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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마한론에 꿀 먹은 벙어리들 낙랑이 평양인가 요동인가 요서인가 하는 걸로다가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민족주의 재야 엉터리 사학이라 공격하면서 어째 전남 마한론은 다 꿀먹은 벙어리인 거임? 호남이 마한 맞어? 왜 한 놈도 얘길 안해? (2022. 2. 7) *** 삼국이 정립한 이래 호남이 마한이라는 근거는 단 한 군데도 없다. 그 단 한 군데도 없는 마한이 느닷없이 출현해 제국을 만들고 있다. 한데도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 하는 사람이 없다. 묻는다. 마한이 어딨단 말인가? 2024. 2. 7.
Well-dying은 사찰에서, 서희 부자의 경우 요새는 죽음을 보통 병원에서 맞이하지만, 그 이전에는 집에서 죽었다. 불과 몇십년 전만 거슬러올라가도 그랬으니, 앞서 신동훈 박사께서 쓴 대로, 병원에 있다가도 집에서 죽어야 한다 해서 죽을 때가 되면 굳이 집으로 모셨다. 내 선친은 집에서 말년을 몇년 동안 누워계시다가 집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 만한 고역인지 모른다. 불효를 논하기 전에 이는 죽어가는 사람도, 남아있는 사람도 못할 짓이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악습이라 해야 할 이 전통이 한국사회에 자리잡은 것은 주자가례 도입이 결정적이었다. 더 정확히는 유교가 불교를 완전히 타도하고 절대 윤리로 군림하면서 이런 전통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불교가 국교이다시피한 고려시대에는 어땠을까? 있는 집안에서는 보통 죽음을 사찰에서 맞이했다. 요양을.. 2024. 2. 6.
가정에서 분리해야 하는 추모, 제사의 문제 조선시대에 유교 가례가 관철되면서 이전까지 장례와 납골 관련하여 개인이 아니라 사찰에서 담당하던 의례가 가정으로 들어와 버렸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가례가 관철되기 전에는 어른이 돌아가시면 모시는 의례와 행사는 대부분 사찰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가례 이후에는 온전히 가정의 몫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전혀 가정에서 준비하는 의례가 아닌 추모행사가 한국에서는 온가족이 모여 가사노동의 형태로 남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과거처럼 농경사회로 어차피 집에서 타작도 하고 밥도 하고 부침개도 부치던 시절에는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지금은 평소에도 밥을 집에서 잘 안 해먹게 되면서 온전히 명절 때 노가다로 추모행사가 남게 된 것이다. 가례 도입 이후 때 아닌 가내 가사노동의 형태인 조상추모행사로 변.. 2024. 2. 6.
[202401 독일풍경] (5) 라이프치히 ② 라이프치히 그라시 뮤지엄 from 장남원 [202401 독일풍경] (5) 라이프치히 ② 라이프치히 그라시 뮤지엄 Museum für Angewandte Kunst Leipzig (Grassi Museum of Applied Arts) 라이프치히 그라시 뮤지엄은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공예박물관이다. (첫째는 이 분야 관심 있는 분들이 아시는 대로 함부르크 공예박물관^^) 이탈리아 출신으로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한 상인 프란츠 도미니크 그라시 (Franz Dominic Grassi, 1801-1880)가 사후 200만 마르크 기증한 일이 그 시작이다. 건축물부터 창문,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2차대전 때 맛본 심한 폭격에서 재건되었으나 20세기 전반의 여운이 강하게 남은 가장 레트로한 박물관 중 하나였다. https://www.grassimak.. 2024. 2. 6.
제사, 미련없이 없애야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340001 부모 기일 상관없이 제사 한번에…경북 안동 종갓집도 변했다제사 시간은 오후 11시 이후에서 7시로 당기고, 따로따로 지내던 부모 제사는 한꺼번에 지낸다. 제사 모시는 대상도 4대(고조)에서 2대(조부모)로 축소했다. 조상 제사 전통을 비교적 충실히 지켜n.news.naver.com 복잡하게 할 것 없고 그냥 없애면 됨. 부모기일도 없이 한번에 해도 되고 4대조에서 2대만 해도 되는 것이면 안 지내도 되는 것 아닌가? 필자가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유교식 제사는 16세기 이후 주자가례 도입으로 비로소 한국사회에 관철된 것으로 언제 없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풍습임. 특히 필자 세대에 유교식 제사는 정리하는 것이 옳다. 다음.. 2024. 2. 6.
