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2076 [고려막부 스핀오프] 계란말이 당한 황보유의와 장연우의 최후 김훈金訓과 최질崔質이 주도한 1014년 11월 1일 군사쿠데타 당시 그들한테 죽기일보 직전까지 계란말이 매질을 당하고선 유배길에 오를 당시 그 피해자 두 사람 중 장연우張延祐는 중추원사中樞院使였고 황보유의皇甫兪義는 일직日直이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는 장연우를 이리저리 눈치 보지마는 그렇게 미워하기 힘든 코믹성 강한 캐릭터로 설정했거니와 고려사절요가 절록한 그의 일생을 보면은 그리 간단한 인물은 아니라 (현종 6년, 1015년) 겨울 11월.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연우張延祐가 사망하였다. 신라新羅 말엽에 그의 아버지 장유張儒는 혼란을 피하여 오월吳越 지역으로 갔다가 중국어[華語]를 익혀서 돌아왔는데, 광종光宗이 누차 객성客省의 관리로 임명하여 매번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장유로 하여금 그들을 접대하게 하.. 2024. 2. 9. 고려사는 내 눈으로 읽는다 이거 사람들이 농담처럼 받아들일 듯하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어떤 글을 쓸 때 네버에버 해당 주제 혹은 소재에 관한 이른바 선행연구성과라는 거 일부러라도 안 읽는다. 있다는 걸 알아도 안 읽는다. 왜? 그래서 하는 실수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걸 읽는 순간 내 시각을 잃어버리는 까닭이다. 내가 내 눈으로 역사를 대해야지 내가 왜 그딴 허접한 쓰레기에 휘둘려서 그게 맞니 틀리니 해야겠는가? 물론 내가 대하는 역사라는 것도 엄밀히는 2차 3차 가공한 데 지나지 아니해서 요즘 한창 손대는 고려사만 해도 고려사니 고려사절요는 조선 전기 그 역사를 정리한 조선초기 이데올로그들 시각으로 재단한 것이기는 하다. 그래도 저 시대 직접 증언이 거의 망실하고 그나마 2차 가공 3차 가공을 거친 것이기는 하지만, 저렇.. 2024. 2. 8. [제3차 고려 막부정권] (4) 쿠데타 이틀 만에 막부를 만든 김훈과 최질 상장군 김훈金訓과 최질崔質이 주도한 쿠데타 군은 개떼처럼 궁궐로 들이닥쳐 덕석 말이를 해서 흠씬 두들겨 팬 황보유의黃甫兪義와 장연우張延祐를 현종 앞에 던지며 이 놈들을 내쫓으라 요구한다. 앞선 왕 목종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를 생생히 기억하는 현종으로서는 아이고 나도 형님따라 가는구나 하고 자포자기했겠지만, 그네들 요구사항을 들어보니 순진하기 짝이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들이 왕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이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들을 요구를 거부하면? 그 자리서 쫓겨나거나 목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 고려사절요 기술은 다음과 같다. 왕은 여러 사람(쿠데타 주역들) 뜻을 거스르기가 조심스러웠으므로 일단 그들의 청을 따라 마침내 〈장연.. 2024. 2. 8. 인신공희 그 피나는 역사 <상나라 정복翦商> translated by 홍상훈 역자 후기에서 그동안 알고 있던 문왕과 강태공, 주공, 공자는 조작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고공단보古公亶父부터 계력季歷, 문왕에 이르기까지 주족周族은 상나라에 예속된 상태로 동족인 강족羌族을 사냥하여 상나라의 제사에 쓰일 인간 희생으로 바치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계력과 문왕의 장자 백읍고伯邑考가 인간 희생으로 바쳐졌고, 심지어 문왕과 다른 자식들은 백읍고의 살로 만든 육장肉醬을 먹어야 했다. 도덕적이고 인자한 성왕으로 알려진 문왕은 알고 보면 비정한 인간 사냥꾼이었고, 그 자신이 유리羑里의 토굴에 갇혀 인간 희생의 후보자가 되었을 때는 인육을 먹고 와신상담하며 반역을 준비했던 효웅梟雄이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돌아와 자기 저택의 비밀 토굴 속에 숨어 몰래 편찬한 《역경》은 단순한 점.. 2024. 2. 8. [백수일기] 하루를 보내는 방법 늘어지게 잔다. 언제까지? 밥줄 때까지다. 언제까지인가? 대체로 정오가 가까워오는 무렵이라, 이때 식사를 아점이라 한다. 백수가 하루 세 끼를 먹을 수는 없다. 자연스레 앵겔지수를 높이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일거양득이다. 아점을 먹고선 또 잔다. 왜? 잠이 잠을 부르는 까닭이다. 그래서 잔다. 보통 서너시에 일어난다. 그러고선 나간다. 저녁 사준다는 자리로 간다. 이리 되면 하루가 만사형통이요, 하루가 만사형통이면 한달이 만사형통이요 한달이 만사형통하면 일년이 만사형통이다. 2024. 2. 8. 충효 말고 구할 게 없다? 친일파 이윤용의 글씨 "모든 일은 충효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다[萬事不求忠孝外]!" 좋은 말이다. 헌데...그 말을 붓으로 적은 이가 누군가 하니 '90을 바라보는 늙은이 이윤용李允用'이란다. 이윤용, 이윤용이라... 누군가 하여 찾아보니 이완용의 형(친형은 아니다. 이완용이 양자로 들어간 이호준의 서출 아들)이다. 우리가 다 아는 그 매국노 이완용 맞다. 그 형 되는 이 사람도 동생 못지않은 친일파였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장인이 '조선 근대의 괴걸' 흥선대원군이었다는 사실. 