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흠춘(金欽春) 599~681년. 일통삼한 전쟁기에 맹활약한 신라 장군이다. 김서현과 만명부인 소생이며, 김유신에게는 동부동모 동생이면서, 태종무열왕비가 된 문명(문희)의 오빠다. 풍월주 출신이다. '欽純(흠순)'이라고도 쓴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7년(660)...여름 5월..21일에 왕이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정방을 맞았다. 정방이 법민에게 말했다. “나는 7월 10일에 백제 남쪽에 이르러 대왕의 군대와 만나 의자(義慈)의 도성을 깨뜨리고자 한다”. 법민이 말했다. “대왕은 지금 대군(大軍)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장군께서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필시 이부자리에서 새벽 진지를 잡숫다가 오실 것입니다”. 정방이 기뻐하며 법민을 돌려보..
반굴(盤屈) ☞김반굴(金盤屈)
김반굴(金盤屈) 일통삼한기 전쟁에서 맹활약한 신라 장군 김흠순(김흠춘)의 아들이면서 김유신에게는 조카이자, 사위다.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에 밀리자, 신라군 사기 진작을 위해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 전사했다. 그의 아들 령윤 역시 보덕성을 근거지로 훗날 신라에 반기를 든 고구려 유민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7년(660) ..가을 7월 9일에 유신 등이 황산(黃山) 벌판으로 진군하니, 백제 장군 계백(伯)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먼저 험한 곳을 차지하여 세 군데에 진영을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신 등은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네 번을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고 사졸들은 힘이 다빠지게 되었다. 장군 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에게 말하였..
영윤(令胤) ☞김령윤(金令胤)
김령윤(金令胤) 신라가 백제를 멸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된 황산벌 전투에서 산화한 신라 군인 반굴의 아들이며 대장군 김흠춘(김흠순)의 손자다. 신문왕 때 고구려 남은 세력 실복이 보덕성을 근거로 삼아 반란을 일으키자, 그 진압을 위해 황금서당(黃衿誓幢) 보기감(步騎監)으로 출전해 장렬히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김령윤 열전 : 김령윤(金令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級飡)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인 각간 흠춘(欽春)은 진평왕 때 화랑이 되었는데, 어짐이 깊고 신뢰가 두터워 뭇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장년이 되어 문무대왕이 그를 올려 총재(冢宰)로 삼았다. 윗사람을 충으로 섬기고 백성에게는 관대하여 나라 사람이 모두 어진 재상이라 했다. 태종대왕 7년 경신(660)에 당 고종이 대장군 소정방에..
부례랑(夫禮郞) 판본에 따라 실례랑(失禮郞)이라고도 하니,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 따른 혼동이다. 신라 신문왕 때 화랑으로 문객 1천 명을 거느렸다. 북쪽 금란(金蘭)으로 갔다가 인근 적국 사람들한테 사로잡혀 목축에 사역됐지만, 신이한 행적으로 돌아왔으니, 이 일을 기념해 만파시적을 만만파파식적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삼국유사 제2 기이 2 만파식적 : 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太子) 리공(理恭·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실례랑(失禮郞) 신라 신문왕 때 화랑인데, 판본에 따라 부례랑(夫禮郞)이라고도 하니, 夫와 失이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 따른 혼동이다. 이 무렵 신라 지배층은 그 자체 의미를 지닌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失禮郞이 실상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자세한 행적은 부례랑을 보라. 삼국유사 제2 기이 2 만파식적 : (신문)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太子) 리공(理恭·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이에 옥대 왼편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
민장(敏藏) 신라인. 생몰년 미상. 각간을 역임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민장사(敏藏寺)라는 절을 창건했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주된 활동시기는 경덕왕 때가 아닌가 하지만 확실치 않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민장사(敏藏寺) : 우금리(禺金里)에 사는 가난한 여자 보개(寶開)에게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바다의 장사꾼을 따라 나가더니 오래 되어도 소식이 없자 그의 어머니가 민장사(敏藏寺·이 절은 곧 민장각간敏藏角干이 자기 집을 내놓아서 절을 만든 것이다) 관음보살 앞으로 가서 7일 동안 기도했더니 장춘이 금세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