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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소금한 곰소염전에서 곰소염전, 한 번쯤 들어 봤으리라. 곰소라는 지명은 과거에 소금을 곰소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는 설과 곰소 일대 해안의 형태가 곰처럼 생겼고 작은 소(沼)가 존재한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고 한다.(출처:다음 백과사전) 어릴 적, 화성시 마도면을 지나면서 보았던 염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던 터라, 염전을 보자마자 차를 세우고 달려가 보았다. 화성시 마도면 염전이야기 곰소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 생산지로 조선시대에는 줄포만에서 곰소만까지 화염(바다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곰소염전은 1936년 일제말기에 연동마을에서 호도(범섬)와 웅연도, 작도를 연결하는 제방을 쌓으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45헥타르(약 13만6천평)의 규모를 자랑한다. 남쪽에 줄지어 소금창고를 세우고.. 2021. 3. 6.
이유 설명이 없는 《징비록》, 담을 넘는 구렁이 나는 서애西厓가 일본의 침략이 없다고 보고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을 《징비록懲毖錄》에서 시종일관해서 감싸고 두둔하려 했다고 했거니와 그것이 어떻게 《징비록》에서 구현되는지를 보자. "(임금 선조가)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김성일을 잡아서 옥에 가두려 했으나 (압송한 김성일이) 서울에 이르기 전에 (죄를 용서하시고) 도리어 초유사招諭使로 삼았다" 이것이 임란 발발 초반기에 일어난 일이다. 한데 이 대목에서 세심히 볼 것은 서애는 도대체 선조가 왜 느닷없이 전란의 와중에 경상도지역 군사를 관할하는 최고책임자인 학봉을 체포했는지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선조는 왜 김성일을 잡아들였는가? 이는 실록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김성일은 임란 발발 직전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 일원에서 넘버 2인 부사副使로 일본에 가.. 2021. 3. 6.
구미성리학역사관? 구미? 성리학?? 구미라는 데가 나 같은 김천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독특한 데라, 보잘것없는 이곳이 산업도시로 우뚝 선 때가 박정희시대라, 특히 나처럼 유서 깊은 도시라 해도 같은 김천이 아니요, 산골깡촌 출신으로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들한테는 그곳은 누나 형들이 국민학교 혹은 중학교 졸업하고서, 혹은 일부가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그것도 아쉬어 중간에 때려치고 돈벌러 간 데가 구미공단이었으니 내가 이미 고등학교에 가야하는 시절에는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박정희 또한 총탄에 가고 없었으니, 더구나 그 총탄 세례를 퍼부은 이가 내가 나온 김천고교 재단인 송설학원 소속 김천중학교 교사를 역임한 전력이 있어 더 그랬겠지만, 나맹키로 헐벗은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잠시 서게도 한 곳이니 그때 고교 진학 선택권으로 주어진 .. 2021. 3. 6.
꽁꽁 얼어버린, 십이선녀탕 지난 2월 나는 강원도 인제에 있었다! 설악산에 갈 일이 있어 일정을 마치고, 잠시 들른 십이선녀탕. 같이 간 분께서 조사 때문에 십이선녀탕에 많이 왔었지만 이렇게 꽁꽁 언 모습을 본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사실 이날 무지무지하게 추웠은데, 이렇게 새 하얀 선녀탕을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꽁꽁 언 손을 녹이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꽁꽁 얼어 새하얀 계곡을 보니, 선녀가 아니라 엘사가 내려와야 할 것 같았다. 왜 십이선녀탕인지 찾아보니 12개의 탕이 있다 전해진다고 한다. 현재는 8개의 탕만 남아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처음에 12라는 숫자를 맞추려고 아주 작은(사실 긴가 민가한)폭포와 탕을 발견했는데 세월이 흘러 자연히 없어 진 것 같다. 그래서 끝까지 올라가서 남은 8개의 탕을 보았냐구? 아니요.. 2021. 3. 6.
세계3대영화제 한국영화수상연혁 ***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각종 국제영화제 중에서 특히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세 곳을 거론할 적에 베네치아영화제,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를 말한다. 이들은 영화제 festival이며, 골든글로브니 아카데미니 하는 데는 Awards라 시상식이다. 댱연히 페스티발은 실제 영화상영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치르는 까닭에 행사 기간이 길며, 어워즈는 서너시간만에 순식간에 상만 주고 치운다. ▲ 2021년 : '인트로덕션'(홍상수) = 베를린영화제 각본상 ▲ 2020년 : '도망친 여자'(홍상수) =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 2019년 : '기생충'(봉준호) =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 2017년 : '밤의 해변에서 혼자'(홍상수) =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김민희) ▲ 2016년 : '아가씨'(박찬욱) =.. 2021. 3. 5.
