열하고는 그걸로 찍어낸다. 글자의 가변성이라는 측면에서 금속활자가 훨씬 보폭이 크다. 목판은 문드러지면 판대기 하나를 새로 짜야 한다. 훼손된 부.. 2023. 6. 15.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2) 내가 광동성으로 간 까닭 내가 처음으로 광동성 광주로 남월국 유적 답사를 가기는 2007년 무렵이 아닌가 하는데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이곳을 찾은 까닭은 그 직전 요서 지역 탐방에서 감발한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양에서 출발해 오한기 적봉을 거쳐 산해관에 이른 이때 탐방에서 나는 말로만 듣던 진황도와 인근 수중현 일대 소위 진·한秦漢 시대 진시황·한무제 시대 행궁行宮 유지를 둘러봤다. 금산취며 흑산두 일대에서 중국 고고학이 찾았다는 이들 행궁 유적을 보니 내가 놀란 점은 첫째, 그들 행궁이 조영·운영된 시기가 위만조선과 거의 겹치고, 둘째 그 위상이 행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끔 높았으며, 셋째 유구·유적이 소위 현지의 토속미를 풍기기는 했지만 완연한 진·한의 소위 중국풍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넷째.. 2023. 6. 14.
친일 논쟁이 은폐한 언어의 마술사 이인직(2) ###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세월이 더딘 듯하나 무심중에 지내면 꿈결 같은 것은 세월이라. 철환보다 빨리가는 속력으로 도르래 돌아가듯 빙빙 도는 지구는 백여 도 자전하는 동안에 적설이 길길이 쌓였던 산과 들에 비단을 깔아놓은듯이 푸른풀이 우거지고 남산 밑 도동 근처는 복사꽃 천지더라. ### 칼끝은 춘천집의 목에 꽂히고 칼자르는 구레나룻 난 놈의 손에 있는데, 그놈이 그 칼을 도로 빼어들더니 잠들어자는 어린아이를 내려놓고 머리위에서부터 내려치니 살도 연하고 뼈도 연한 세 살 먹은 어린아이라 결좋은 장작 쪼개지듯이 머리에서부터 허리까지 칼이 내려갔다. 이인직 《귀의성》 하편 *** 왜 이인직을 일러 언어의 마술사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터 친일이라는 딱지 이젠 걷어내야 한다. 이인직을 그대로 대면할 때다. 2023. 6. 14.
봉분은 날아간 어느 무덤 껍데기서 수습한 다국적 그릇들 광주光州 운수동에서 출토된 5세기대 토기. 봉분은 사라지고, 무덤을 감싼 도랑[周溝]만 남은 곳에서 무더기로 출토되었다. 현지제작한 토기와 함께 백제, 가야, 신라, 일본열도 계통 토기가 잔뜩 섞여 있다. 거의 모두가 생활토기가 아니다. 제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토기이다. 연못 잉어가 천둥 번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의 어등산, 그리고 황룡이 놀던 황룡강(영산강)을 곁에 둔 유적이다. *** 동신대 이정호 선생 전언이다. 보고서 작성 중이라 하니 괜히 건드렸다가 똥 밟은 꼴 아닌지 모르겠다. 생전 직업이 폐기물처리업자인가 보다. 아님 훗날 고고학이란 학문이 태동할 줄 알고는 고고학도들 괴롭히겠다고 부러 저리 했는지도 모르겠다. 2023. 6. 14.
필자가 일제시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 필자는 연구를 시작한 이래 옛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의 역사적 변천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 작업은 평생의 주제가 될 것이다. 이 블로그에 요즘 다수의 일제시대 글을 올리는 이유는 필자가 관심을 갖는 질병과 건강의 역사에 대한 분석에서 이 시대를 빼 놓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 대한 전반적 검토와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다른 분야의 역사연구와 마찬가지로 질병과 건강에 대한 연구에서도 조선시대-일제시대-해방 후 한국을 보는 시각은 한 번쯤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제시대의 교육제도에 대한 검토는 그 첫발이 되는 셈인데, 이 작업에서 필자가 그 시대에 대해 알게 된 바가 상당히 많다. 이 시대는 지금까지와 같은 항일사학으로도, 식민지근대화론으로도 정확히 볼 수 없던 부분.. 2023. 6. 14.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1) 남월국은 위만조선의 투사물이다 지금 그 정확한 영역, 혹은 중심지가 논란인 위만조선이 존재하던 무렵, 중국 남방 지금의 광동성 광주 일대에는 남월南越이라는 왕조가 존재했다. 이 남월은 여러모로 위만조선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하는 판박이다. 첫째, 위만조선이 중국계 연燕나라 망명객인 위만이라는 자가 수립한 왕조이듯이, 남월 역시 지금의 산동성 출신인 조타라는 자가 현지 관리로 파견되어 일하다가 그 자리에서 자립해 이룩한 왕조 국가다. 둘째, 그런 까닭에 위만조선이나 남월은 모두 현지인과 중국계 이민자들의 혼합 정권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하이브리드 왕조인 셈이다. 셋째, 그 성립 시기 역시 거의 같다. 두 왕조 모두 시황제에 의한 진秦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 붕괴하면서 우후죽순으로 그 영역 혹은 주변부에서 생겨난 독립정권들 중 .. 2023. 6. 14.
