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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문화와 도교 4강 내가 해직이라는 팔자에도 없는 복을 누리던 시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총 4회에 이르는 신라도교 특강 기회를 주어 내가 생각하는 도교문화 중요성을 설파하려 한 적 있다. 나로서는 참말로 소중한 기회였으니, 이 자리는 당시 유병하 관장(현 한성백제박물관장) 특별 지시로 마련한 것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일로 가끔 저와 같은 특강 혹은 강연 비슷한 자리에 경주로 불려가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저쪽 영남 쪽에서 김태식 견제는 더 심하다는 걸 안다. 어디 그쪽에서 강연 한 번 했다는 소리만 들리면, 그쪽에서 신라 혹은 고고학으로 밥 빌어먹고 산다는 놈들이 김태식을 뭐하러 불렀냐며 항의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내가 익히 들어서 안다. 여러 이유로 나를 경계하려 할 것이다 하면서 "내가 그리 두렵나" 하고는 매양 웃고 만다.. 2023. 4. 16.
목은화상기牧隱畫像記, 미수 허목이 채록한 이색 초상 모사기 과거를 거치지 않고서도 영의정까지 역임한 남인 오야붕으로 당시로서도 86세로 기록적인 장수를 하며(1595~1682), 그 반대편 송시열宋時烈(1607~1689)과 사사건건 한판 뜬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하도 살기도 오래 살고, 거기다가 생각하는 바는 모름지기 발표를 해야 하는 성정이라 여기저기 각종 sns에서다가 질러 놓은 글을 묶기는 해야겠지만, 스스로도 분류 체계화할 뾰죽한 방안이 없어 그냥 디립다 발표 일자별로 줄세우기를 하고는 편목이랍시며 붙이기는 했지만, 제목 역시 마뜩치 아니해서 댓글집이라고 붙이기도 그래서 기냥 심심풀이 파적으로 적은 글이라 해서 기언記言이라는 이름을 다니 그 권 제9 상편上篇에는 도상圖像이라는 챕터를 설정하고는 그에다가 화기畵記류 관련 글을 쑤셔 박으니, 개중 하나가 제목이.. 2023. 4. 16.
나원리를 산화공양하는 겹벚꽃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주변이 벚꽃엔딩 하니 겹벚꽃 시즌이라 산화공양 한창이다. 겹벚꽃은 조기 퇴진하는 일반 사쿠라 견주어 꽃이 훨씬 화려찬란하고 꽃술 또한 무겁고 만개가 오래간다. 그런 까닭에 상대하는 안전성을 주지만 아서라 꽃은 지기 위해 필 뿐이며 또 꽃은 화려할 때 지기 마련이다. 2023. 4. 16.
해직 시절 백수 생활의 일례 나는 지금 해직 기자 상태이며, 모 대학에서는 어쩌다 강의 하나 맡게 되어 하는 중이지만 명함에 해직 기자, 혹은 모 대학 강사라고 파고 다닐 수는 없다. 후자를 계속할 자신도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 출범한 모 문화재연구원에 등기 이사로 올린 일을 빌미로 삼았거니와, 그렇다고 그 연구원 이사라는 타이틀을 내세울 수는 없고, 그 연구위원이라는 이상한 명함 하나 파서 다닌다. 간단히 말한다. 나는 백수다. 바쁜 백수인 듯하지만, 실은 그렇게 보일 뿐이요, 정확히는 지금 이 생활을 즐길 뿐이다. 내가 밤샘을 하건, 언제 일어나건 내 자유이니 이 얼마나 좋을손가? 무엇보다 신문을 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일이 그리도 좋을 수가 없다. 그러는 와중에 가끔 발표 강연 같은 기회가 있어, 그걸 준비.. 2023. 4. 16.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네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가 소설 제목으로 삼으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 이 말은 for whom the bell tolls 를 번역한 것이라, 심드렁한 사람들은 그냥 종이겠니 하겠지만, 예서 관건은 toll이라는 동사가 의미하는 바다. 이 동사는 말할 것도 없이 종을 칠 때 나는 소리를 형상화한 것으로써, 우리는 종이 땡땡 울린다 하지만 저네들은 톨(토울) 톨 정도로 생각했나 보다. 원래 저 말은 영문학에서는 16~17세기에 독특한 성향을 보이는 metaphysical poetry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존 던 John Donne(1572~1631)이 교회에서 행한 설교문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한데 이 경우 to toll이라는 동사는 죽음을 전제로 한.. 2023. 4. 16.