이보시오, 대감. 다 좋은데, 대감이 하실 말은 아니지 않소? ㅡ 이 글씨를 보여주고 포스팅을 허락해준 소장자께 감사의 말을 올린다. 2024. 2. 8. 내가 있건 없건 잘 돌아가는 세상 자기 일에 대한 긍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없으면 세상이 망하는 줄 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당신이 더 잘 될 세상을 앞에서 막고 있었을 수도 있다. 젊은 친구들이 미덥지 않다고 하지만 그 친구들이 사실 당신 때문에 더 발전을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긴가민가 하다면 한 번 슬쩍 일년만 일에서 빠져봐라. 아마 그래도 잘 돌아갈 것이다. 그때가 바로 그 일을 접을 때다. 앞에서 자기가 가로 막고 있으면서 빨리 자신을 밟고 나갈 후진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 하지 마라. 한가지 위안은 뭔가 하면, 그렇게 정리하고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이 더 없을까를 찾아보면 의외로 다른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집착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 2024. 2. 8. 양규와 흥화진, 겸직을 허용한 고려사회 고려사절요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원년(1010) 11월에 이르기를 신묘일에 거란 군주가 스스로 보병과 기병 40만 명을 거느리고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호명하며 압록강을 건너와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였다. 순검사巡檢使인 형부낭중刑部郞中 양규楊規가 진사鎭使인 호부낭중戶部郞中 정성鄭成, 부사副使인 장작주부將作注簿 이수화李守和, 판관判官인 늠희령廩犧令 장호張顥와 더불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이 흥화진은 둔전이 기반인 최전방 기지라, 제2차 고려거란전쟁 당시 성종이 친정하고, 소배압이 총사령관을 맡은 가운데 고려 경내로 들어와 첫번째로 들이친 곳이다. 한데 이곳을 방비하는 고려군 수뇌진이 죽 나열되었거니와, 이 흥화진은 행정구역이면서 군단인 까닭에 이곳에는 본래 그 우두머리가 있어 이를 진사鎭使라 했으니, 使.. 2024. 2. 8. [제3차 고려 막부정권] (3) 강조의 실패를 새긴 쿠데타 주역들 이 3차 막부정권 수립 전야 군사 쿠데타 수뇌진이 누군지는 같은 고려사절요 해당 사건 기술에 명확히 드러나는데 상장군 김훈과 최질, 그리고 박성朴成·이협李恊·이상李翔·이섬李暹·석방현石邦賢·최가정崔可貞·공문恭文·임맹林猛이 그들이라 저에 의하면 이들은 땅(영업전)을 빼앗은 일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분노를 격화시켰으며, 여러 위衛의 군사들을 꾀어내어 북을 치면서 소란스럽게 궁궐[禁中]로 난입하고서는 장연우張延祐와 황보유의皇甫兪義를 포박하고 매질하여 거의 다 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표적이었을까? 이어지는 기술. (이들이) 합문閤門 안으로 들어가 면전에서 호소하기를, “황보유의 등이 우리의 토지를 점탈한 한 것은 실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지 조정[公家]의 이익을 위한 것.. 2024. 2. 8. 시리도록 서해가 아름다운 서산 부석사 한국 산사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전면이 장관인 곳 둘째, 뒷산이 장관인 곳 물론 복합유산도 있어 전면 뒷산 모두가 아름다운 곳이 있다. 요즘 뉴스메이커인 서산 부석사는 압도적으로 전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보고 두 가지 상념이 든다 했다. 첫째, 사랑 둘째, 자살 (2017. 2. 8) ***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산 부석사는 한국 도둑님들이 대마도로 쳐들어가서 훔쳐 국내로 반입한 고려시대 청동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느냐 마느냐로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본래 이 불상은 복장유물에서 그것이 고려 말에 지금의 서산 부석사에서 만들어 봉안했다는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부석사는 해당 불상이 왜구들한테 침탈된 것이니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아니했다. 결국 이 .. 2024. 2. 8. 숭배해야 할 똥배보살 중국 서안 비림박물관碑林博館이 소장 전시 중인 당대唐代 불교조각이라 중년 여성들이야 친근함을 느낄 것이로대 그래 보살님도 저러한데 하물며 나야? 하는 안도감 혹은 동질감이 있지 아니하겠는가? 2018년 2월 8일 서안 여행 때 찍어 소개하기도 했다. 과거의 오늘에 보여 다시 전재한다. 2024. 2. 8. 2018년 겨울 중국 장안長安에서 너무나 여유가 없는 현지답사였다. 느긋하고 싶었다. 한 고조 유방 무덤 정상에서는 툭진 옷 걸치고는 하염없이 지는 해를 감상만 하고 싶었다. 그가 죽은 지 2천200년 동안 해는 줄기차게 졌으리라. 그보다 대략 30년 정도 앞서 간 시황제는 말 뼉다귀 몇 개 남겼다. (2018. 