“천안 천흥사는 다원식多院式 거찰” 고려 태조 왕건과 인연이 밀접한 ‘천안 천흥사天興寺’는 고려 초 창건해 사역을 점차 확장한 다원식多院式 거찰巨刹로 드러났다고 천안시와 조사단이 14일 밝혔다. 천안시 의뢰로 지난해 11월 8일 이래 오는 10월말까지 성거읍 천흥리 ‘천안 천흥사지’에 대한 제3차 발굴조사를 벌이는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번 조사 결과 현재의 오층석탑 뒤에 가구식 기단으로 구성된 건물 3개 동이 나란히 선 이른바 1탑 3금당 형식임을 추정할 만한 흔적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가구식 기단이란 지대석과 탱주석, 우주석, 면석, 갑석으로 구성된 불탑 기단을 말한다. 이 중 금당으로 추정하는 터(9호 건물지)는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장식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북쪽으로 별도 사역 공간(10~12호 건물.. 2023. 6. 14.
가 본 적도 없는 땅에 무슨 진 시황제·한 무제 행궁이란 말인가? 뭐 이게 왕궁 아니면 무슨 개뼉다귀이겠는가?그러니 중국 친구들이 이걸 끼워맞춘다 해서 진시황 행궁이었다고 주장한다.내 기억에 소병기蘇秉琦 (1909~1997)가 이런 주장을 처음 내놓은 이래 의문도 없이 이리 간주한다. 진시황은 간 적도 없는 땅에 무슨 그의 행궁이란 말인가? 안 되니깐 한 무제 행궁이라고도 주장한다. 유철劉徹이도 저기는 가 본 적이 없다.가 본 적도 없는 땅에 무슨 행궁이란 말인가? (2016. 6. 14) 2011年 文物出版社 出版 图书 《姜女石:秦行宫遗址发掘报告》 2011年 1月 文物出版社 出版 图书,作者 화옥빙华玉冰·양영창杨荣昌。 数 678 页定 价 680 元开 本16 开装 帧平装 ISBN9787501030477 이 발굴보고서인데 제목이 벌써 《강녀석姜女石:진행궁유지.. 2023. 6. 14.
진한秦漢의 유적 vs. 진한시대의 유적, 남월국의 경우 진한秦漢의 유적과 진한시대의 유적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전자는 진秦나라 혹은 한漢나라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고 운영한 유적이란 뜻이요 후자는 진나라 혹은 한나라가 존속한 시기에 만들고 운영한 유적이란 뜻이다. 우리가 아는 중화주의는 일부러 이 둘을 같은 것으로 혼용한다.지금의 중국 경내에서 일어난 모든 고고학적 증거를 이 틀에다가 끼워넣어 버린다.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보기가 남월국南越國 유적이다. 광동성 광주에 가 보면 모든 남월국 유적지 간판을 서한남월국西漢南越國 이라 표기했다. 한데 이 둘을 곧잘 한국고고학도들도 구분하지 못해 왕왕 중화주의 논리에 함몰한 모습을 보이니, 산해관 동쪽 진황도秦皇島와 수중현綏中縣 일대에 출현한 소위 진시황 한무제 행궁行宮 유적을 의심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를.. 2023. 6. 14.
정사 [삼국지]의 특징 by 김영문 * 정사 [삼국지]는 기전체 역사서이면서도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기전체란 중국의 [사기]와 [한서],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고려사]처럼 인물 중심의 본기와 열전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이다. 이에 비하여 연도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를 편년체라고 부른다. 중국의 [춘추]와 [자치통감],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 이 이에 해당한다. * 기전체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에 제도사나 문화사, 또는 지리 변화 등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이에 기전체에서는 다양한 [지(志)]를 두어 이를 적극적으로 보완한다. 우리는 [사기]와 [한서]의 각종 지리지, 예악지, 예문지, 직관지 등을 통해 당시의 제도, 지리,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다 기전체에는.. 2023. 6. 14.