화마가 끊이지 않는 내장사, 것도 땡초가 지른 불 오늘 홀라당 대웅전이 타버린 절을 내장사라 하지만, 이곳이 역사상 유래가 깊은 그 내장사가 아니다. 지금 내장사라 일컫는 곳은 본래 영은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알려지며, 본래의 내장사는 다른 곳이다. 본래의 내장사와 지금의 내장사 관계는 아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내장사지內藏寺址 항목에서 엿볼 수 있거니와, 이에 이르기를 전라북도 기념물 제73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련사白蓮寺는 내장사(內藏寺)라고도 이르며 내장산에 있다.”고 하였다. 내장사는 원래 백련사로 660년(의자왕 20) 환해선사幻海禪師가 세웠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백련사로 일컬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근래에 와서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백련사를 벽련사碧蓮寺로 고치고 현판을 썼으나 6·25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1925년 학명선사鶴鳴禪.. 2021. 3. 5.
낙랑군 만주설을 주장한다고 재야는 아니다 동북아역사지도 논란은 실은 낙랑군 위치 논쟁이다.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소위 재야의 거센 반발에 저 지도는 개판이 되었다. 역비에서 이번 사태를 공박하며 재야를 비판하는 젊은 고대사학도들 비판이 실렸다 한다. 그걸 일부 언론이 요약 보도하면서 다시 입방아에 오른다. 낙랑 재평양설을 주장하는 역사학을 식민사학이라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보다 더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이에 토대한 주장을 식민사학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더불어 그 반대를 주장한다 해서 재야사학이라 몰아부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이른바 주류강단사학은 게임 끝났다고 하면서 툭하면 낙랑토성에 전축분에다가 근자 공개된 낙랑 호적 목판을 동.. 2021. 3. 5.
우물안 개구리가 논하는 천하 어떤 책에 이렇게 쓰였으니, 훌륭한 분이 말한 바이니 믿고 따르는 이를 많이 본다. 이런 이를 가리켜 눈 뜬 장님이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땐 반드시 쓴 목적이 무엇인지 살피지 않으면 그 저자가 판 함정에 빠진다. 더 가관은 그 함정에 빠진 개구리가 하늘을 논한다는 것이다. 성호 이익의 는 사료를 읽는 전근대인의 자세를 옅볼 수 있다. 그러나 사료를 보는 자세로는 불완전하다. 천하의 일이 대개 10분의 8~9쯤은 천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서(史書)에 나타난 바로 보면 고금을 막론하고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이 그 시기의 우연에 따라 많이 나타나게 되고, 심지어 선악과 현불초의 구별까지도 그 실상을 꼭 터득할 수 없다. 옛날 사서를 편력하여 상고하고 모든 서적을 방증(旁證)하여 이리저리 참작하고 비교.. 2021. 3. 5.
500년전 행주기씨가 보던 책이 일본 동양문고에 18대조 정렬공(貞烈公) 기찬(奇襸, 1444~1492)께서 직접 보셨던 책이 집에 전하지는 않는데, 일본 동양문고에 있는 《예기대문(禮記大文)》이 공께서 보셨던 책이었다. 그 책에는 奇襸 士贇 이라는 장서인과 德陽 世家 라는 장서인이 있다. 士贇은 사윤 또는 사빈으로 읽을 수 있으니 공의 자이고 덕양은 오늘날 고양시인 행주의 별호이니 행주기씨와 같은 말이다. 불에 탄 것은 있어도 왜놈 손에 종이 한 장 넘기지 않았다는 가친의 말씀에 따르면 이미 조선시대에 다른 집 책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수집한 이가 기무라 마사코토(木村正辭, 1827~1913)로 경상도에 살았던 일가의 소장인이 찍힌 책이 그의 컬렉션에 있는 것을 보면 그 집안에 소장되었던 듯하다. 2021. 3. 5.
《징비록》의 이순신 로직 logic 조선군이 궤멸한 상황에서 오직 이순신이 있었기에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도 동의) 그의 군사적 활동은 영웅적이었다. (나도 동의) 그런 이순신을 누가 등용했어? 나야 나...나 류성룡이야 이런 영웅의 등장에는 곡절이 있어야 한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재미없자나? 서애가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보자 "내가 순신을 천거하였더니 정읍현감에서 수사(水使)로, 차례를 뛰어넘어 임명되어서, 사람들이 혹시 그가 갑작스레 승진된 것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내 말 맞지??? (2015. 3. 5) *** 이것이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 중 하나다. 아니 가장 큰 목적이다. 이렇게 해서 서애는 임진왜란 책임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징비록》이 참회록이 아니라 변명록이 된 가장 큰 줄기가 바로 이순신이.. 2021. 3. 5.