능산리 절에는 백제 공방이 있었을까? 능산리 사지 발굴 도면이다. 노란색이 1993년 발굴 지역이라 이른바 서회랑이라 지목한 곳이다. 서회랑 북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쭉한 건물지가 보이거니와 길이 방향으로 건물을 3구획했다. 이를 공방지라 했거니와 나는 믿을수 없다. 이에 대해선 추후 과제로 미루거니와 상식을 파괴한 주장이다. 집 안채에다가 공방을 만들 순 없다. 의심하라! (2017. 4. 16) *** 물론 저곳이 공방이었을 가능성을 받침하는 발굴성과가 있다. 그렇다 해서 검댕이 나는 공방을 것도 금당 바로 옆에다 차리고 불때고 녹이고 해서 쿵쾅쿵쾅 기물 만들었다고? 기물 보관창고라면 이해하겠다. 삼국시대 이래 사찰이 각종 공장 기능도 아울러 수행했다 하지만 검댕이 날리는 공방은 그 권역 외곽 후미진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 2023. 4. 16.
4년 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반추하며 파리를 꿈꾼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니 4년 전 오늘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이 불탔다. 그날은 공교롭게 BTS가 '페르소나'로 빌보드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세번째로 1위를 먹은 날이기도 하니, 그날 나는 성당은 타고 방탄이도 활활 타서 빌보드 1위 먹고 라 하면서, 아래와 같은 장송곡을 썼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천년 역사의 온축이다. 에펠탑이 들어선 뒤에도 노트르담이 차지하는 위치는 단 한번도 흔들림이 없어 높이에선 에펠에 양보했을지언정 깊이는 누구도 따를 자 없었다. 그런 지난 천년의 프랑스 역사가, 아니 인류 역사 거대한 축이 굉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그땐 프랑스 정부가 이 대성당 재건을 어떤 방향으로 결정하고 추진할지 추적을 다짐했다. 하지만 이내 열정이 흐지부지하고 말아서 가끔씩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2023. 4. 16.
조선을 식민지로 몰아넣은 경복궁 덕수궁 중건 개항을 하고 나면 식민지가 되느냐 제국주의로 가느냐 선택지는 둘 뿐이다. 전자로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서 계획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서구화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발전한 나라가 메이지시대 일본이다. 필자는 에도시대 일본이 질적으로 조선사회와 큰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상업자본이 발전하고, 일찍부터 난학으로 상징되는 일본 밖의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차이지만, 본질적으로 두 나라 차이는 개항이후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단 개항하고 나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서 필요한 곳에 돈을 써야 한다. 쉽게 말해서 학교를 세운다든가, 군대를 키운다든가. 그런데 조선은 개항을 전후하여 그 전에도 하지 않던 궁궐 신축을 두 번 했다. .. 2023. 4. 15.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 몇 번을 쓰는 지 모르겠는데. 실학이 근대의 선구면 잠자리가 새다. 실학은 18-19세기 조선사회 위기 국면에서 완전히 핀트에 어긋난 이야기를 해결책이라고 내 놓은 책벌레들의 넋두리다. 차라리 그 당시 상인들에게 조선사회 국면타개 해결책을 물어봤다면 훨씬 그럴 듯한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조선이 당시 일본의 난학蘭學 정도로만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소리가 실학, 특히 중농학파들의 시무책이다.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실학을 근대의 선구로 보니 조선이 왜 망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2023. 4. 15.
3~4세기 타클라마칸 남동부 선선국歚善國 영역 The territory of Shanshan Kingdom during the 3rd and 4th centuries 3-4세기 선선국歚善國 영역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비름빡에 걸린 지도라, 영문을 바로잡는다. 우리 박물관이 세계 시장에 나가 자랑할 만한 게 두어 가지 있는데 개중 첫번째가 이런 비름빡 도판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2023. 4. 15.
60-8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 일본과 비교하면? 흔히 60-80년대 한국 경제개발을 일본을 그대로 따라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국 경제개발은 일본과 같은 방식이 아니다. 간단히 몇 개 써보면, 1. 일본은 경공업과 중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경제개발도 메이지 시기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완만하게 진행되어 산업화 속도도 우리보다 훨씬 느렸다. 한국의 경우 60-80년대에 각종 경공업 중공업 투자에 사회간접자본까지 일거에 이루어져 일본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할 수 있다. 2. 일본은 산업화 도중 필요한 자본 조달이 우리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우선 마른 걸레 쥐어짜듯이 일본 국내 자본을 쥐어짰고, 청일전쟁 승리로 받은 배상금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의 경제 개발은 기본적으로 외자 차입에.. 2023. 4. 15.