동아시아 해상 교류의 중간기지 흑산도가 선물하는 무심사無心寺의 흔적들 오늘 흑산도 얘기를 할 것이므로, 지리상에서 이곳이 어드메쯤인지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 되겠다. 언제적인지 흑산도를 가 본 적은 있는 듯한데 하도 까마득한 옛날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뭐 딱 봐도 서남해를 오가는 항로에서는 격절이요, 장기 항해를 하는 사람들한테는 딱 봐도 쉬어 가요 오빠 아니겠는가? 실제 흔적에 남은 흑산도를 봐도 그러한 역사는 유구해서 원인, 일명 엔닌圓仁 이라는 일본 승려가 지금의 후쿠오카를 떠나 당말 중국에 들어가 유학을 필두로 하는 그 지난한 생활을 일기로 정리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도 등장하며, 송나라 사신 서긍이라는 사람이 영파를 떠나 고려로 오는 과정, 그리고 개경을 둘러보고 다시 회귀한 과정을 적은 선화봉송고려도경, 약칭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흑산도가 남았으니, .. 2023. 6. 14.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1) 형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동생 형이 아니었더래면, 형만 없었더래면,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자신은 이런 식으로 통탄했을지 모르나, 그 잘난 형을 빌어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푸념 아니겠는가? 그래도 그 잘난 형이 아니었더래면, 삼국사기 열전 첫머리는 내가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열권에 지나지 않는 그 전체 열전 중 첫 세 권을 몽땅 형이 가져갔으니, 아무리 김부식이라도 그렇지 이런 파격은 너무하지 않겠는가? 그 잘난 형 때문에 어쩌면 가장 심하게 저평가되었을지도 모르는 김흠순金欽純. 삼국사기 권 제42 열전 제3 김유신(下)에는 고구려 정벌군을 일으킨 문무왕이 그 진용을 짜면서 총사령관에 김유신을 앉히고, 그를 보좌하는 부사령관 양날개로는 김흠순과 김인문을 .. 2023. 6. 14.
사이비고 유사고 나발이고, 나는 용서가 안 된다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이 다시금 남발한다. 그런 말을 쓰는 자들은 그들이 구축한 역사야말로 진짜 역사학이라는 신념 혹은 전제를 한다. 이런 말이 주로 나오는 데가 고대사, 특히 한국고대사이므로, 몇 줄 되지도 않는 같은 텍스트 두고 이리보고 저리볼 뿐이다. 그걸 이리 보아야 한다는 법칙은 있을 수 없다.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 다양성이 멋대로일 수는 없다. 시각의 다양성일지니,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손친들 불역열호不亦說乎를 어찌 열받지 아니하리오라 읽을 수는 없다. 저네는 사이비고 유사역사학이라 공격하는 바로 그 친구들이라고 해서 그네들은 사이비가 아니고 유사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그네가 구축하는 역사학은 사이비가 아니라고 장담하는가? 난 지금도 용서가 안 된다. 신라 지증왕 4.. 2023. 6. 13.
전라도천년사 사태는 무지몽매에서 비롯하는가? 그렇다고 한다. 무식한 소수에 휘둘린 친일파 놀음이라 한다. 그리 말하는 사람 그 누구도 이 천년사를 제대로 읽지 않고 저리 비난한다 맹폭한다. 누가? 저짝에서 한 다리 걸쳐 필진으로 참여했다는 사람들과 그에 발을 걸치지는 아니해도 심증으로 같은 족속으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런 그들과 음으로 양으로 얼키설키한 이른바 관련 학술단체까지 떼로 나서 그리 성토한다. 그리하여 다시 해묵은 유사역사학이란 요물을 끄집어 내서는 저들은 유사역사학이며 사이비라 매리성토한다. 그들은 무식하기에 훈육받아야 하며 계몽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차하면 다시금 이병도로 돌아가 관뚜껑 닫힌 그를 도로 불러낼 태세다. 1차 사이비 유사역사학 논쟁이 그들을 성토한 이른바 정통 강단역사학에는 무얼 남겼는가? 그네들이 그렇게 해.. 2023. 6. 13.
건축가 김수근, 한국전쟁 중 징집회피 위해 일본 밀항 건축가 김수근 약력이다. 1931년 함경북도 청진 출생 죽 훑어가다 한 곳이 눈에 띤다. 1951년 일본 밀항! 이후 일본서 죽죽 생활한다. 만 20살 때, 한국전쟁 한창 중에 일본으로 토꼈다. 왜? 같은 1931년생 이맹희.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장남.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왜 밀항했는지 썼다. 군대 가기 싫어서였다고. 1936년생 화가 이우환. 만 20세 1956년 서울대 미대 입학 3개월 뒤 역시 일본으로 토꼈다. 1930년생 건축학도 김정기 1950년 만스무살 고교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토꼈다. 왜 왜 왜? 다 군대 가기 싫어 일본으로 토낀 것이다. 1950년대는 밀항의 시대였고 징집 회피의 줄행랑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밀항할 여력도 안 되는 사람들은 군대 징집되어 전장에서 총안받이가 되었다.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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