하공진이 맡은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란? 앞서 우리는 고려거란전쟁기 하공진河拱辰이라는 사람이 성종 시절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는 행적을 엿보았거니와 저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라는 말을 구명해 보고자 한다. 저 말은 무슨 使라는 직책을 말함이라, 이 경우 使는 외교사절보다는 왕한테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직책이라는 뜻이라,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중앙정부에서 직접 파견한 관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저 관리는 무슨 일을 했던가?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먼저 풀어야 할 말이 구당勾當이라, 이 구당은 말 그 자체로는 언뜻 이해가 쉽지 아니해서 그 맥락을 다른 사전 힘을 빌려야 한다. 바이두 사전에서 저 말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으니 勾当 拼音:gòu dàng 繁体字:勾當 词典解释 勾当gòudàng 营生;行当;事情(现一般指坏事) business or.. 2024. 2. 6.
[독설고고학] 논문도 공개 안 하는 스텔스학회 이 친구들 주특기는 오지랍대마왕이라 무슨 고고학 현안 터질 때마다 감내놔라 배내놔라 툭하면 성명서 짓거리요 짐짓 고고학 정의인양 가장하며 중앙정부더러 지방정부더러 이건 이리해라 저건 저리해라 툭하면 훈수질이라 한데 정작 지들 꼬라지는 스텔스행정이라 학회가 존립하는 기반은 기관지요 그 기관지 생명은 논문서비스일진댄 2024년 2월 6일 현재 이 꼬라지라 돈 안내면 기관지 원문 접근도 못하게 막아놨고 뿐이랴 그 간행목차 서비스조차 아승끼전세겁인 2015년으로 중단되어 재개를 모르고 이 모양 이 꼴이라 이런 학회를 이름하여 스텔스학회라 이름한다. 어찌하면 우리가 쓴 논문을 어찌하면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할까 그것도 깡그리 싹을 죽여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하되 우리 몫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명서 .. 2024. 2. 6.
절개를 지키다 간을 내준 하공진, 강조의 재림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고려에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산화한 하공진河拱辰은 행적을 보면 문관이 아니라 무관이다. 고려사가 정리한 그의 열전에 의하면 그는 진주晋州 사람으로, 성종成宗 때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으며, 목종穆宗 때는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되었다.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하공진은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침전 문 가까이에서 당직을 섰다가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으로 옮겼다. 고 했거니와, 목종이 앓아눕는 비상계엄사태 때는 왕실 호위를 담당하는 군대를 관장했음을 본다. 성종 시대에 그가 맡았다는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무엇인지 나는 실체가 아리송송하기만 하다. 어떻게 끊어읽어야할지도 종잡기 힘들다. 다만 압강이 압록강을 말함은 분명하거니와 /압강도/인지.. 2024. 2. 6.
너무나 먼 당신, 접선이 불가능한 김은부와 하공진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거란 조정에서 생활하는 고려 출신 하공진河拱辰이 거란에 사신으로 왔다가 억류 당한 김은부金殷傅를 도와 탈출케 하려다가 이 일이 탄로나는 바람에 붙잡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설정했지만, 이는 역사적 근거가 받침하지 아니하는 작가 설정이다. 다만 그렇게 볼 만한 여지는 있다. 김은부가 거란을 달래려 사신으로 간 시점과 하공진이 거란에서 탈출을 감행하다 탄로나 죽임을 당하는 시점이 묘하게 합치하는 까닭이다. 고려사와 절요를 보면 막 개경을 함락하고 불사르고 철군한 거란을 그래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달래서 추가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분명한데, 1011년 11월 13일 임오壬午에 고려 조정은 형부시랑刑部侍郞 김은부를 거란에 사신을 보내어 거란 성종의 생신을 하례케 한다. 김은부는 앞.. 2024. 2. 6.
백척간두에 선 왕실을 다시 세운 최항, 불교로 돌진하다 약관 스무살에 장원급제하면서 화려하게 중앙 정치 무대에 등단한 최항崔沆을 하현강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기술하면서 사망연도는 1024년(현종 15)라 기록하면서, 어찌하여 출생연대는 모른다 했는지 알 수가 없거니와,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출생 연대가 명확히 계상이 되는 까닭이다. 고려사랑 고려사절요에 모두 현종 15년 6월 5일 신유일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항崔沆이 졸했다 해서 명확히 죽은 시점이 적기됐거니와, 고려사 본기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그가 성종 10년, 991년 윤 2월에 실시된 과거시험에서 그가 급제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한편, 고려사 그의 열전에서는 字가 내융內融이며, 평장사 최언위崔彦撝 손자인 그가 성종 때에 나이 20세로 갑과甲科에 급제했다 하거니와, 이로써 보면 그는 97.. 2024. 2. 6.