2. 8) *** 그러고 보면 항상 서안西安 답사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급했다. 누가 날 죽이겠다 달라드는 것도 아닌데, 번번이 바빴다. 진짜로 느긋하고 싶다. 느긋이 완상하며 돌고 싶다. 따듯한 봄날 그런 날을 기약해 본다. 2024. 2. 8.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서 얻을 건 없다 이건 내가 일찍이 고려시대 후비后妃 책봉제도를 들여다 볼 적에 절감한 것으로, 내 결론은 백관지에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였으니 왜 그런가? 전연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려사 찬자들은 고려시대 관직 제도에 대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한 데가 천지라, 궁주宮主만 해도, 이것이 이른바 몽골 간섭기를 계기로 그 위상이 급속도로 변함에도 이걸 전연 알아채지 못했으며, 기타 원주院主니 뭐니 하는 등급도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철저히 사례 중심으로 파고 들어 그를 통해 그 작동 원리를 도출할 수밖에 없다. 고려사 백관에 대한 기존 연구성과란 것도 저 백관지 축약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기는 고려사 찬자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내 결론이었고, 그래서 나는.. 2024. 2. 7. [제3차 고려 막부정권] (2) 영업전이 당긴 반란의 씨앗 고려사를 통괄할 때 건국기를 막부정권 1기라 명명한다면, 강조가 목종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시기를 2차 막부정권이라 해야 한다. 그리고 대략 백년 시간이 흘러 정중부에 의한 우리가 아는 그 막부정권이 본격 개막한다. 종래 막부정권이라 하면 정중부 이래 최씨 집권기에 전성을 이루는 시기만을 특정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생각보다 더 다채롭고 생각보다 더 복잡했으며 생각보다 더 많았다. 당장 강조 정권이 막을 올린 고려 현종시대만 해도 강조 말고도 또 한 차례 막부정권이 있었으니, 이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한다. 이를 그 주모자 이름을 따서 김훈·최질 막부정권이라 해야 할 성 싶은데, 때는 현종 5년(1014) 11월. 작금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막 이 시기로 돌입하는 듯하거니와,.. 2024. 2. 7. 전통시대 군대에서 유의할 점, 경찰 기능도 겸했다 군대는 국방, 경찰은 치안이라는 등식은 실은 국민국가 체제의 발명품이라, 전근대에는 실상 두 기능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 점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전통시대 軍은 요새 우리 관념으로 본다면 전쟁하는 군대는 물론이려니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기능도 아울러 수행했다. 또 한 가지 전통시대 검찰 법원도 문제인데, 그때야 기소 불기소 이런 개념도 없었고, 검사 판사도 실상 지방관 혹은 임금이 겸했다. 입법사법행정이 구별되지 않은 시대였다. 2024. 2. 7. 塚이라는 명칭은 타당한가? 우리 고분 중엔 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있는데-. 塚이라는 이름을 이런 왕릉급에 붙이는 것이 타당한가? 필자는 문외한이라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塚이란 명칭에 대해서는 조금 고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우리의 경우 塚은 규모를 막론하고 왕릉이나 왕족의 무덤이 아닌 무덤을 가리키고 있음은 왕조실록만 봐도 알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塚이라고 하면, 무덤이라는 일반적 호칭 외에 좋지 않은 의미로도 많이 붙인다. 대표적인 것이 미미츠카 耳塚 그리고 더욱 유명한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카인 2대 관백 히데쓰구를 할복시키고 그 일족을 모두 죽여 묻었다는 畜生塚 혹은 悪逆塚이 있다. 이 경우 히데요시는 히데쓰구를 할복시킬 때 그의 문란한 사생활도 널리 선전하여.. 2024. 2. 7.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2) 육주六州 vs. 육성六城 강동육주江東六州라 하지만, 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현대 역사학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다만, 그 용어가 아주 쓰임이 없지는 아니해서 그런 대로 10~11세기 고려 거란 관계를 설명할 때 요긴하기는 하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도 툭하면 강동6주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강동이라는 말 자체가 거란 주체 시각임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고려가 宋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거란에 신속臣屬하는 반대급부로 개척한 이른바 강동육주는 협상 성립과 더불어 곧바로 고려에 관할이 넘어온 것도 아니요, 거란의 묵인 아래 고려 왕조가 직접 군사를 발동해 순차로 개척했다는 사실도 앞서 보았다. 