《징비록懲毖錄》의 이데올로기 《징비록懲毖錄》 초반부를 관통하는 얼개는 1. 일본의 침략은 없다고 호언장담한 김성일에 대한 무한한 옹호 변명 2. 신립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 3. 그에 대비되는 이순신의 등용 이 세 가지다. 이것만 봐도 류성룡柳成龍이 《징비록》을 통해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왜 《징비록》을 쓰야했는지에 대한 답이며 그것이 곧 《징비록》의 이데올로기다. (2015. 3. 5) *** 임란 직전 통신사 일행 중 넘버투 부사副使로 일본을 댕겨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는 달리 그런 의도가 없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하지만 임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야마 꼭대기까지 돌아 김성일을 추포해 국문케 하거니와 이때 서애西厓(1542~.. 2021. 3. 5.
하롱베이의 죽은 석회암동굴 티엔꿍 Thien Cung Cave 하롱 베이 티엔꿍 동굴 Thien Cung Cave 라는 곳이다. 중국어를 조금만 알면 이 말이 천궁天宮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영어 가이드도 Heaven Palace라 설명한 듯하다. 이 동굴은 내부에 물이 전연 없어 죽었다. 바싹 마른 미라 느낌이다. 혹 우기가 아닌 건기인 까닭인가 살폈더니 그럴 가능성 제로다. 무분별한 개방이 참사를 불러오는 듯 하다. 오물이 두텁게 쌓였더라. 관람을 제한하고 보존처리가 필요한 듯 하다. 보통 석회암 동굴이라면 미끌미끌한 바닥과 톡톡 소리내며 떨어지는 물방울을 기대하지만 이 동굴은 성장을 멈추고 휴거 상태이므로 동굴의 사막화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동굴이 죽은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 순환의 원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자연이 죽인 동굴을 인간이 제2차 죽.. 2021. 3. 5.
대사代謝 장강 물결은 뒷물이 앞물을 밀쳐내기 마련이라 헌것은 새것에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니 이를 일러 대사代謝라 하거니와 대사란 곧 교체다. 해가 바뀌어 다시 봄이 왔는데도 쭈그러진 채 자릴 꿰차고 앉은 양태를 추태라 이름한다. 대사는 명령이요 섭리다. 2021. 3. 4.
탐관오리 처형장 혜정교惠政橋 중학천은 경복궁 뒷산인 북악에서 흘러내린 물이 남쪽으로 뻗어 경복궁 동쪽 담장 바깥을 타고 흘러 지금의 교보문고 동쪽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작은 시내다. 지금은 모조리 복개했으니 그 전에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빨랫터다. 청계천 합류 직전 교보문고 인근에 조선시대 다리가 있어 그걸 혜정교라 하고 또 복청교福淸橋라고도 했으니 지금은 혹부리 염상섭 영감 동상 앞쪽 대로변에 표식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그에 이르기를 이곳에선 탐관오리들을 처형한 데라 한다. 혜정은 정치교화를 베푼다는 뜻이요 복청은 글쎄 복되고 맑다는 뜻이 아닐까 싶거니와 탐관오리 처단을 그리 봤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한양 지리지를 제대로 공부하자 해서 하나씩 정리하고 뇌리에 쑤셔박고자 한다. 2021. 3. 4.
정자각과 정짜각 조선왕조 왕릉을 구성하는 건축물 중에 봉분 바로 전면 남쪽에다가 세운 건축물을 정자각이라 한다. 이곳은 제수를 설치해 놓고 제향하는 주축 공간이다. 이 건물을 정자각이라 부르는 까닭은 공중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한자 고무래 丁자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 표기가 丁字閣이다.한데 요즘 백이면 백명이 전부 '정자각'이라 발음하거니와, 개중에서도 정은 장음처럼 발음한다. 나 역시 의식하지 않으면 그러하다. 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를 살린다면 "정짜각"이라 발음해야 한다. '정'은 짧게 발음한다.정자각과 정짜각이 무에 상관이랴 하겠지만 한문 세대가 아닌 이들에게는 이는 매우 중대한 혼란을 초래하나니, 정자각을 거의 대부분이 정자형 건물, 곧 정자처럼 생긴 건물로 오도하기 때문이다.(2016. 3. 2) 2021. 3. 4.