2024년 헌책방의 힘 필자가 젊었을 때 우리나라 헌책방은 가 봐야 살 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 잘해야 작년 참고서 정도나 사볼까 나라의 연륜이 얕아서 쓸만한 책이 헌책방에는 거의 없었다. 요즘은 다르다. 요즘 헌책방 큰 곳을 가보면 수십년의 연륜에서 소각되지 않고 살아 남은 책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새책방들보다 훨씬 낫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볼 만한 책이 별로 없다. 뻔한 내용을 보다 쉽게 쉽게 이리 쓰고 저리 쓰고 하다 보니 책을 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헌책방은 그렇지 않다. 지난 수십년간 경쟁을 통해 도태될 책은 도태되고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책들이라 연륜이나 포스가 만만치 않다. 책을 사려면 헌책방을 가라. 거기 다 있다. 2024. 2. 6.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논문과 책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과 논문을 보면, 구글에도 잡히지 않는 논문이 있다. 놀랍지 않나. 김단장님 블로그에만 글을 써도 1시간 후에는 벌써 구글링에 잡히는데 나는 이것을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논문이라고 부른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멀쩡한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이 아마존에도 안 잡히는 책들이 태반이다. 대단하지 않나? 필자는 이것도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책이라고 부른다. 이런 정보화 시대에 온라인 상에서 그렇게 완벽히 숨는 기술도 참 왠만해서는 얻기 힘든 기술로, 필자 생각에는 이건 모두 특허신청해야 한다고 본다. 책이나 논문이나 국내에서 출판하는 경우는 항상 이게 문제다. 구글링을 해도 논문이 잘 검색이 안된다. 이렇게 검색이 안되면 이걸 읽는 독자가 없다... 2024. 2. 6.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는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책을 너무 안 읽는다. 남녀노소 애들 영감 할 것 없이 책을 거의 안본다. 우리나라 한글이 쉬워서 문맹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글을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 온라인 댓글을 보면 도대체 글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쓰는 것인지 황당한 말도 많다. 일 때문에 만나 이야기해 보면 가방끈이 정말 긴 사람들도 논리적 사고가 안 되는 사람이 많다. 책을 안 읽어서 그렇다. 한국? 책 안 읽는다. 미국애들이 놀고 먹는 것 같지만, 걔들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읽고 쓴다. 교양? 우리보다 걔들이 낫다. 도서관? 동네 도서관 가봐라. 미국 영감들이 바글바글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책을 너무 안 읽고, 이런 풍토가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준다는 생각이다. 책을 안 .. 2024. 2. 6.
한국학의 세계화는 입으로 되지 않는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 내는 책을 해외에서 팔아 먹을 수 있게 판매망부터 정비하는 것이다. 지금? 책을 찍어도 어떻게 팔아야 되는지도 모른다. 그 책을 해외에서 읽을 만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국내에서 책을 찍으면 아예 팔 방법이 없다. 80년대에 벌써 현대차는 미국에서 차를 팔아 먹었다. 같은 시기 삼성은 전 세계에 반도체를 팔아 먹었다. #한국출판 #한국학세계화 2024. 2. 5.
누가 토건정부인가? 아마도 다음달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숫자가 100을 돌파하는 모양이다. 그 효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출범하기가 1995년 무렵인가 하거니와 마침내 백을 돌파했다. 이런 기관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때는 놀랍게도 노무현 시대다. 개발의 광풍, 토건국가라면 보수집권 시대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겐 당혹스럽다. 토건 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다. 이 무렵 행정도시 건설이며 지방분권화 차원에서 핵심도시 기업도시 등등을 밀어붙였는데 전 국토를 헤집었다. 작금 이명박 정부를 사대강 사업을 빌미삼아 토건정부라 하지만 그보다 몇십 배 더 땅을 헤집은 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다. 이 시기에 매장문화재 전문기관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다가 또 한번 획기를 맞는데 이건무 청장 시절의 이명박 정부다. 매장문화재 전문기관 설립을 대폭 완.. 2024. 2. 5.
지리한 도덕 훈시로 나열한 최승로 시무 28조, 역사는 왜 그것을 전재했울까? 문제의 최승로 시무 28조 혹은 28책은 대서특필되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전문을 수록했으니, 기전체인 전자는 그의 열전에서, 편년체인 후자는 그가 이를 제출한 성종 원년 982년 6월 항목에다가 전문을 실었다. 나는 모든 기록을 대할 적에 그것을 왜 편찬자들이 적었을까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주장한다. 고려사 편찬자들은 왜 이를 시시콜콜히 적었을까? 나는 그것을 궁구하는 과정이 고려사를 편찬한 이데올로기를 파헤치는 길이라고 본다. 이는 최승로한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채록하는 고려사 사관들한테 중요했던 것이다. 최승로 본인이야 그걸 정리한다고 생똥을 쌌겠지만, 그렇다 해서 그 시무 28조를 문제작으로 그가 생각했겠는가는 별개 문제라 본다. 그건 관계없다. 우.. 2024. 2. 5.