미친 경부고속도로 1960-1970년대 한국 경제발전은 제정신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아마 백년 후 후손들은 이 시기를 전설적인 시대로 기억할 것이다. 마치 일본에서 메이지시대를 추억하듯이. 예전에 티비에서 일본 다큐를 하나 본 적이 있는데, 나고야 근방에서 오사카를 거쳐 효고현까지 이어지는 메이신 고속도로(名神高速道路) 건설에 얽힌 이야기였다. 이 고속도로는 1963년 동경올림픽 개막 1년 전에 개통한 것으로 일본 최초의 고속도로였다. 총연장은 190킬로 정도. 다큐를 보면 이 고속도로 최초 건설에 얽힌 온갖 난관과 이를 극복하는 엔지니어의 투지를 촛점에 맞추고 있었는데. 그 다큐 보면서 나는 웃었다. 일본이 1963년에 190킬로 짜리 고속도로 만드는 게 뭐가 대단해!!! 416킬로짜리 경부고속도로를.. 2023. 4. 15.
Leather Bag from Loulan Kingdom 가죽주머니 革製囊 Leather Bag 누란樓蘭 시대미상 가죽, 털실 본관4123 Loulan Dates unknown Leather, woolen thread bon 4123 housed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아래쪽은 넓고 위쪽은 좁은 형태로 상부와 하부에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런 가죽 주머니는 《사기》 제66권 오자서伍子胥 전에 등장하는 치이鴟夷와 유사하다. 치이는 모양이 올빼미의 배처럼 불룩하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말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휴대용 주머니다. 유목민이 소금이나 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This leather bag, with a narrow top that flares down to form a wider bottom, re.. 2023. 4. 15.
죽을 죄를 지었다며 자기 반성은 눈꼽만큼도 없는 징비록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임란 코너엔 어김없이 그 처절한 증언이라면서 당시 재상으로 봉직한 퇴계학파 동인 서애 류성룡 저술 징비록을 실물 전시하며 제목에 이르기를 류성룡, 임진왜란과 자기반성을 기록하다 라 하고 그 서문 두 대목을 인용하기를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 후의 일을 기록 한 것이다. 한편, 임진왜란 전의 일도 가끔 기록한 것은 임진왜란이 그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백성들이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에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중략)… 비록 볼만 한 것은 없지만 이 또한 그때의 일이니 버리지 못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나는 지난 일을 징계하여.. 2023. 4. 15.
연구실 새 논문: 화장실고고학과 고고기생충학 https://www.jstage.jst.go.jp/article/asj/advpub/0/advpub_230217/_article/-char/ja トイレ考古学と考古寄生虫学© 2023 一般社団法人日本人類学会www.jstage.jst.go.jp 연구실 새 논문이 나왔습니다. 이번 논문은 일본어로 썼습니다. 경희대 홍종하, 도시샤대 후지타 교수와 함께 썼습니다. 내용은 일본에서 발전한 화장실고고학과 미국-유럽의 고고기생충학이 어떻게 비슷한듯 다른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 입니다. 최근 일본어 논문을 꽤 투고하고 있습니다만, 영어 논문 쓰기보다 훨씬 힘듭니다. 하반기에는 "계간고고학" 편집을 위해 일본어 논문을 작성 검토 중입니다만, 시간이 영어논문 때보다 배는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내.. 2023. 4. 15.
[문화] 1500년 전 유골, 16세 가야소녀로 되살다(2009. 12. 15ㅣ위클리경향 854호) [문화] 1500년전 유골, 16세 가야소녀로 되살다 첨단과학기술 총동원 체형·병력·직업까지 밝혀 실물 형태로 복원 화제 배수로 건설 과정에서 백제 무령왕릉이 기적처럼 출현한 1971년. 그해 12월 중국에는 소련이 침공해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에 후난성 창사시(長沙市) 동쪽 교외 마왕두이(馬王堆)라고 하는 야산 중턱에서는 방공호를 건설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든 마왕두이 한묘(한나라시대 무덤) 발굴은 이렇게 서막이 올랐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마왕두이는 전한시대 봉건제후국 가운데 하나인 장사국의 ‘넘버2’인 승상 이창(利蒼)의 집안 공동묘지였다. 이를 계기로 1974년까지 주변 일대를 발굴한 결과 마왕두이에서는 모두 3기의 무덤이 나왔다. 이창 자신과 그의 부인 신추(辛.. 2023. 4. 15.