아이들과 재밌게 놀고 싶다면 [안산어촌민속박물관] 으로!! 2021년 2월 설연휴에 안산어촌민속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거의 3주 가 다 되어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정리하여 영상 올립니다. 심심하실 때, 아니면 제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 하시면 한 번 클릭해서 봐주세요. ㅎㅎ www.youtube.com/watch?v=ZHHlvQ9fmmA 초등학교 1학년~4학년 정도의 눈높이에 맞춘 (저의 수준은 초등학생이기에.ㅎㅎㅎ) 체험형 전시로 저도 오랜만에 즐겁게 전시를 보았습니다. 전시실에 있은 책을 들춰보고, 돋보기로 관찰하고, 버튼도 눌러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작은 구멍으로 관찰하고 등등 아닐로그적인 체험이었지만, 충분했습니다. 화려한 VR체험은 아니었지만 큐레이터가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느껴지는 그런 전시였습니다. 예전에 듣기로는 박물관 교육.. 2021. 3. 4.
변신의 귀재 내가 지닌 장점 중 하나는 지구촌 어딜 가건 야나기 무네요시 류종열이 된다는 점이다. 만주 가면 만주 개장수 왕서방 사천 가면 또 사천 농부가 되나니 (2016. 3. 4) 이를 현지화 혹은 착근着根이라 하거니와 저런 변신의 귀재한테서는 Minari가 나올 수 없다. 애환이 있어야 각본이라도 쓸 거 아닌가? 2021. 3. 4.
뇐네는 골방에 묻혀야 잔소리가 없다 조사당은 한치 어긋남이 없다. 후미진 높은 구석데기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석가모니 영역은 신성불가침이다. 둘째 노인네는 골방에 몰아넣어야 만인이 편안하다. 법천사지 저 뒤 골짜기에 지광국사 현묘의 조사당이 있다. (2016. 3. 4) 또 하나 효능이 있으니 앞서 말한 이유는 주지의 시각이고 골방 뇐네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데 감시자는 항상 뒤켠 높은 곳에, 것도 피감시자 눈을 피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시가 된다. 이 전통은 궁궐이나 사대부가에서도 통용하거니와 궁궐에서 왕의 가장 큰 골치는 엄마 할매다. 이 뇐네들 툭하면 잔소리요 툭하면 인사청탁이라 이 사람 봐주레이 저 사람 짤라레이 민원 빈발이라 이런 엄마 할매 꼴뵈기 싫다고 궁궐 후미진 곳에 쳐박아 두거나 아예 딴집 차려서 독립시켜 버.. 2021. 3. 4.
예천박물관 왔니껴? 왔니더! 지방 출장 마지막 날, 안동을 들렀다가 안동에서 가까운 예천박물관에도 들렀다. 예천박물관은 예천충효관에서 2015년 예천박물관으로 승격하고, 4년 간의 공사 끝에 상설전시실, 세미나실, 기획전시실, 수장고, 어린이체험실 등을 갖추고 2021년 2월 재개관했다. 박물관 개관준비 중 관내의 많은 문중 소장유물을 기증, 기탁받았는데, 박물관을 개관하기도 전에 수장고가 이미 유물로 가득찼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은 소장 유물 중 보물이 268점으로 공립박물관 중 가장 많은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 자랑할만 하다. 어떻게 이 많은 유물을 문중에서 선뜻 박물관에 기증하셨을까 궁금했는데, 예천박물관 관장 이재완 학예연구사님이 그동안 지역에서 문중 어르신들과 쌓아온 두터운 신뢰 덕분이란걸 알게 됐다. 어르신들의 마음.. 2021. 3. 3.
앙코르와트시대 베트남 지역 기와와 브로꾸 앙코르와트 시대의 베트남 지역에서 사용한 건축자재들이다. 기와와 벽돌이다. 이 지역이 앙코르 제국에 편입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상호 영향 관계는 밀접하다고 안다. 다행히 국내에도 이 시대 동남아 와전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하노이 베트남국립역사박물관 소장품이다. (2017. 3. 3) *** 이후 그 친구는 불란서 리옹대학에서 따고는 귀국해서 목포로 귀향한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2021. 3. 3.
아산 외암마을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선사시대 집터 아산 외암마을서 청동기·원삼국시대 주거지 확인 이은중 기자 / 기사승인 : 2021-03-02 09:38:28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 등도 출토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1640894442 아산 외암마을서 청동기·원삼국시대 주거지 확인 (아산=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충남 아산 외암마을(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에서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주거지와 수혈 유구 등이 처음으로 확인됐다.아산시는 외암 이간 선생의 생가터 복원 k-odyssey.com 그제 앞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으니, 발굴조사가 이뤄진 곳이 다름 아닌 외암마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지 아니할까 싶다. 외암마을은 세계유산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안동 하회마을·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현재까지도 ..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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