그 전방 개척 사령관이 다름 아닌 서희였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 그 땅에 쌓은 전초기지가 6군데도 아니요 사서.. 2024. 2. 7. 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다 동시대 중국은 당唐 제국이 결딴난 상황이라, 절도사 시대가 개막하면서 막부정권 문을 다시금 열었다. 다시금이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는 언제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까닭이며, 이에서 후삼국시대 개막과 그에 따른 고려왕조로의 통일 역시 이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까닭이다. 절도사에 비견하는 중앙 정부 파견 관리가 없던 신라의 경우, 도독이니 뭐니 해서 무던히도 봉건제후화하는 지방 거점 권력을 억누르고자 했고, 그것이 장기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겉만 그리보였을 뿐, 속으로는 발호하는 권벌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도독들이 사라진 자리에 숨을 죽이고 있던 지방권력들이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서기 시작했으니, 깡패 두목들까지 설치는 막부시대가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개막했다. 고려는 태.. 2024. 2. 7. 거부당한 희망퇴직, 출근거부투쟁으로 저항한 최항 본격적인 그의 시대 개막과 더불어 그대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국정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성종의 물음에 응대한 최승로 시무 28조 중 일부는 성종이 채택했다. 다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그 시무책 중에서도 오직 최승로의 그것만 남은 까닭에 그것이 새로운 국정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해서, 꼭 그것이 최승로만의 독창적인 발안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최승로가 지적한 국정방향이란 것들도 뜯어보면 새로운 내용은 없고 당시 이를 응대한 신하들이라면 누구가 지적했을 법한 것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내가 보건대 한국역사학은 이를 혼동했다. 개중에는 따라서 꼭 최승로만이 아니라 다른 신하들 시무방진책에도 보였을 내용이 카니발 폐지 혹은 축소였다고 보이는데 이건 시대 흐름상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 2024. 2. 7. 서희, 여든 할아버지가 으랏차차 해서 얻은 아들의 아들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에 태어나 1973년 4월 8일에 죽었다. 백수가 흔치 않게 된 요즘이야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 의료 사정을 고려할 때 92년 성상이라는 기록적인 장수를 누렸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정력이 더욱 용솟음쳤다는 사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제낀 그의 마지막 자식은 팔로마 피카소로 알고 있는데 1949년생이라, 68세에 낳은 딸이다. 피카소보다 대략 천살 많은 서신일徐神逸이라는 사람은 피카소를 무색케 한다. 친구들은 다 송장이 된 여든살에 으랏차차 해서 아들을 낳았고, 더구나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과 다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모조리 재상을 지냈으니 이렇게 후손 복이 많은 사람 있을까 싶다. 그의 아들이 내의령內議令까지 지낸 서필徐弼이요, 서필의 아들이 이.. 2024. 2. 7. 아시안컵 축구 4강전 패배에 부친다 요르단 전력이 생각 외로 강했다. 나아가 오늘 준결에서 두 골 모두 결정적인 패스 실책이 빌미가 되었다는 점 그것이 이번 대회 내내 최악 경기력으로 평가받는 박용우가 첫 골을 헌납한 점 그리고 황인범 역시 조규성 박용우가 하도 욕을 먹는 바람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내 보기엔 이번 대회 내내 경기력 최악이었고, 두 번째 실점이 그의 실책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곱씹어 보아야 한다. 둘은 후반 시작과 더불어 바로 교체했어야 했다. 더구나 황인범은 이른 시간 받은 경고가 계속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이는 결국 클린스만 용병 실책으로 귀결한다. 클린스만도 무슨 생각이 있어 박용우를 계속 믿은 모양이지만, 오늘도 실점 장면을 포함해 세 차례 정도 있을 수 없는 어이없는 실책을 저질렀으니 그런 그를 계속 기용한 건 이.. 2024. 2. 7. 이전 1 ··· 370 371 372 373 374 375 376 ··· 105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