“일찍 죽지마라, 너만 손해다” 이런 비스무리한 말을 중국사상사 전공 김충현 선생이 한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인즉슨, 마왕퇴 백서 곽점초간 같은 신자료는 자기는 보게 되었는데 나보다 일찍 죽은 사람은 못보고 죽었으니 나는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상서尙書, 일명 서경書經이라는 이름으로 유통하는 동아시아 지식인 사회의 절대 윤리헌장이 몽땅 가짜임을 증명함으로써 동아시아 전체 지식인 사회를 멘붕에 빠뜨린 염약거閻若璩(1636~1704)도 같은 말을 했다. 그가 말하기를 “배움은 끝이 없으니 사람이 더욱이 일찍 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잠구찰기潛丘札記에 나온다. 하긴 뭐 노벨상 타기 위한 절대조건이 장수라니 무슨 사족이 더 필요하리오? 잠구차기 텍스트는 아래에서 제공한다. https://ctext.org/wiki.pl?if=gb.. 2023. 4. 15.
음식디미방이 채록한 제철 아닌 나물 기르는 법 16세기 안동에 살았던 정부인 장씨가 지은 을 보면 '비시非時 나물쓰는 법'이라는 게 나온다. 시비란 제 철이 아닌 이라는 뜻이다. 1) 마굿간 앞에 땅을 파 움을 만들고 거름과 흙을 깐다. 2) 위의 흙에 당귀, 산갓, 파, 마늘을 심는다. 3) 움 위에 거름을 덮어둔다. - 움 안이 따뜻해 나물이 돋아나게 되는데 이를 겨울에 사용한다. - 오이와 가지도 이렇게 하면 겨울을 날 수 있게 된다. 이게 정부인 장씨의 창안일리는 없고, 예전부터(고려때부터?) 해오던 방법을 기록한 것일텐데...이를 보면 이규보가 성질내며 허물어버린 토실에도, 의외로 별 난방시설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2023. 4. 15.
인생 살아서 즐길 뿐 언제 부귀해지길 기다리겠는가? 저 남산 밭을 일구는데 잡초 무성해 뽑지 않네 한 이랑에 콩 심었지만 떨어져 콩대만 남았네 인생은 살아서 즐길 뿐 언제 부귀 기다리겠는가 田彼南山,蕪穢不治 種一頃豆,落而爲萁 人生行樂耳,須富貴何時 한서漢書 권 제66 공손유전왕양진정 전 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제36이 채록한 양운楊惲 열전에 보이는 한나라 말기 때 민가民歌다. 저 열전에 의하면 저 노래를 양운 집안 노복들이 딩기딩가하며 부른다 하니 당시 대중가요인 셈이다. 한대漢代 시를 보면 유독 저런 식으로 인생 유한을 회한하며 오늘을 즐기자는 Carpe diem 정서가 판을 치는데 이 역시 그 부류라 할 만하다. 구경의 자리에 올라 권세를 구가하다 면직되고서는 상업으로 떼돈을 벌어 호사하다 결국에는 황제를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된 양운은 사마천의 외손자이.. 2023. 4. 15.
꿩 먹고 알 먹은 소수서원, 공사하다 얻은 구리 팔아 장서 채우고(1) 지금은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경북 소백산맥 기슭 영주 땅 유서 깊은 유교 예제禮制 건축물은 본래 이름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이곳이 한반도에 성리학을 본격 도입한 고려말 학자 안향安珦이 머물며 제자를 길러내던 데라 해서 그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사당에서 역사가 비롯한다. 건립 이듬해 사당 기능 외에도 학교 기능을 가미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이름을 고치고, 다시 명종 5년(1550)에 이르러 이곳 군수를 하던 퇴계 이황이 왕한테 왕께서 직접 이름 하나 내려주소서 해서 ‘소수서원’이라 이름을 받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그 백운동서원, 소수서원이 시작한다. 이 약사를 보면 백운동서원은 창건에서 사액 서원이 되기까지 역사가 얼마 되지 아니하고.. 2023. 4. 15.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2 전술한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야 말로 콜럼버스 달걀 같은 것이어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 "알고 있어도 아는 것이 아닌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전술한 직지를 보자. 직지가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 직지 내용을 통독하면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직지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도 몰랐을 당시 국내 학자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도서관의 사서들은 당연히 알았겠지. 통독하면 마지막에 써 있지 않나. 책 말미에 써 있잖나. 청주목 외 흥덕사 주자 인시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 라고. 그러니 이게 활자, 특히 주자라는 걸 금속을 부어 만든다는 뜻이라면 당연히 금속활자일수 있다는건 당연히 짐작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이미 이것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건 아마 딱.. 202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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