쥐어 뜯겨 겨우 남은 고려사, 이른바 최승로 시무 28책(1) 앞서 우리는 거란 침입, 특히 이른바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 개경이 함락당하면서 실록까지 몽땅 불타버렸고, 그렇게 망실한 그 시대 역사를 왕명을 받들어 황주량이 겨우 기워 놓은 것이 지금의 목종 이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전반기 기록이며, 그런 까닭에 부실하기 짝이 없음을 보았다. 그 시기 일어난 일 중에 그 유명한 이른바 최승로 시무 28조 상서上書가 있으니, 이 역시 딱 그에 해당하는 다 뜯어먹기고는 겨우 남은 흔적에 지나지 아니한다. 이 시무 28조는 고려사에서는 대서특필하거니와, 한마디로 국가 경영책이라, 조선시대 이와 비견하는 방책이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이다. 최승로 이 시무책을 생각할 적에 먼저 고려해야 하는 사실은 이는 그가 자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임금의 부름에 응답한 .. 2024. 2. 5.
고고학은 자연과학, 한성백제박물관 동물뼈 분석에 부친다 옛날이라 해 봐야 고작 20년 전, 10년 전 일밖에 더 되겠지만, 이제 고고학은 자연과학이다. 각종 이름으로 그것이 과학입네 하며 포장해 그것을 분석한다는 시대는 저 멀리 가고 없다. 이제는 고고학 조사를 통해 수십하는 정보는 경험으로 축적한 그 무엇으로 측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고고학은 그것이 표방하는 궁극이 인문학이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나, 그에 이르는 과정은 철저히 자연과학에 기초하며, 또 그걸 토대로 해서 도출한 결론 또한 철저히 자연과학 영역이다. 이제는 자연과학이 수행하는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보고서조차 쓰기 힘든 시대다. 내가 매양 비판하는 한국고고학이 전근대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문학이라는 허울만 있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과학을 배제한 자리에는 .. 2024. 2. 5.
경기장에서 쓰레기 줍기 (2) 경기장에서 쓰레기 줍기는 일본 전통으로 한국은 이 전통을 베끼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일본에서 나왔나 보다. 어디가 원조냐 한국에서 이런 쓰레기 줍기가 자생적이냐 뭐냐 하는 이야기 이전에, 축구 보러 간 사람들이 경기 끝나면 자기가 버린 것이나 들고 나와 버리면 되지 쓰레기 봉투까지 들고 다니며 청소하고 다니는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경기 끝나서 피곤하기 짝이 없을 선수들이 라커룸 다 청소하고 나가는 것이 정상적인가 하는 생각부터 해봐야겠다. 이런 부분이 우리 사회에 의외로 많다. 선진국 기준을 일본에 두는 것인데 필자가 보기엔 소위 선진시민 의식 운운하지만 일본의 행동방식은 전 세계 좀 산다는 나라에서 본다면, 상당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이러한 패턴은 한국이 굳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없는 것이 수두룩하.. 2024. 2. 5.
거미줄처럼 친 위원, 또 하나의 꼴불견 비단 내가 몸담은 업계만 아니라 사회 전반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은퇴 이후 혹은 현직 중에도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이 보이는 또 다른 꼴불견이 위원이라는 위원은 걸리는 족족 다 걸치는 양태라, 다른 부문은 내가 어두울 수밖에 없으니 이쪽 문화재 업계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문화재 관리시스템은 크게 관리 주체로 보면 중앙정부와 지차체로 나뉘거니와, 이 지자체는 다시 광역과 기초로 나뉘어 진다. 중앙정부에서는 문화재청이 주도하는 이른바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를 필두로 각종 위원회 혹은 자문위가 상설 혹은 임시로 난립하거니와, 이 위원회 도입 취지야 여기서 새삼 재론할 필요는 없겠거니와, 이게 시간이 갈수록 감투용으로 전락하고, 그런 감투용이 아주 자주 쥐꼬리 만한 영향력을 부당행사는 고리가 되기도 하.. 2024. 2. 5.
탁본이 노출한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利川長岩里磨崖菩薩半跏像이다. 경기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 577-5 (장암리)에 소재하며 종래에는 보물 제982호로 분류됐다. 2000년 주변 정비와 배수로 개설을 위한 공사 중 장대석이 노출되어 당시는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시절이 아닌가 하는데 그쪽에서 긴급조사를 진행했다. 저 탁본은 그때 친 것이다. 이 연구소는 두어 해 지난 뒤에는 한백문화재연구원이 출범하면서 주력 인력이 거의 다 그쪽으로 빠지게 된다. 방유리 한백문화재연구원 실장 제공이다. 현장 가서 보면 알겠지만, 육안으로는 알아보기도 힘들다. 귀중한 장면이라 전재한다.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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